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라이트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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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가 개봉했을 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 앞이 보이지 않는 정체불명의 기현상이 벌어진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눈먼 자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정부는 그들을 한 병원에 격리 수용하게 되는데...


남편을 보호하기 위해 함께 수용생활을 하는 한 사람(줄리안 무어)만이 앞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녀의 눈으로 본 세상은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이 영화 속 주인공이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원작을 쓴 작가는 누구일까 궁금해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비롯해 <눈뜬 자들의 도시>,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등을 쓴 작가는 포르투갈 출신의 주제 사라마구다. 그의 신작(?)처럼 소개된 <스카이라이트(CLARABOIA)>는 1953년에 씌여졌다고 한다. 그의 생전에는 출간되지 못했다가 사후에 출간된 유고작이라고 한다.


<스카이라이트>는 1940년대 후반의 리스본을 중심으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우리네 주말연속극이나 일일연속극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작가의 펜을 따라가다 보면 등장인물의 모습이나 주변 풍경들이 세밀하게 그려진다. 작가가 써놓은 텍스트만으로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이미지가 선명해질 때쯤 이야기는 정점을 향해 나아간다. 그런 점에서 볼 때 30대 초반의 젊은 작가였던 그에게서 섬세한 필력이 묻어난다.


이 책을 처음 보고서 든 생각은 왜 책 제목을 '천장에 있는 창' 즉, '채광창'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CLARABOIA(클라라보이아)'라고 했을까였다. '스카이라이트'도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생각해 보는 것도 소설을 새롭게 읽는 재미라 추천드린다.



포르투갈 리스본을 배경으로 한 <스카이라이트>는 3층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따라간다. 특별할 것 없는 소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통해 작가는 우리의 인생에 대해 여러 인물들을 통해 그만의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한 층에 두 가구씩 총 여섯 가구가 이곳에 살고 있다. 1층에 사는 구두를 만들어 파는 구두장이 실베스트르가 그녀의 아내 마리아나와 30년째 살고 있다. 실베스트르의 작업대는 침실 옆 창가에 있다. 커튼을 쳐서 방과 구분해 둔 이곳에서 그는 일을 하고 아내는 출근을 한다.


p.23

그는 침실로 돌아가 창가로 다가갔다. 그리고 창문 근처와 방의 다른 부분을 구분하는 칸막이 역할을 하는 커튼을 젖혔다. 커튼 뒤의 높은 단 위에 그의 작업대가 있었다. 송곳, 구두골, 실, 못이 가득 든 통, 밑창과 가죽 조각, 한쪽 구석에는 프랑스산 담배와 성냥이 드러 있는 주머니가 놓여 있었다.



그는 창문을 열어 두고 일하면서 가끔 창밖을 쳐다본다. 특히 그는 3층 이웃들을 좋아한다. 그들은 좋은 고객이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는 비어 있는 방에 새로운 세입자로 아벨 노게이라라는 젊은 청년을 하숙생으로 받아들인다.


그 옆집에는 카르멘과 영업사원인 엘밀리우 폰세카 부부가 6살짜리 아들 엔리키뇨를 키우고 있다. 카르멘은 스페인 출신으로 권태기에 빠져 있고, 남편과 소원해지면서 고향에 있는 부모에게 가고 싶어 한다.


2층에는 2년 전 뇌수막염으로 딸 마틸드를 잃고 실의에 빠져 사는 당뇨병 환자 로나 주스티나가 살고 있다. 그녀는 일간 신문사에서 야간 일을 하는 라이노타이프 식자공인 남편 카에타노 쿠냐에 주눅 들어 지낸다. 주스티나는 늘 검은 상복을 입고 지내고, 남편은 커다란 덩치를 가진 사람으로 폭력적이고 무례한 태도로 주변에서는 거친 사람이란 인식을 갖고 있다.


그 옆집에는 부유한 사업가인 파울리누 모라이스의 내연녀인 리디아가 살고 있다. 리디아의 엄마는 가끔씩 돈이 떨어지면 그녀를 찾아온다. 자식의 상황에 대한 이해보다는 돈만 밝히는 전형적인 속물로, 영화 [타이타닉] 여주인공 로즈의 어머니 루스 드윗 부카더와 닮아 있다. 리디아는 그런 엄마가 너무 싫지만 내색하진 않는다.


3층에는 이자우라가 자매인 아드리아나와 함께 살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남편과 사별했다. 이자우라는 재봉틀로 셔츠를 만들어 가게에 팔아 생활비를 벌고 있다. 그녀의 취미는 소설 읽기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스 음악 듣기다.


재봉틀을 돌릴 때마다 아래층(2층)에 사는 도나 주스티나는 야간 일을 하는 남편이 깰까 봐 전전긍긍하며 항의하러 오곤 한다. 두 자매의 어머니인 칸디다는 재봉 일을 조금 늦게 시작하면 어떠냐고 이웃 눈치를 보지만.


이들과 함께 사는 이모 아멜리아는 도나의 남편이 한밤중에 무례한 발자국 소리로 잠을 깨운다며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두 사람의 외모가 아주 비슷했는데 흰머리, 갈색 눈, 장식이 없는 검은 옷, 찢어지는 목소리로 쉬지도 않고 빠르게 말을 쏟아내는 것도 비슷했다.


p.31

자다가 깨면 남편이 엄청 화를 내는데, 그걸 받아줘야 하는 사람이 나예요. 그래서 그 재봉틀 소리를 혹시 조금만 줄여주신다면 정말 감사할...

네, 이해해요. 하지만 제 조카도 일을 해야 해서요.

그러시겠죠. 사실 저는 별로 상관이 없어요. 하지만 남자들이 어떤지 아시잖아요...

그럼요, 알죠. 그리고 댁의 남편이 새벽에 귀가할 때 이웃들의 수면에 대한 배려를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도 알고요.



그 옆집에는 안셀무와 로잘리아 부부가 19살인 딸 마리아 클라우디아가 살고 있다. 이들 부부는 클라우디아 때문에 아침부터 다툰다. 그녀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일하러 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는 옆집에 살고 있는 리디아를 좋지 않게 생각하면서도, 그녀를 통해 모라이스에게 딸의 일자리를 부탁한다.



p.71

갑자기 조바심이 나서 도저히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지금 몇 시쯤인지 알 수 없었지만, 새벽 2시 언저리일 것 같았다. 이 건물 안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도나 리디리아의 밤손님이 대개 새벽 2시쯤 떠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영화 때문인지, 그 청년 때문인지, 오전에 도나 리디아를 만나고 온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머릿속에 호기심이 가득해졌다.






<스카이라이트>를 읽다 보면 '사는 게 다 그렇지'라는 말들에 공감하게 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바꾸고, 작품의 배경을 1988년 쌍문동으로 살짝 바꾼다고 해도 크게 어색하진 않을 것 같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된 이야기의 흐름은 등장인물들의 서로 얽히고 섞인 삶 속에서 그들의 삶에 필요한 인간관계나 사랑 등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한 동네에 오래 살면 옆집에 밥공기가 몇 개인지 훤히 안다고 했는데... 지금은 옆집에서 두세 달 사람이 보이지 않아도 전혀 알지 못한다.


작가는 '채광창'이라는 제목을 소설을 붙임으로써 희망을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 같다. 실베스트르는 젊은 시절의 자신과 닮아 있는 아벨과 체커(checkers: 상대방의 말 뒤에 있는 칸이 비어 있을 경우, 그 말 위로 뛰어올라 그 말을 잡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게임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를 두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 그리고 이웃들이 나누는 삶과 대화 속에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삶의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마치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처럼 이야기 속에 철학적인 삶의 지침이 드러나는 대목과 담아 있다. 주제 사라마구의 팬에게도 강추다. 젊은 시절에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작품을 쓰려고 했는지 이 작품을 통해서 살짝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 포스팅은 해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 출처 : https://blog.naver.com/twinkaka/222431114256


* 박기자의 끌리는 이야기, 책끌 https://bit.ly/2YJHL6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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