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을 남기는 글쓰기 - 쐐기문자에서 컴퓨터 코드까지, 글쓰기의 진화
매슈 배틀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반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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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사라져가는 시대,

글쓰기와 인간 지성의 관계를 묻다




<흔적을 남기는 글쓰기>를 쓴 매슈 배틀스는 작가이자 예술가이다. 그는 왼손잡이였던 어린 시절에 오른손잡이 위주로 되어 있던 펜 쓰기 교본인 팔머 필기법에 대한 추억을 시작으로 알파벳의 글자를 자신만의 독특한 특성으로 기억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글씨에 대한 남다른 기억들로 가득했다. 캘리그래피 수업을 들었던 열한 살 무렵 이후 아버지의 타자기에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고 이야기했다.


이 책의 저자는 의미 있는 글을 쓰는 것보다 글자 자체를 쓰는데 더 관심이 많았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타자기를 두들겨 의미 없는 글자들로 선과 물결무늬와 곡선을 그려보거나 작은 글자들로 이루어진 큰 글자를 만들어내는데 몰두했다고 설명했다.


내게도 타자기에 대한 몇몇 추억이 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에 다른 학교로 배정받은 친구가 가을 무렵에 학교 축제를 한다며 불러서 갔다. 그 당시 친구는 타자기를 이용해 유명인의 얼굴이나 그림을 찍어낸 듯한 그림을 그리는 동아리에서 활동 중이라며 M자로 가득한 그림을 보여준 적이 있다. 타자기로 찍어내듯 쓴 글씨로 가득한 그림은 특이했다.



그는 자신이 중학교에 다닐 무렵에 컴퓨터가 나온다는 소문이 돌았다며, 애플 II 컴퓨터가 교실 한 공간을 차지했던 기억을 소환했다. 이처럼 자신의 자전적인 경험들을 먼저 꺼내놓은 이유가 어떻게 자신이 글쓰기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설명하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디지털 시대를 맞아 글쓰기가 어떤 운명을 걸을지 생각할 때 역사로부터 어떤 희망을 되찾을 수 있을 지도 고민해 보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글쓰기는 최근에 발명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글쓰기를 통해 충족할 수 있는 욕구는 오래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가 글쓰기를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글쓰기도 우리를 필요로 한다고 이야기했다. 글쓰기는 텍스트와 이미지, 상상력으로 비옥해진 정신 속에서 한층 빨리 진화한다.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는 글쓰기는 그래서 더 매력적이라고 봤다.


매슈 배틀스는 다양한 측면에서 글쓰기의 본질과 역할에 대해 조명했다. 그는 글쓰기의 바탕이 되는 문자의 탄생에 주목했다. 문자의 발전에 대한 재치 있는 접근을 통해 신화 속에서 문자의 탄생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고대 인류의 놀이와 문자의 상관관계 등을 넘나들면서 '변하는 것, 스스로를 부수고 다시 만드는 것'이 왜 글쓰기의 타고난 속성인지 밝히는데 주력했다.



사물과 글쓰기가 갖고 있는 관계도 흥미롭게 들여다봤다. 이것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글자이자 문자는 한자다. 한자는 그림문자이자 표의문자라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19세기에 한자를 접한 서구 사상가들이 한자에 대해 어떤 환상과 이념을 투여했는지도 소개하면서 인간의 인지 능력과 추상 능력, 글쓰기의 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이 책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한 개념은 글쓰기의 ‘교권’이다. 신학적 주제에 있어 교회의 가르침이 가지는 권위를 일컫는 '교권'이란 단어에 대해 배틀스는 “인간의 경험에 글쓰기가 미치는 영향”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이를 글쓰기가 권력의 통로로 기능해온 사례들로 제국의 통치에서 글쓰기의 쓰임과 관련지어 설명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글씨를 새로 쓰고 새로운 의미를 전달하는 데만 머물진 않는다. 글쓰기는 때로는 권력의 도구로, 때로는 교권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다. 글쓰기의 교권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헌은 바로 '성서'다. 성서는 원본이 불확실하고 여러 사람에 의해 여러 번 베껴 쓰이면서 하나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



배틀스는 필사라는 문화를 통해 베껴 쓰는 행위의 의미에 대해서도 조명했다.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라 불리는 사회적 연결망은 베끼고 주석을 달고 논평하면서 생각을 공유하는 사회적인 연결망을 통해 탄생했다. 특히 기술의 발전은 인터넷과 SNS라는 공간을 통해 새로운 글쓰기로 글쓰기를 통한 관계 맺기로 표현되고 있다.


<흔적을 남기는 글쓰기>는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이다. 텍스트 저변에 깔린 수많은 이야기들의 얼개를 따라가다 보면 글쓰기는 여러 대륙을 거쳐 수 세기를 지나 새로운 이야기로 흥미진진한 지적 모험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섣불리 초대에 응하면 깊은 텍스트의 수렁에 빠져 한동안 허우적거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글쓰기와 글 읽기를 아끼고 사랑해온 이들에게 새로운 여정이 될 것이다.


인터넷 기반의 정보매체의 발달로 일찍부터 스마트폰에 노출된 아이들의 문해력이 과거에 비해 많이 떨어지고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지만 텍스트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했던 책과 독서의 힘이 언제까지 존재할지 생각해 볼 문제다.




저자는 글이 위기에 처했다면, 글쓰기라는 인간의 행위는 어떻게 될지, 디지털 시대에 글쓰기는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지, 우리에게 앞으로도 글쓰기가 필요할지 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흔적을 남기는 글쓰기>는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이다.



이 글은 반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 출처 : https://blog.naver.com/twinkaka/222107770195

양피지에서 스마트폰의 스크린까지, 글씨기는 어떻게 우리의 정신과 함께 진화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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