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 큐레이터 - 박물관으로 출근합니다
정명희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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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으로 출근합니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한번쯤, 큐레이터>는 19년 차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정명희 씨의 에세이다. 박물관에서 하는 그녀의 일과 전시, 그리고 소소한 일상을 기록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지난 2013년에 만났던 학예연구사 혹은 큐레이터들과 만나 인터뷰를 했던 때가 생각났다. 취재기자로 일하면서 IT 분야는 물론 애니메이션, 게임, 디자인,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전시기획자이면서 박물관 혹은 갤러리 큐레이터로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는데 최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송한나 뮤지엄큐레이터연구소 대표, 이일수 전시기획감독 겸 미술서 작가, 그리고 최근까지 인연을 맺고 있는 정유선 큐레이터(현재 비트리 갤러리 대표)까지.


당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꽤나 열정적으로 살고 있었다. 또한 박물관이나 갤러리가 큰맘 먹어야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던 기억들이 새롭다.


p.8

큐레이터로 산다는 것은 환상과 거리가 먼 매우 현실적인 하루하루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고 꿈꿨던 모습과는 매우 다를 수 있고 예상치 못한 돌출 상황에 조심하기 바란다는 주의사항만 잔뜩 적을 수는 없지 않나.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것이 거의 다 환상이라며 이 직업군을 꿈꾸는 이들을 만류하지만, 혼자서는 못할 것 같은 일을 함께 끝냈을 때의 뿌듯함은 묘한 중독성이 있다.


p.10

같은 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비슷한 느낌은 전시를 준비할 때와 내가 기대하는 따뜻한 광경이다. 느낌의 세계를 공유할 때면 어떤 대화도 필요하지 않다.

전시를 보고 있으면 자잘한 걱정이나 고민거리, 뭔가에 쫓기던 불안감을 내려놓게 된다. 적어도 바라보는 순간은 그냥 그대로 있어도 괜찮다는 마음이 든다.





<한번쯤, 큐레이터>의 저자인 정명희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는 자신은 매일 출근하는 곳이지만 박물관은 큰맘 먹어야 간다거나 어디부터 봐야 할지 막막하다는 말에 크게 공감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 말에 나 역시 공감한다.


취재차 갔었던 워싱턴 DC에 위치한 스미소니언박물관의 엄청난 규모에 압도되었던 적이 있는데, 정말 어디서부터 뭘 먼저 봐야 할지 난감했던 기억도 여전히 생생하다. 큐레이터와의 인연이 있었던 때문인지 몰라도 은퇴한 유물의 오래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이들을 빛나게 만드는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는 박물관 큐레이터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디지털복원전문가로 활동 중인 박진호 박사와 인연이 있는 장소로, 이촌역 주변에 위치하고 있어 멀지 않아 10여 년 전에는 꽤 많이 갔었다. 기자가 아닌 큐레이터로 일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나마 했던 기억이 있다. 어떻게 생각해도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p.31

입사 후 3년 동안은 사수를 따라다니며 여러 업무를 맡았는데, 그중 가장 오랜 시간 담당한 일이 유물 등록이었다. 발굴된 후 국가에 귀속된 유물, 구입 절차를 밟아 새 식구가 된 유물, 기증자의 손을 거쳐 박물관으로 들어온 유물, 문화재 사범이나 도굴꾼 손에 넘어갔다가 우여곡절 끝에 박물관 소장품이 된 유물 등 다양한 사연을 지닌 유물을 박물관 식구로 등록하는 일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주민등록증을 발급하는 절차다.


p.88

어떤 전시 주제를 맡든지 간에 큐레이터에게 '연결'은 중요한 관심사다. 어찌 보면 공부하는 이유뿐 아니라 살아가는 이유도 자신만의 관점을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 같다.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도 비슷하다. 위대한 예술은 매번 새롭게 태어난다. 유물 앞에 오래 서 있는 이들이 무엇을 경험할지는 단정할 수 없다. 전시를 기획한 이의 관점이나 의도에 갇히지 않는 만남의 자리를 기대한다.





<한번쯤, 큐레이터>는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우아한 모습의 큐레이터가 아닌 오래된 유물들이 모여 있는 박물관에서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의 실제 삶은 어떻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또한 박물관의 일상은 관람객이 없는 휴관일에 더욱 바쁘고, 박물관 큐레이터는 전시 기획뿐 아니라 행정 업무도 해야 하는 공무원이라는 점, 일반인에게 전시되는 유물은 수장고 유물의 극히 일부일 뿐이라는 점 등 큐레이터의 시선을 따라 박물관의 이모저모를 엿볼 수 있는 재미난 책이다.


그녀의 다양한 이야기 중에서도 '혼자일 때 더 좋은 곳에 누군가와 함께했고 그 시간이 편안했다면, 그는 당신과 주파수가 비슷한 사람일 것이다'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과 가봤던 곳이나 가보고 싶었던 곳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기억은 오래도록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포스팅은 인디캣책곳간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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