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걸 크러시 - '남성' 말고 '여성'으로 보는 조선 시대의 문학과 역사
임치균 외 지음 / 민음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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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이전의 조선시대 여성은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대개는 혼인하면 출가외인이 되어 현모양처로 사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살았던 생각이 난다. 지아비를 뒷바라지하고 자식들을 잘 키우고 집안을 화목하게 만드는 일이 인생의 최대 목표로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21세기를 맞은 현재, 결혼 풍습은 많이 바뀌었다. 또한 엄마로서 만의 역할이 아닌, 직장인으로 혹은 사회활동가로 사회에서 차지하는 여성들의 역할도 크게 변했다. 이제 한류를 대표하는 걸그룹은 K팝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정치계에서도 여성 정치인은 새 바람의 주역으로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 시대에도 요즘처럼 눈에 띄는 '센 언니'들은 없었을까? 물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럴 뿐이다.


이번에 새롭게 출간된 <조선의 걸 크러시: ‘남성’ 말고 ‘여성’으로 보는 조선 시대의 문학과 역사>에서는 기센 언니(?)들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역사적으로 실재했다고 알려진 여성들의 이야기는 물론 소설이나 구전을 통해 전해지는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만들어진 여성 캐릭터 등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구성되어 있다.


p.36

영조 2년인 1726년에 나라에서는 박문랑에게 정려를 내려 준다. 칼을 끼고 말을 달려 많은 사람 가운데로 뛰어드는 늠름한 모습은 <삼강행실도>에 실어도 조금도 손색이 없다며 영조가 박문랑을 칭찬할 정도다. 논란은 있었지만, 나라에서도 박문랑의 행동을 의롭다고 인정한 것이다.


p.133

금원은 열네 살이 되었을 때 부모의 공식적인 허락을 받은 후 남자로 변장해 세상을 만나기 시작했다. 충청북도 제천에 있는 의림지를 시작으로 단양 지역을 거쳐 금강산 일대를 마음껏 누비고 관동팔경을 빠짐없이 유람한 후 설악산을 관통했다.



이 책의 저자들은 한국학 연구자들로, 조선시대 여성 중에서도 유교적인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내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지닌 여성들을 찾아냈다고 한다. 또한 실록과 문집 같은 역사적인 기록은 물론 한문 단편소설, 야담, 국문소설 등에서 다양한 자료를 분석했다고 한다.


여기에 기존 연구 성과를 토대로 신문사에서 '조선의 걸 크러시'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내용들을 다시 정리해 27편의 원고를 보완하고 13편을 더해 전체 5부로 구성된 40가지 이야기가 담긴 한 권의 책을 펴냈다. 이 책에는 억압적인 세계와 충돌하거나 맞서기도 하고, 파격인 행동도 서슴지 않고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했던 조선의 새로운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복수를 실천한 여성을 비롯해 고전소설 속 영웅으로 비춰진 여성, 독립운동에 한 몸을 던진 여성, 남성을 능가하는 여성 시인, 소설가, 학자들도 나온다. 또한 자신의 사랑을 찾아 적극적으로 나섰던 여성, 뛰어난 기개와 재주를 가졌던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한다.


p.219

<노처녀가>의 주인공은 거의 쉰이 다 되도록 혼인하지 못한 것을 서럽게 생각하고 그 원인이 추한 외모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리고 군데군데에서 자신의 추한 외모를 부끄럽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 내용의 흐름을 보면 자신의 신체적 장애와 추한 외모에 불구하고 일상의 삶에 전혀 문제가 없음을 항변한다.


p.279

정조가 초계문신들에게 직접 시험을 출제했는데, 문제가 바로 김만덕의 전을 지으라는 것이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변방의 섬 출신 기생을 주제로 정조가 당대 최고의 젊은 지식인들에게 시험문제를 낸 것이다. 그 시험에서 서준보가 1등을 차지했는데, 그가 지은 <만덕전>이 정조실록 1796년 11월 28일 자 기사에 실려 있다. 체제공이 지은 <만덕전>과 더불어 만덕의 생애를 가장 잘 정리했다고 전해진다.



그러고 보면 과거 조선시대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주로 기생이나 궁중의 여인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하지만 새로운 현대 사극에서는 다양한 캐릭터의 여성들이 등장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올해 방송 전파를 탈 새로운 퓨전 사극으로 조선시대 변호사인 외지부에 대해 다룬 '조선변호사',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연인', 15년 차 수절과부와 금위영 종사관의 이중생활을 그린 '밤에 피는 꽃' 등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역시 남자 주인공 못지않게 여자 주인공의 활약이 기대되는 작품들이다.


이 책에서도 조선시대 여성의 삶과 걸 크러시라고 불릴 만한 독특한 캐릭터들을 모아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요조숙녀나 현모양처로만 여성을 기억하던 낡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조선 시대에도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며 멋진 삶을 추구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는 많은 자극제가 될 것이다. 영상 매체가 각광을 받는 시대지만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이 포스팅은 민음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 출처 : 박기자의 책에 끌리다, 책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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