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배신의 시대 - 격동의 20세기, 한·중·일의 빛과 그림자 역사의 시그니처 1
정태헌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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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 배웠던 국어 시간에 춘원 이광수의 작품을 배웠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그가 독립운동을 했고, 그의 작품이 뛰어나다고 배웠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일제강점기 시절의 변절자가 되어 있었고, 조선인이 일제에 귀의할 것을 주장했던 대표적인 친일파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 <무정>, <유정>은 여전히 서울대 선정 한국문학전집에도 들어가 있다. 한 세대가 나사 자라 30년이 넘으면 그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데, 이때 자라면서 배운 역사와 사상, 문화 등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다음 세대로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이 30년을 넘다 보니 일제에 동조하는 세력들이 많아졌다고 하는데, 지금도 우리는 친일 명단에도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변절자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들은 그때처럼 여전히 건재하다. 일제강점기 시대의 청산하지 못한 과거 문제는 지금도 뜨거운 감자다.


p.26

사회진화론을 공부하면서 중국의 위기를 인식한 루쉰은 그 원인으로 중국의 전통 사상을 지목하고 날카로운 비판의 메스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그가 다른 지식인과 구분되는 행보를 보인 이유는 분명 있었다.

일본 유학 시절 루쉰이 항상 책상 위에 두고 읽었다는, 19세기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한 배경이 된다. 니체는 근대적 이성을 비판하고 유럽 중심 혹은 근대 중심적 사고를 극복하는 사상을 만들어낸 철학자로서 오늘날에도 자주 거론된다.


p.78

왕징웨이는 쑨원과의 첫 만남 이후 그의 그림자처럼 동행했다. 1907년 쑨원이 일본을 떠나 동남아시아로 가서 활동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혈기 왕성한 20대 중반의 가슴속에는 혁명의 열정이 그만큼 컸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 아나키즘의 영향을 받아 여러 암삼 계획도 세웠다. 결국 1910년에는 마지막 황제 선통제의 섭정왕인 순천왕 암살 미수 사건으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17개월간 수감되기까지 했다.




이러한 시점에 출시된 <혁명과 배신의 시대>는 한국 근대사를 세계사 속에 비춰보면서 21세기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그려보자는 문제의식의 산물로 20세기 초에 살았던 인물들의 삶을 비교해 보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고려대 사학과 정태헌 교수는 제국주의, 사회진화론, 근대주의, 근대화론, 민(권), 평화와 같은 키워드를 제시하고 6명의 삶을 살펴보면서 오늘날에 배울 점과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민권을 싸운 조소앙 vs 근대의 힘을 추종한 이광수', '중국인을 깨운 루쉰 vs 친일의 상징이 된 왕징웨이', '조선의 독립을 변호한 후세 다쓰지 vs A급 전범 도조 히데키'가 그들이다. 전 세계가 힘의 논리로 지배되던 시절에 한국, 중국, 일본의 상징적인 인물로 처참한 현실에서도 희망을 찾으려 했던 루쉰, 조소앙, 후세 다쓰지를 예로 들었다. 이와 달리, 침략전쟁에 나서거나 동조하며 조국을 버린 왕징웨이, 이광수, 도조 히데키의 대조적인 삶을 비교해 보고 있다.


이 책에서 주목한 19세기 말 20세기 초는 세계사에서 제국주의의 식민지 침략이 끝물에 접어든 시기로 일본은 제국주의 대열에 편승했고, 한국은 식민지가 되고 중국은 아편전쟁 이후 열강의 지배를 받게 됐다. 1892년생인 이광수 외에 다른 이들은 1880년 대생으로 전통 학문과 근대 학문의 세례를 받았다. 또한 한국과 중국의 네 명은 모두 비슷한 시기에 일본 유학을 했다는 공통점도 있다고 소개했다.


p.130

조소앙은 그 세대의 지식층이 그랬듯, 이 책이 다루는 여섯 명 모두가 그랬듯 근대 학문의 세례를 동시에 받았다. 어렸을 때는 조부에게 한학을 배웠고 열여섯 살이 된 1902년 성균관 경학과에 입학했다. 구본신참 교육으로 개편된 성균관에서 전통 유학과 함께 근대 학제로서 자국의 역사와 지리는 물론 세계사, 세계 지리 등도 학습했다.


p.193

조소앙이 일제강점기 긴 세월 힘들게 만들어간 '열린 우파'의 삼균주의는 그동안 전쟁과 적대감 속에서 배제돼 왔다. 하지만 현재는, 일제강점기 절망 속에서도 독립운동의 희망을 키워갔듯이 남북 협력 평화공존의 시대를 열어가야 할 때이다. 다시 삼균주의 정신을 되돌아볼 때이다.


p.247

이광수가 황민화에 부응해야 하는 이유로 명시한 것은 '차별로부터의 탈출'이었다. 그리고 '폐하 한 사람'을 설득하는 일은 조선민족을 대표하는 '민족 지도자'만이 가능했다. 자신이 마땅히 소임을 맡아야 한다고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광수가 말한 소임은 조선인을 전쟁터로 내보내는 것이었다. 그는 학생들을 향해 침략전쟁에 나서라며 선전활동에 두 팔을 걷어 올리고 나섰다. 그는 아마도 자신을 알리 없던 도조 히데키와 이미 한마음이 돼 있었다.




참고로 21세기북스에서 새롭게 시대정신으로 읽는 지성사 '역사의 시그니처'를 제작 중이다. '역사의 시그니처'는 기원전부터 현대까지 각 세기의 대표적 시대정신을 소개하는 인문 교양 시리즈이다. <혁명과 배신의 시대>은 역사의 시그니처 시리즈 1편으로, 한 시대를 이끈 상징적인 인물들을 엄선해 그들이 남긴 말과 글을 소개하고 인류의 사상이 어떤 갈래로 이어져 왔는지 살펴보고 있다.


동시대에 상반된 삶을 살았던 인물로 조소앙은 민권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독립운동의 주체가 외부 세력이 아닌 '국민'이어야 한다는 기조의 「대동단결선언」의 초안을 작성했고,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민권이라는 개념을 정립했다는 의의를 지닌다. 반면 이광수는 근대의 힘을 추종하며 일본이 도발한 침략전쟁의 나팔수로 나서 비난을 받고 있다. 이처럼 이 책에서는 당대의 상징적인 인물 6명의 삶을 지성사적 관점에서 조망하고 있다.


그들이 남긴 말과 글을 통해 20세기 동아시아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는 게 쉽진 않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당시 엘리트라 불리던 각국의 청년들이 서구로부터 밀려들어 온 제국주의, 근대주의, 사회진화론 등과 같은 '근대' 이데올로기에 어떻게 반응했느냐에 따라 그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이 포스팅은 21세기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 출처 : 박기자의 책에 끌리다, 책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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