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한국의 암자 답사기
신정일 지음 / 푸른영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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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산 곳곳에는 숨은 보물들이 많다. 그 엤날 삼국 시대부터 혹은 고려를 거쳐 ,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찰과 명승지와  적멸 보궁이라 불리는 삼재를 피하는 명당도 곳곳에 존재한다. 


지금도 여전히 국토 순례 중이기도 하는 저자는 한국의 많은 사찰과 암자를 두루 돌아다녀서 그 어떤 스님 보다도 지리에 밝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약 1500여 년 가까이 되었다고 한다. 세월이 많이 흘러 무너지고 , 흩어진 탑들과 사찰들이 있으나 그래도 그곳에 가면 엤기운과  법력이 뛰어난 선사들의 기운을 서늘하게 느씰 수 있다고 하니 한번 이여름 피서지로 암자 찾아 나서기를 계획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아래 목차별로 이어지는 스토리 텔링은 지리적으로 역사 시간적으로나  문화의 보고이다. 

의상 대사 하면 떠오르는 영산암 , 영산암은 봉정사 서쪽에 있는 자조 암과 함께 봉정사의 동쪽에 잇는 부속암자로 현판에는 ' 우화루' 리고 쒸여져 있다.. 아마도 지난 세월 이곳은 스임들의 공부방으로도 추정되나 현제는 상주하는 스님은 없다.  고려말에는 포은 정몽주가 이 절에서 공부하고 수행하였다고 한다. 


백제 무왕의 전설이 깃든 미륵신앙이 있는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산엔 사자암이 있다.. 마한의 왕궁터, 백제의 네 번째 도움 지로 조성되었을 것이라고 전해오는 왕궁평이 그곳이다. 남쪽으로 미륵산이 있고 금산사의 말사인 사자암이 자리하고 있다.. 삼국유사 기록에 의한 추정으로 ' 지명 법사; 기 거주하던 사찰 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설화가 내려져 오는 곳 또한 이곳이다. 


경남 산 창군 신등면 율현리에 자리 잡은 율곡사는 합천 해인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덕 여왕 (651년) 원효가 창건하였거, 930년경 신라가 망하기 직전에 감악 스님이 중창하였다. 남아 있는 절은 대웅전 하나 인대 쇠못을 사용하지 않고 지은 건축으로도 유명하다. 밤이 많이 나서 유래되는 율곡, 밤실 , 밤골로 부르는 이곳 지명과 같은 파주의 밤실 마을에서 이 이 또한 태어났다고 하고, 호를 율곡이라 짓는다..  안동에서 태어난 이황은 - 물러 나는 사내라는 뜻으로 '퇴계 '라고 지었고 , 서경덕은 그가 터를 잡은 화담 , 즉 , 꽃 피는 연못이라는 이름을 따 서 화담이라고 졌다는 일화는 또한 암자를 둘러보거나 지역을 답사하면서 알게 되는 재미있는 일화 이기도 하다. 


금정암 , 전남 순천시 낙안면 금전산에 있는 암자이고 한때 의상 대사가 수도 하였다고 전해지는 의상대 또한 이곳에서 멀지 않고 영업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풍수지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 의해 산세 지세가 좋음을 아는 옛 조상들은 그곳에 올라 상투를 풀어헤치고 동풍에 바람을 맡겨 머리를 바람에 비질하는 즐풍을 즐겼고 ,  태양의 방위에 맞춰서 하체를 네어 보이는 거풍을? 행사하였다고 기록에 나와 있다... 오늘날 일반 등산객들이 들오면 놀라 자삐질 일이 지면 풍숩이란 그런 역사와 힘을 지녔다... 태양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양기를 직접 받으려 했던 옛사람들의 간절함 또한 느껴진다.. 


지역을 동쪽으로 옮기니 경북 경주시 양북면 함월산이 나오고 골굴암이라는 마애불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불심 가득한 장소로 기도발이 잘 받는 곳으로도 유명한 암자이다. 토함산 불국사의 유래와 신라 문무왕의 죽어서도 동해의 용이 되어 왜구를 지키려는 신념으로 무덤은 현재 대와 암에 위치를 잡았고  그 뒤를 이은 신문왕이 그 뜻을 기려 지은 절이 감은사이다.  굴 굴암의 마에불 , 관련하여 부처 이야기이다. 기원전 7 개세 기경 히말라야 남쪽 , 정반 왕의 아들이었던 싯다르타 ( 모든 일이 뚯 대로 이루어진다)라는 훗날 출가하여 깨달을 음 얻어 붓다가 되었고 그를 석가모니라고 사람들은 불렀고 그 뚯은 ' 석가족의 성자 '라는 뚯이라고 한다. 이후 깨달음을 다서 재자에게 설 하기로 하혔는데 다음과 같다. 


' 태어남은 괴로움이다. 늙음은 괴로움이다. 불행은 괴로움이다. 병듦은 괴로움이다. 죽은은 괴로움이다. 근심 , 슬픔 , 불행은 괴로움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은 괴로움이다.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괴로움이다. 집착하는 것이 괴로움이다.' 


이러한 괴로움을 간다히 말하면 오온 이락 하였고 , 붓다는 그것의 고열이 불교의 처음과 끝임을 설파하였다.. 그것이 사제인 고제, 집제, 멸제, 도제이며 제는 곧 진리라고 말한 것이다.. 


계속해서 백제 초의 선산의 숨결이 서려있는 암자라는 청련암은 전북 부안군 진사면 능가산에 위치해 있다.. 

백제 성황 31년인 553년에 초의 선사가 창건했고 선실이 처음 지어진 연대는 불명확하다고 한다.  1929년엔 독립 운동가들이 이 암자를 많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백관수 , 송진우, 여운형 , 김성수 등이 한때 은신처로 사영하였고 그 후 만허 , 해안 스님 등이 독거 선실로도 사용하였다고 한다. 근대에 들어 인촌 김성수 선생이 공부하였다는 수많은 고시 지망생들이 이곳을 거쳐 같고 사실 또한 많은 인물이 이곳을 통해 배출되었다라고도 전해 진다.. 명당은 명당인 셈이다. 


이밖에도 찬란한 해돋이가 일품인 , 전남 여수시 돌산읍 금오산의 향일암과 영취산 흥국사와 ,, 

원효 , 도선 진각 국사가 수도한 전통 암자인 사성암은 전남 구레군 문척면 오산에 있다.. 


경남 남 헤로 방행을 바꾸면 , 남해 상주면 금산에 위치하고 있는 보리암은 , 해수 관음보살상의 불심 도량이다. 

이곳 이름의 유래는 금 사은 681미터의 야트막한 동산이지만 금강산에 빗대어 빼어난 풍광으로 ' 남해 소금강'이라고 불릴 만큼 경치가 빼어나다. 한번 여름 휴양지로 가는 길에 들어 봄지 한 지명이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은 명산 중의 또 하나의 명산이다. 중대 사자암은 그곳에 있고 다섯 보살이 머문다는 오대산의 암자이다. 


여기서 여행의 정의를 한번 살펴보자 " 여행이란 어떤 장소에서 그와 떨어진 다른 장소를 가기 위해 향하는 예정이다...."라고 [리트레 사전]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늘 여행을 떠나는 것일까 오는 것일까.. 


평창 상원사 청량선원에 들면 우선 하여야 할 것이 저녁 하늘이 뉘엿뉘엿 질 무렵 달 마실을 하는 것이다.. 엣말로 흡월정이리고도 하는 달의 기운을 받는다라는 말이 전해 진다.  상원사에는 범종이 있다. 이 또한 나라안 제일가는 종으로서 경주의 에밀리 종과 상원사의 범종이 그것이다. 청아함 그 자체인 범종을 들으며 오대산 답사로 나아가면 신선이 따로 없지 않은가... 


오대산은 또한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과 더불어 나라안에서 가장 신령스러운 산으로 삼신산에 든다 엤부터 이곳은 삼재가 들지 않는 명당터이다.. 그래서 산아래 월정사 옆에다가 사고를 지어 역조 실록을 갈무리하고 관리를 두어 지키게 한 것도 선견 지명이다. 


이곳은 또한 석가 열의 왼쪽에 자리하고 지혜를 다스 리는 보살로 추앙받는 문수보살이 머무는 곳이라고 한다.

오대산의 으뜸 봉우리인 비로봉의 산허리에 자리 잡고 있는 중대 사자암을 지나 오르면 " 적명 보궁" 이 니타 나며 이곳이 일찍이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지고 온 석가모니의 정골사리를 모신 곳이라는 이야기이다.. 세조와도 인연이 있는 이곳은 단종을 유해하고 나고 종기가 난 세조가 치유차 월정사를 참배하고 상원사로 가는 계곡길에 마주한 자가 바로 문수보살이었다는 애기가 전해지고 종기는 싯은 듯이 나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방문할 떼 고양이에 의해 자객의 살수를 막을 수 있었던 왕은 그 터를 묘(고양이) 전으로 내렸으며 , 그 뒤 서울에서도 여러 곳 묘전을 마련하였고 지금의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도 묘전 50경을 내려 그 고양이들을 키우는 비용에 스게 하여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오대산이 그러하다면 신라고도 1000년을 이겨낸 명당터는 어디 일까 , 바로 경북 김천시 중산면 수도산에 자리한 수도암이다. 지금껏 와와 세손이 자리 잡아 명명 대손을 누리는 명당터로로 이름이 높고 , 풍수지리학의 원조인 도선 국사가 청암사를 창건하고 수도처를 찾아 수도산을 헤매 인후 지금의 이 절터를 찾아내었다고 한다. 


수도암터는 풍수지리상 옥녀 직금형, 즉 옥녀가 비단을 짜는 형국이라고 한다. 멀리 보이는 가야산 상봉은 실을 거는 끌게 돌이 되고 뜰 앞의 동서 양탑은 베틀의 두 기둥 , 대적 광전 불상이 놓인 자라는 옥녀가 않아 배를 짜는 자리가 된라는 뜻으로 전해 진다. 


자 , 이젠 어느덧  명산 대첩 , 적멸 보궁의  영험한 명당터 , 현세를 유지하고 미래에도 올바른 방향을 점지해 줄 것으로 믿는 기운 좋은 절터와 암자를 한번 찾아 길을 나서 볼 차례이다. ( 직장인은 미리 휴가 계획을 , 자유인은 시간과 노잣돈을 마련하고 ,  친구가 필요하면 , 길 동무를 주위에서 찾아보시길 ,,, )   글에는 약 21 곳의 나라안 명산과 암자를 기록해 놓았지만 ,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암자들이 있을 것으로 보이며, 아직도  탐험과 답사를 병행하고 있는 저자의 끈기와 노력에  심심한 경의를 또한 표하는 바이다... Written by  E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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