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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고 더 오래 부를걸 그랬어
김진태 지음, 윤희병 구술 / 더작업실 / 2023년 8월
평점 :

이 포스팅은 더작업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영화 『써니(Sunny)』에서 어린 나미는 엄마에게 짜증과 투정을 부리지만, 어른이 된 나미는 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이러한 모습은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가 '엄마'라는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고, 그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잘 보여준다.
"너도 자식 키워봐라."라는 어른들의 말씀을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워보니,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어린 시절 부모 속을 꽤나 썩혔던 기억을 떠올리면, 영화 『써니』에서 어린 나미가 엄마의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며 자신의 감정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것이 이해된다. 이는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을 무조건적이고 변함없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된 나미는 딸의 작은 요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딸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이는 자신이 한때 엄마에게 했던 행동들을 반추하며, 그때의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엄마'라는 존재를 단순한 보호자에서, 무한한 사랑과 희생의 상징으로 인식하게 된다.
p.56
엄마의 진두지휘 아래 떠들썩한 김장이 끝나면 뒤주에 쌀을 한 가마 채우는 게 월동 준비의 마지막이었다. 옅탄광, 김장독, 뒤주 세 곳을 채우고 나면 펄펄 눈이 날리기 시작하고 예배당 종소리가 울리고 동네 형들과 누나들이 새벽 송을 돌면 성탈절이 오곤 했었다.
p.113
우리 집 장독대에 아직도 떡시루가 있는디, 세월이 못 되두 아마 오십 년은 됐을 겨. 지금이야 갈라지구 깨져서 쓰지도 못하구 떡을 해먹을 일도 없지만, 옛날에는 옹기로 만든 시루에다 떡을 참 많이도 해먹었잖여. 찹쌀보다는 맵쌀로 만든 멥떡을 많이 해먹었는디, 쌀가루 빻아서 콩을 넣으믄 콩떡이구 쑥을 넣으믄 쑥떡이구 호박을 말려서 넣으믄 호박떡이구, 그냥 찌믄 백설기가 되는 겨.

특히 어린 시절에는 잘 몰랐던 엄마의 마음과 희생을,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결국, '엄마'는 우리 삶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존재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그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엄마"라는 단어는 단순히 한 단어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감정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녀의 존재는 우리에게 안정감과 사랑을 주며, 때로는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
"엄마"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그녀가 우리 삶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감정을 담아낸 책이 바로 <엄마라고 더 오래 부를걸 그랬어>이다. 이 책은 방송작가 김진태와 그의 어머니 윤희병 선생이 함께 써 내려간 에세이로, 세대를 잇는 대화와 한국 근현대사의 생생한 기록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도 우리는 "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깊은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볼 수 있다.
이 책은 95세의 어머니와 59세의 아들이 함께 나눈 지난 세월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의 사랑과 역사의 흐름을 조명한다. 윤희병 선생은 1929년 벚꽃이 흩날리던 봄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 대동아 전쟁, 한국전쟁, 1960년대 재건의 시대, 1970년대 유신 시대, 1980년 서울의 봄 등을 겪으며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진 흐름을 몸소 체험했다고 한다. 그녀의 삶은 그 자체로 역사이며,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는 당시의 시대상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p.213
테레비를 볼 때는 귀가 안 들려도 화면에 글자를 써주니께 눈이 보이니께 그래도 볼만 헌디, 귀가 어두워서 안 좋은 건 밖에서 나는 새소리가 안 들려서 안 좋아. 산이 가차이에 있으니께 우리 동네로 철 따라 새들이 찾아와서 아침마다 듣기가 좋구. 새소리를 들으면 '아 제비가 왔구나' 그러면 봄이 왔구나, 뻐꾸기가 뻐꾹뻐꾹 울면 '여름이 왔구나' 그렇게 알 수 있었는데, 요즘은 새소리가 잘 안 들려.
p.272
걱정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겄어. 사람 얼굴에 눈 코 입이 있듯이 걱정도 사람 몸에 당연히 붙어있는 겨. 얼굴에 눈하구 입만 있구 코가 없다구 생각혀 봐, 얼마나 이상혀. 걱정도 없으믄 이상한 겨. 살아 있으니께 걱정도 살아 있는 겨. 걱정은 죽으야 끝나는 겨. 무슨 걱정이 있든 간에 이건 당연한 거다. 이렇게 생각허야지, 나는 왜 이렇게 걱정이 많을까나 그렇게 생각하믄 안 되는 겨. 걱정도 팔자라구 허잖여. 걱정이 많고 적국의 문제는 그 사람이 생각허기 나름이니께 팔자라구 허는 겨.

김진태 작가는 MBC-TV '우정의 무대'의 '그리운 어머니' 코너를 집필하며 방송작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했고, 30년간 예능 작가로 활동해 왔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어머니와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는 생각에 고향으로 내려가 어머니와 함께 지내며 그녀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태어나신 음력 4월이면 늘 벚꽃이 만개하는데, 벚꽃이 100번 필 때까지 하루에 조금씩 지난 세월의 이야기를 나누자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에는 어머니의 삶의 다양한 측면과 그에 얽힌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1부 '母큐멘터리 전지적 엄마시점'에서는 어머니의 시각에서 본 삶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2부 '벚꽃이 백 번 피거든'에서는 세월의 흐름과 그 속에서의 변화가 담겨 있다. 3부 '다정하거나 쓸쓸한 사소하거나 거룩한'에서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소개된다. 4부 '빨랫줄에 머무는 마른 바람 같은'에서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뭉클하게 전개된다.
이 책에는 세대 간의 소통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깊은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또한 역사의 생생한 증언도 엿볼 수 있다. 한 개인의 삶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들이 글로 씌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생한 삶의 체험 현장으로 다가온다.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나누는 일상과 추억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특히 내 가슴을 메이게 만들었다.
* 출처 : 박기자의 끌리는 이야기, 책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