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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선 - 하드보일드 무비랜드
김시선 지음, 이동명 그림 / 자음과모음 / 2020년 12월
평점 :
<오늘의 시선>은 영화 유튜버 김시선 씨가 자신이 얼마나 영화를 사랑하는지, 아니 사랑하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묻는다. 언제부터 영화를 좋아했냐고. 그는 우연한 계기로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 걸 알게 됐고,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을 좋아하다 보니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꿈꾸는 마지막은 '영화 잘 아는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그의 꿈이 이뤄지길 응원한다.
그는 어렸을 적에 땅끝마을 해남에 살았는데 그곳에 두 개의 극장이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하나는 시장 주변에, 다른 하나는 시장 인근의 허름한 건물 3층에. 영화는 별다른 안내 없이 영사기사 마음대로 갑자기 시작되곤 했는데, 불이 꺼지고 등 뒤에서 불현듯 나타나는 불빛이 좋았다고 한다. 난 혼자 영화 볼 때가 좋다. 온전히 영화만 볼 수 있는 시간일 때가 좋다.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본 게 언제인지 아주 오래전 일처럼 느껴진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쓰기 등 기존 생활과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느라 영화를 보러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때는 영화 그래픽 분야를 취재하느라 매주 기자시사회를 다녀왔다. 영화 홍보를 위해 기자들에게 먼저 개봉 영화를 보여주는 기자시사화에 가면 영화 보는 재미 외에도 배우들이 인사를 오기도 하고, 인터뷰 시간도 있어서 흥미로운 일들이 많았다.
주의할 점은 기자는 영화만 보고 와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일정한 시간 안에 영화를 분석하고 기사로 써야 했기 때문이다. 영화 보는 재미에만 푹 빠져 있다가 기사를 쓰지 못하면 마감 일을 지키지 못해 데스크에 불려가 그동안 뭘 했느냐며 한참 훈계를 들어야 했다. 그게 싫어 어떻게든 마감 일에 맞춰 기사를 써냈던 기억이 필름처럼 돌아간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고등학교 다닐 때 친구랑 야자 땡땡이치고 극장에 갔던 일도 생각난다. 무슨 특별한 영화를 보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잠시,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물론 다음 날 담임쌤한테 불려가 복도에 서서 자기반성 시간을 가져야 했지만 그 시절의 장면도 추억의 필름으로 저만치 멀어져 간다.
영화는 현재의 삶에서 시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차원으로 날아가게 한다.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장면들을 눈과 귀로 들려주고, 때로는 상상했던 것 이상의 장면에 엄지척하기도 하고 기대 이하의 장면에 시간만 버렸다고 투덜거리기도 한다. 영화 기사를 쓰면서 2시간을 투자하고 본 영화가 건질 게 하나도 없을 때 뭘 써야 할지 괴로웠다. 그래도 기자시사회는 바쁜 취재 일정에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김시선 씨에게도 영화는 삶의 쉼표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현재 100만 명이 넘는 유튜브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지만 그는 자신이 오래전부터 영화를 사랑해 온 영화인이라고 말한다. 대학 4학년 때 인턴생활을 했던 일이 삶의 전환점이 됐다고 이야기했다. 그 당시 직장 상사가 '우리 회사는 뭐가 좋아서 들어왔냐'라는 별뜻 없이 묻는 질문에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매일 영화를 보고 퇴근 후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냈는다. 그러는 동안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극장이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느낌은 '존재의 이유'를 만들어준다는 것과 사랑하는 상대가 생기면 근거 없는 용기가 생기고, 그 용기와 믿음이 다음 행동의 근거가 된다며 영화를 좋아하게 된 것은 우연이자 필연이라고 이야기했다.
틈날 때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열심히 소개하는 일을 했는데, 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려보라는 제안을 듣고 4년 정도 꾸준히 영상을 올리다 보니 지금은 유명한 영화 유튜버로 거듭나게 됐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여전히 영화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냥 영화를 좋아해서 시작했고, 우연을 따라가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이 그의 답변이다.
그는 하루에 5편, 1년이면 700편의 영화를 감상하고 있다고 한다. 유튜브 채널 영상을 준비하고, 팟캐스트 방송을 준비하고, 라디오 게스트, 무비 토크 참석, 넷플릭스와 왓챠에서 소개하는 작품을 리뷰하고. 때로는 영화 모더레이터, GV 진행, 각종 영화제 참석, 인터뷰 등 또 한 사람의 영화인으로서 그의 일상에 대해 소개했다.
‘언제부터 영화를 좋아했는지’, ‘어떻게 영화를 좋아하게 됐는지’, ‘얼마나 영화를 좋아하는지’. 지금도 사람들은 그에게 이런 유의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고 한다. 그는 그저 우연히 사랑해서, 그냥 계속 사랑하고 있고, 아마도 사랑하는 것이 확실하다는 말로 대신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과거에 내가 좋아했던 것을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하면서 살 수 있다면 꽤 근사하고 멋진 삶이지 않을까.
어렸을 때 뭐든 만들어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지냈을 때가 있다. 종이든 찰흙이든 그림이든 조립식 장난감이든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을 좋아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내가 진짜로 좋아하던 일들을 지금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시 책을 덮고 생각에 잠긴다.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유튜버 해보고 싶다고 친구에게 아이디어와 잡는 걸 도와주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종이접기로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그가 영화를 좋아하고 지금도 좋아하는 것처럼 내 맘속에도 어렸을 적에 가졌던 만들기에 대한 열정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이 책에는 '인생 영화를 물으신다면',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 '700편 넘는 영화를 기록하는 방법', '대박 영화 말고 인생 영화가 체질, 박 대표 아저씨', '내가 별점을 싫어하는 이유', '마음에도 근육이 필요하다', '29초 영화 시대가 오고 있다' 등 영화와 관련된 재미난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유튜브 채널에서 만난 영화 찐팬 친구들과 신명나게 수다를 떨고 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올해 읽은 에세이들 중에서도 강추다.
이 글은 자음과모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 출처 : https://blog.naver.com/twinkaka/2221846986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