김종희처럼 - 국가 기간산업 개척에 평생을 바친 프런티어 대한민국을 바꾼 경제거인 시리즈 7
고수정 지음, 오재덕 감수 / FKI미디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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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희 처럼] 기업가 이야기인 이책은  현재 [ 한화그룹]의 전신인  [ 한국화약 주식 회사]의 설립 과정과 그 창립자의 사업보국 , 사업가 정신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1940년대 해방 전 부터 일본인에 의해 독점 되다시피 한 < 화약 > 산업에서  한 우물만을 줄기차게 파고 , 지키고자 했던 집념의 기업인을 여기 소개 한다..

 

우선 다들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 다이나 마이트> 에대한 간력 개요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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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너마이트(dynamite, 문화어: 다이나마이트)는 나이트로글리세린 또는 나이트로글리콜 물질이 6% 이상 포함된 폭약을 두루 이르는 말이다. 1866년 알프레드 노벨이 최초로 발명한 것이며, 1867년에 영국에서 특허를 인정 받았다. TNT도 폭발물이긴 하지만 다이너마이트와는 전혀 다르다.

 

용도

다이너마이트는 주로 건축, 채광, 파괴, 그리고 전쟁터에서 쓰였다. 그러나 더 새로운 폭발물과 기술은 다이너마이트를 여러 방면으로 응용하여 바꾸어 놓았다. 다이너마이트는 수면 안이나 아래 쪽에서 폭파하는데 주로 쓰인다. 다이너마이트는 무장 전투, 다리 파괴, 적군이나 식품 배급을 느리게 하는 데도 쓰였다. 금고를 터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막대를 끓이고 니트로 글리세린을 걷어냄으로써 일부러 니트로 글리세린을 다이너마이트에서 추출하기도 한다. 다이너마이트는 또한 스키 휴양지에도 자주 쓰인다. 안전 요원들은 다이너마이트 막대들을 사용하여 고의로 눈사태를 만듦으로써 스키타는 사람들이 도착할 때 안전하게 만든다. 주요 장치는 다이너마이트를 시동하는 데 쓰인다.

종류

  • 규조토 다이너마이트
  • 스트레이트 다이너마이트
  • 아교질 다이너마이트와 분상 다이너마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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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너 마이트는 화학자 노벨에 의해 발명된 1866년 ,  19세기 최대의 발명 중 하나라고 기억된다.. 평화적인 이용도 건설이나 플랜트, 채광이나 채굴에 많이 사용되었지만  발명 이후 군사적  전략적 무기로서의 비중이 더 커지고 , 오히려 나라간의 전쟁 규모를 더욱 크게 하는데 ? 기여 하기도 한다.. ( 1차 세계 대전 ~ 2차 세계 대전 등 ) . 

 

우리나라의 경우 화약이란것이 알려 지던 것은 훨씬 이전 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강력하고 운반이 용이 하면서 필요한 시간에 적정량을 폭발 시킬수 있는 [ 컨트롤 가능한 폭약] 은 다이너 마이트가 처음이 아닐까 한다... 일제 강점 시기에  대부분의 기술 정보들은 일본인에 의해 보안 유지 되었기 때문에 1945 년 해방이 되고 나서도 이의 유지 발전 , 개발 할수 있는 인력이 거의 전무 한 상태에서  [김종희 회장]의  뚝심어린 생각으로  위태롭게 나마 꺼져 가던 화약의 불씨를 다시 살릴수 있었던것은 대단한 국가적인 행운이라고 할수 있겠다...  1950 ~ 1953 년의 한국 동란에서도 여러군데의 분산된 확약 저장고를 토대로  전쟁이 끝나고 나서 하나 하나 재건의 싹을 튀운 것 또한 그의 정신 <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라> 는 현안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떤 기업가이던 쉽게 이러한 까다로운 기술 사업에 뛰어 들기 어려웟던 시절 그는 과감히  기술을 찾고 공부하고 여기에 필요한 인력들을 적재 적소에 배치 하였다... 무엇보다도  그만의 4번째 성공 법칙 < 장이가 되자 > 라는 것과  < 사람이 곧 재산이다 > 라는  그의 철학에서  위임 받은 임원이 공장 가동에서 부터 운영까지 일임 할수 있는 믿고 맡기는 스타일의 리더 였던것으로 평가 한다..

 

어느 나라이던 전쟁 직후에는 재건의 바람이 불게 마련이고 모든 물자 들이 귀중해지고  외산 수입제품의 비중이 커지면서 무역 역조가 나타 난다..  1960년도 초  시작된 경제 개발 5개년의 첫 삽은 그렇게 시작 되었고 ,, 나라안의 거의 모든 지역이 토건 , 건설 사업장이라고 보면 무리가 없던 시절이 아니 었을까  , 새로이 포항에 철강 공장이 들어서고 ,, 서울과 부산을 잇는  초대형 역사  경부 고속 도로가 시작 될수 있는 원동력은  , 그간 기간 산업 분야 에서 꼭 필요한  [ 화약]을  국내 기술로 자립 할 수 있었다는 부분이 커다란 성과로 자리 매김 하면서 , 한국 화약이라는 그룹은 성장 할수 있었고 , 그룹의 토대를 마련 할수 있지 않았을까 본다...  무슨 사업이던 간에 [ 준비 되어 있는 자 ] 들만이  그러한 기회의 자리에 중요한 획을 그을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일이다..  

 

좋은 일만 있엇던 것이 아니라 1977년 이리역 화약 폭발 사고시에는 대대적으로 사운을 걸고 그 일의 책임의식을 가지고 피해 복구에 나섰으며, 그의 거의 전재산 < 당시 90억 > 가량을 희사 할 정도의 올곧은 책임의식과 주인의식을 가졌던 부분은 당시를 기억 하는 사람들에겐 아직도 기업인의 좋은 귀감이 되기도 한다..

 

그의 또다른 꿈인 에너지 산업 분야에서도 불굴의 도전정신을 내세워 < 경인 전력 개발 > 로 발전소 사업에 도전 하였고 , 1971년

< 경인 에너지> 라는 이름으로  인천 원창동의 허허 벌판에 발전소 기공식을 진행 한 추진력을 발휘한다..

 

이후  정부기관의  몇가지 제의에 따라 ? 식품 시업과 호텔 사업 ( 현 프라자 호텔 )을 진행 하면서 동시에 건설업을 자회사로 두는 그룹으로 성장동력을 앃게 되는 토대를 마련 한다...

 

지금은 한화 [ 김승연 회장 ] 체제이고  현재 구속 수감중 ? 인지 모르 겠으나  선대 김종희 회장 만큼의  의지력과 솔선 수범 ,  투명한 기업가 정신 등이 오히려 퇴색한 듯 하여 안타깝다...   기업이 커지면서 이제는 누구의 오너 기업이 아니라  대중이 , 국민들이 사랑하고 , 사랑 받는 , 혹은 존경 할수 잇는  부자 기업들이 많이 나와서 사회적 일자리나 ,  중, 소 기업에서 해결 하기 어려운  대규모의 투자 진행 건 , 민자 + 국가 자본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부분 들에 대한 기여를  좀 더 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가   생각 해본다...

 

고 , 김종희 회장의 돈을 쓰는 철학 또한 배울점이 있어서 사회 기여나 , 100년지 대계인 교육을 위한 투자 ( 천안 북일고 )등은 미래를 위한 우리 후손 들을 위해서도 아낌없이 나누고 , 배풀어야 할  올곧은 기업가 상이 아닌가 한다... 

 

기업가가 자신과 자신 측근의 안위만을 위한 정치와 기업운영을 할때 , 외부로부터의 따가운 시선과 질타를 받는다  ,  마이크로 소프트 창업주 - 빌게이츠를 보라 ,, 그리고  투자의 귀재 - 워렌 버핏을 보라 ,, 자녀들에게 이미 유산 상속의 범위를 한정 하였으며  그러한 막대하게 쌓은 부를 도로 사회적 기여에 환원하는 아름 다운 투자를 ...이땅  우리나라에서도 보게될 날이 머지 않기를

고대하고 바라는 마음 간절히 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 책력거99 >  느낌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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