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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
은애숙 지음 / 상상마당 / 2020년 2월
평점 :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을 쓴 은애숙 작가는 '이 소설집에는 나의 체험과 환상이 녹아 있다'라고 자신의 두 번째 소설집에 대해 소개했다. 그는 세상에는 달랠 수 있는 슬픔과 결코 위로가 되지 않는 슬픔이 있다며, 후자의 슬픔은 사라지지 않으므로 영원히 안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억울함과 원망의 층이 두꺼워져 결국 내면의 자양분이 될 것이라며, 그 모든 것들이 여과되고 정돈돼 작품으로 형상화되길 바란다고 소설집을 쓴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은애숙 작가의 신작 소설집에는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 '기다림'이란 제목으로 두 편의 중편 소설과 '낙원의 새마음운동', '내 안의 호수' 등 다섯 편의 단편 소설이 들어 있다. 작품마다 색다른 실험과 환상적 사실주의 흔적이 보이는데, 아르헨티나 출신의 시인이자 소설가, 수필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로부터 문학적 깨우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완성된 글은 작가를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오. 세상 권력은 자기의 힘을 자랑하나 글쟁이의 힘은 진실함에서 나오는 것이라오. 힘 있는 이들에게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는 글이 단명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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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은 몽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이야기를 구조를 갖고 있다. 어느 날 <구운몽>을 읽다가 잠든 홍루다 작가는 서포 김만중과 만난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몽롱한 상태에서 홍 작가는 <구운몽>을 쓴 김만중을 만나 놀라움도 잠시. 그가 귀양을 갔을 당시에 어떤 생각을 가졌고, 당시 조선의 시대 상황은 어땠는지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2부에서는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 미래에서 온 홍 작가가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김만중 앞에 나타나 조선의 미래에 대해 궁금해하는 그에게 답변을 해주는 형태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이란 제목만 봤을 때, 문득 영화 <코코>의 주제곡으로 유명한 '리멤버 미(Remember Me)'가 떠올랐다. <코코>는 음악을 좋아하고 돌아가신 사람들을 독특하게 기억하는 멕시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화제를 모은 영화다. 멕시코에서는 죽은 이들을 위해 음식이나 선물을 준비하지 않으면 '죽은 이들을 위한 날'에 이들이 이승으로 돌아오지 못한다고 믿는데, 우리가 돌아가신 분을 기리기 위해 음식을 마련해 제사를 지내는 것과 닮아 있다.
어찌 됐건 누군가에게 기억되지 못하고 잊혀진다는 건 슬픈 일이지만 살다 보면 잊어버리고 살게 된다. 아니 잊고 살아간다. 단짝이었던 친구도 결혼과 함께 가족 품으로 떠나고, 짝사랑했던 그녀도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어쩌면 작가는 국어 시간에나 배우고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던 김만중이란 <구운몽>의 작가를 불러내 잊혀진 작가의 세계를 다시 일깨우고 싶었던 건 아닐까.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에서 주인공 홍루다와 김만중이 나누는 대화는 시대와 역사를 뛰어넘고, 문학과 철학 등 다양한 주제를 심도 있게 파고들었다. 반면에 두 번째 중편인 '기다림'에서는 인간이 실수를 저지르는 원인으로 타고난 성정과 후천적인 학습이라는 전제를 깔고, 아내를 함부로 대하는 가부장적인 판수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의 페미니즘적인 경향이 살짝 비춘다.
다섯 편의 단편에서도 독특한 설정과 스토리 전개가 인상적인데, 단편 '아득한 꿈'에서는 철학 교수인 나 교수를 화자로 등장시켜 은애숙 작가 평소에 자신이 품고 있던 철학의 다양한 명제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반영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가부장의 권위가 위력을 떨치는 곳이죠. 여자가 살아나가는 방법이 몇 가지 있긴 하죠. 하나는 철밥통마냥 튼튼한 직장을 가진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력을 갖춘 싱글이 되는 것이죠. 그렇게 되려면 남자들이 감히 이의를 달지 못할 만큼 우월한 능력을 가져야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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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의 배경으로 철학과 교수가 됐지만 아내와는 소원한 결혼 생활을 이어 가던 중 아내로부터 이혼을 요구하는 편지를 받고 방황한다. 이러한 때에 철학과 수업을 듣는 연두라는 학생이 눈에 띄고 그녀의 적극적인 대시를 받고 어느 날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데... 그의 생각처럼 연두는 나 교수를 사랑한 것일까.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을 읽으면서 독립영화 일곱 편을 몰아 본 느낌이다. 때로는 몽환적인 판타지적인 역사 소설에서 때로는 현실 부정과 페미니스트적인 어필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작가의 상상과 스토리의 연결이 재밌다. 어쩌면 뻔한 소재에 이렇다 할 결말이 없는 독립영화 같은 느낌도 들지만 독특한 장르적 소설에 목말라 있다면 이 책은 독자들에게 색다른 느낌의 단물이 되어줄 것이다.
* 출처 : https://blog.naver.com/twinkaka/221944316181
이 소설집에는 나의 체험과 환상이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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