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트
델핀 베르톨롱 지음, 유정애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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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스트>는 1998년 3월 2일 당시 10살이었던 '나타샤 캄푸슈'의 실종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소설이다. 3096일, 8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온 나타샤 캄푸슈. 이 소설에서는 '마디손 에샤르'로 등장해 납치되었다가 탈출하는 과정에 대한 기록으로 소개된다. 마디손은 11살에 납치되어 5년 후 극적으로 탈출하는데, 납치범에 의해 감금 상태에서도 자신만의 일기를 쓰며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숙해가는 아이의 내면이 일기를 통해 섬세하게 그려진다.


<트위스트>는 피해자의 고통을 즐기는 가해자의 시선에서 벗어나 피해자인 마디손의 눈을 통해 어린이 유괴 납치 사건에 대해 다시 파고든다. 비록 납치범에게 잡혀 있지만 그녀는 납치범에 맞서고 그의 뜻대로 되지 않기 위해 애쓴다. 11살이면 아직 어린아이다. 그런 아이가 실제 상황에서는 8년, 소설에서는 5년. 10살 전후의 아이가 감당하기 힘들 세월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마디손의 시선으로 써 내려간 일기를 읽다 보면 먹먹해진다. 과거에 비해 사회가 발전하고 개인의 안전을 중요시하고 있지만 실종이나 납치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가족들도 여전히 많다. <트위스터>에서 마디손이 이야기하는 '까만 볼보의 날'은 자신의 일상이 무너지고 갇히는 때를 의미한다. 이 책에는 마디손의 일기 외에도 마디손의 어머니가 사라진 딸을 그리워하며 쓴 편지도 나온다. '아빠와 나는 지금 유령과 싸우는 중이야'라는 대목에서 딸을 잃어버린 엄마의 절규로 목이 멘다.

그날은 마디손이 중학교에 입학하는 날이었다. 하굣길에 비가 세차게 내렸다. 새끼 고양이 래리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마디손 옆에 까만 볼보가 멈춰 섰다. 차창이 내려가고 한 남자가 동물 병원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의 고양이가 아프다는 말에 마디손은 병원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려고 그의 차에 탔을 뿐이다. 그런데 길을 가던 중 남자가 갑자기 약품을 적신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았고, 마디손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그 후 마디손은 3평도 안 되는 좁은 공간인 그 남자의 집 지하창고에 갇혀 지내게 된다. 11살부터 16살이 될 때까지 5년 동안...


언젠가 '까만 볼보의 날'에 대해 이야기해 줄게. 그날을 생각하면 주먹을 물어뜯고 싶어져. 이제 내 안에 적을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중략)

또 그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까만 볼보의 날’에 대해 말해야 해. 그걸 빼면 이야기 하나 마나니까.

35~37페이지





<트위스트>는 국내에서는 처음 소개되는 델핀 베르톨롱의 소설이다. 그녀는 6살 때부터 시와 소설을 쓰며 글쓰기에 재능을 보여왔다고 한다. 20살에 집필한 <망가진 레이스>로 빌뢰르반 소설상을 수상하며, 프랑스 문예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트위스트>에서 작가는 어떻게 유괴 사건이 일어났는지를 시작으로, 그녀가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과정에 대한 소개를 기존에 소개됐던 실제 인물의 에세이나 영화와는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피해자 마디손의 시선으로 본 범죄 현장의 하루는 그녀의 일기로 기록된다. 물론 실제 유괴 사건에 대한 내용을 전혀 모른 채 소설을 읽을 수도 있겠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 침울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는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게 되면 가끔 실종자를 찾는 플래카드를 보곤 한다. 특히 어린아이의 납치는 중죄로 다스려지지만 여전히 전 세계에서는 납치와 실종되는 아이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트위스터>에 등장하는 납치범은 오랫동안 마디손을 스토킹하면서 납치 계획을 철두철미하게 세웠다. 그의 소원은 마디손의 사랑을 얻는 것이다. 마디손이 자신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도 하는데...


애야, 아빠와 나는 지금 유령과 싸우는 중이야.
더 강해지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는구나.
내가 널 사랑한다는 걸 결코 잊지 마라.

- 엄마가

46페이지





마디손을 납치한 남자가 자신을 '라파엘'이라고 소개했다. 마디손은 믿지 않았다. 그가 끊임없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거짓말은 지긋지긋하다 못해 자신의 아빠와 같은 이름일 거라곤 상상할 수 없다. 마디손이 쓴 일기장에 등장하는 'R'이 사실은 납치범을 지칭하는 말이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아빠 이름인 라파엘로 그를 부르길 거부해서 이런 이름으로 썼다. 마디손은 나중에 그의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 알아낸다.

한편 마디손은 납치된 상황에서 자신을 부르거나 지칭할 때 '트위스트'라는 별명을 사용한다. 그녀가 이런 이름을 쓴 건 '트위스트'가 1960년대 미국에서 트위스트와 함께 유행했던 춤인 ‘매디슨’의 프랑스식 발음에서 연유됐고, 사진작가인 자신의 할아버지 카프드비엘이 마디손을 부를 때 자주 ‘트위스트’라는 별명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을 ‘트위스트’라고 부른 이유는 R가 멋대로 상상하고 규정하는 ‘어린아이 마디손’은 되지 않겠다는 결심이 담겨 있다. 마디손은 R의 의도대로 길들여지길 거부하고, 그의 손길에서 벗어나 바깥세상으로 나가고 말겠다는 의지를 더욱 굳게 다진다.


아무튼...
이따금 나는 R가 이 책을 아는지 궁금해. 하지만 그에게 물어보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지.

(그가 오고 있어.)

137쪽




<트위스트>와 함께 보면 좋을 책과 영화가 있어 함께 소개한다. 지난 2011년 발간됐던 <3096일>은 나타샤 캄푸슈의 자전적 에세이다. 등굣길에 유괴되어 8년 동안 지하에 감금되었다가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그녀의 사연이 잘 묘사되어 있다. 특히 유괴 사건의 피해자인 그녀의 입으로 밝히는 갇혀 있던 시간들, 범인과의 관계, 탈출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담겨 있다. 2013년 개봉했던 <3096일(3096 Days)>라는 제목의 영화도 나타샤 캄푸슈의 이야기를 담았다.



납치되어 오 년 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소녀, 다시 산 자들의 세상으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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