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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평점 :
책 제목을 한참 봤다. 목울대가 울컥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떨어져 사는 가족은 물론 친구들과도 쉽게 만나거나 어울리지 못하는 요즘, '어떻게 지내냐'라고 묻는 말에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학창 시절엔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친구였는데, 지금은 뭘 하고 살까. 이런저런 생각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출근했다.
<어떻게 지내요>는 시그리드 누네즈의 에세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다. 작품 속 주인공인 '나'는 암 말기 진단을 받은 친구의 연락을 받고, 병문안을 위해 낯선 도시에서의 생활을 그리고 있다. 친구가 불쑥 내민 뜻밖의 제안으로 안락사에 필요한 약을 구하게 되고. 자신이 죽을 때까지 함께 지내달라는 친구의 청을 듣게 되는데 ...
p.16
핵의 위협이 없다고 가정해봅시다. 기적이 일어나서 하룻밤 사이에 전 세계의 핵무기가 전부 산산이 부서져버렸다고 해봅시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수 세대에 걸친 인간의 어리석음과 근시안적 자기 자신만이 초래한 위협에 직면해 있지 않을까요...
책을 읽다 보니 영화 <써니>가 떠오르는데, 나만 그런 걸까? 축제 당일, 뜻밖의 사고로 뿔뿔이 흩어져 살다 25년이 지난 어느 날, 병원에서 암 말기 환자인 춘화와 마주친 나미는 당시 써니 멤버들을 찾아 나서고... 빛나던 청춘의 한자락을 함께 했던 친구들과의 추억이 진하게 배어 있는 이 영화처럼 <어떻게 지내요>도 그 시절에 함께 했던 친구들은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해지게 하는 소설이다.
<어떻게 지내요>에서도 죽음을 앞둔 친구와의 여행을 다루고 있다. 영화 <써니>의 춘화와 나미처럼 이 소설에서도 두 여성의 우정과 서로에 대한 배려 등이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가까운 친구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만약 내가 먼저 가게 된다면...
p.29
네 엄마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기억이 생생해.
아빠와 이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때는 나도 정말 힘들었어요-근데 그걸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엄마 아빠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려 했고, 두 분 곁에는 제가 있었죠. 하지만 내 곁엔 아무도 없었어요.
나는 친구의 부탁을 받아들이고 친구가 찾았다는 적당한 곳으로 함께 간다. 이제 둘만의 마지막 여행이 시작되고, 그들의 여정에서 서로 울고 웃으며 삶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나의 친구가 말기 암으로 죽어가고 있을 때, 전 애인은 생태계가 죽어가고 있다며 지구의 종말에 대한 강연으로 바쁘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생태계도 지금처럼 훼손되고 파괴된다면 어느 순간 자정능력을 잃고 침몰할 것이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두 가지 죽음에 대해 작가가 던지는 질문이 무엇일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어쩌면 작가는 삶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p.105
지금 어머니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그거예요. 남자가 말했다. 제가 요양원이란 말만 꺼냈다 하면 저와 의절하시겠다고 으름장을 놓으시죠. 그리고 사실, 연세에 비하면 혼자서도 잘 지내시는 편이긴 해요.
p.157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아마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사람일 친구는 요즘 책 읽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암 진단을 받은 이후 내내 그래. 친구가 말했다.
언제나 건강하게 잘 살 것 같지만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교통사고가 일어나고 있고, 질병이나 감염, 노화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때가 생긴다. 죽음이란 단어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다만 잠시 잊고 살 뿐이다.
무더위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달력이 9월로 바뀌면서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2년째 이어지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사뭇 진진해지는 요즘이다. 곧 추운 겨울이 올 것이고, 따뜻한 곳을 찾아 삼삼오오 모일 것이다. 마스크를 벗고 가까운 곳에 모여 '어떻게 지냈냐'라고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고 싶다.
이 포스팅은 엘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