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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와이프
JP 덜레이니 지음, 강경이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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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건, 결혼 정년기에 이른 사람들의 한결같은 소망이자 바람일 것이다. <퍼펙트 와이프>는 이러한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망인 완벽한 삶과 완벽한 사랑에 대해 그렸다. 물론 그 속에 숨겨진 완벽한 거짓말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까진 완벽해 보였다.
심리 스릴러 <더 걸 비포>, <빌리브 미>의 작가 JP 덜레이니는 신작 <퍼펙트 와이프>에서 '당신이 완벽하다고, 유일한 사랑이라고 말하는 그 남자를 조심하라'라고 경고했다. 그러고 보면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서도 완벽한 사람에겐 뭔가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그 비밀을 캐려고 했던 사람들은 다치거나 죽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p.29
그 일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우리가 그때 알았더라면, 우리의 미래 전문가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그 일이 결국 어떻게 끝날지 예측할 수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토록 낙관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았다고 한들 무슨 말을 하긴 했을까? 솔직히 그랬을 것 같지 않다.
p.31
"왜 이게 기억나지 않지?" 당신은 공포에 휩싸인다.
"기억을 창조하려면 처리 용량이 많이 필요해. 선택적으로 작업할 수밖에 없었어. 빈틈은 결국 저절로 메워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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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기억 정보를 가진 AI(인공지능) 뇌에 로봇의 몸을 가진 휴머노이드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이미 많이 등장한 상태라, 이 소설이 주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했다.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에서도 전신의체화 사이보그인 쿠사나기 모토코 소좌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이 소설 속의 여주인공 애비는 전투 로봇이 아닌 정말 사랑스런 아내의 모습이다.
<퍼펙트 와이프>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SF와 심리 스릴러가 결합되어 있어 영화 <토탈리콜>, <겟 아웃> 같은 영화도 연상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애비게일은 불의의 사고로 실종되었다가 깨어나 보니, 사람같은 인지와 지각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몸은 코봇(컴페니언 로봇(companion robot, 동반자 로봇)의 줄임말)이다.
병원 침대에서 막 깨어났는데, 이런 상태인 걸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애비는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됐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 앞에 남편이라고 말하는 팀이 서 있다. 팀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예술가이자 서퍼였던 것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기억의 조각들은 엉키고 설켜 지금의 상황이 더 혼란스러울 뿐이다.
p.73
책장을 반쯤 정리했을 때 스마트폰이 핑 하고 소리를 낸다. 누구일까 잠시 의아해한다. 하지만 곧 기억해 낸다. 당신의 전화가 다시 사용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팀밖에 없다.
p.105
"애비? 애비 컬런-스콧?" 경찰복 차림에, 키가 작고 체격이 다부진 여자 경찰이 당신 팔에 손을 얹는다. 산악 등반가처럼 많은 장비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컬런-스콧 부인, 저희와 함께 가셔야겠습니다. 저희가 신변을 보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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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몸이 로봇이라는 사실과 결혼생활에 대한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맞추는 애비게일이 나라면 어떤 생각이 들까, 잠시 생각해 본다. 애비는 자신을 되살린 남편의 동기에 의문을 품게 되는데... 두 사람이 영원히 함께 하자던 소망은 진짜일까 거짓일까? 비밀의 문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조금은 풀린다.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진실인지는 끝까지 읽어보시기 바란다.
참고로, 이 책을 읽다 보면 두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코봇 애비를 '당신'이라고 부르며 이야기를 끌고 가는 화자 중심의 화법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본문의 종이 색깔을 흰색과 회색으로 구분해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를 들어, 애비가 어떻게 이 팀에 합류하게 됐고, 팀과 결혼하게 됐는지에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회색 종이에서 찾을 수 있다.
p.111
"'잘못 짚다'니 무슨 말씀이죠?" 당신은 어리둥절해서 말한다.
"뭘 잘못 짚은 건데요?"
p.181
애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신은 다른 곳에 있는 사람처럼 그렇게 말했다고 대런이 우리에게 알려줬다. 마치 그녀의 마음 일부가 팀의 상상 속, 관개 시설이 잘된 미래의 밀밭을 여전히 바라보고 있다는 것 같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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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와이프>는 한 번에 쭈욱 끝까지 읽는 것이 좋지만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복잡하게 느껴진다면 흰색 종이 혹은 회색 종이의 이야기만 읽어보면 이 소설을 색다르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AI(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거나 새로운 분야에 접목하고자 하는 시도가 발전하면서 메타버스 같은 첨단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어쩌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코봇 애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등장할 날도 멀지 않은 미래일 수도 있다.
이 소설을 읽다가 문득 든 생각, 두 가지.
그는 왜 그녀를 코봇으로 살렸을까?
코봇이 된 애비는 자신의 현재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퍼펙트 와이프>는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애증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애비게일이 사라진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팀의 모습에서 사랑이 아닌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볼 수 있다. 또한 이 소설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의 이야기가 살짝 얹어져 있다.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조각한 여성상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데, 팀도 사람이었던 애비게일 보다 코봇 애비게일에 더 집착했던 것은 아닐까.
이 포스팅은 소미미디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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