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크리스티나 달처 지음, 고유경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까운 미래의 디스토피아 세계를 그린 <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는 하루에 100개의 단어만 말할 수 있는 통제된 세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남자들은 언제든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지만 하루에 허락된 100개의 단어를 세는 ‘카운터’를 손목에 낀 여자들은 해당되지 않는다.




'하루에 100개의 단어만 말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건지 감이 오지 않아, 이 책의 배경 설명을 (공백을 제외한) 100개의 단어로 요약해 봤다. 딱 요만큼이다.


이 소설은 ‘순수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여성혐오자들이 지배하는 가까운 미래의 미국을 배경으로 삼았다. 국민을 고분고분한 양처럼 길들이고 싶어 하는 대통령과 모든 사람이 성경 교리를 지키며 살아야 한다고 믿는 목사가 권력을 장악했다.





진 매클렐런 박사는 네 아이의 엄마이자 신경학과 언어학의 권위자다. 남편과 아이 넷을 키우며 살고 있다. 어느 날 진은 페미니스트 친구인 재키가 수차례 경고했지만 그땐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그냥 무시했다. 남자들은 바깥 일을 해야 하고 여자들은 집에서 음식을 해서 가족을 먹이고 입히는 일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종교 지도자와 그의 추종자들을 보면서 터무니 소리라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학교에서는 종교 과목을 개설해 남녀의 불평등은 당연한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세뇌 교육을 시킨다. 진은 이런 말도 안 되는 과목은 선택하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10대 아들인 스티븐은 이런 교육에 몰입하게 되고 남녀 차별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교육에 세뇌된 것이다.



여자들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일에 동조하는 남자들이 많아지고 이런 일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서 여자들의 손목엔 족쇄가 하나씩 채워진다. 진은 말을 배우기 시작한 자신의 어린 딸마저 입을 다물고 사는 사회에 산다는 것이 황당하고 어이없지만 현실을 바꾸기 위해 나서지도 않는다.





누군가 내게 일주일 안에 대통령과 그의 빌어먹을 순수운동을 무너뜨리고, 무능하고 하찮은 모건 레브론을 끌어내릴 수 있다고 말한다면, 난 그들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맞서 싸우지도 않을 것이다. 어차피 아무 말도 하지 못할 테니까.


- 9페이지




이제 여자들은 남자들로부터 모든 것을 간섭받고 정해진 숫자 이상으론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성의 권리와 평등을 주장하던 현대사회가 어느 날 갑자기 유럽의 중세 시대이자 동양의 봉건시대로 회귀한 것이다. '순수'라는 이름 아래 침묵을 강요하는 현실과 닮아 있는 미래의 어느 시점이 배경인 이 소설은 여자들이 조용히 입다물고 살기를 바라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진은 모든 연구에서 손을 떼야 했고 가정주부라는 삶만 주어진다. 남편과 아들 셋은 언제 어느 때고 어떤 말이든 하고 싶은 말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지만 자신은 물론 어린 딸은 그날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의 양이 정해진 카운터를 차고 살아야 한다. 그녀 역시 이러한 상황에 저항하기보다는 입을 닫아 버린다. 100개 단어 이상 말하면 전기 충격이 가해지는 형벌에 처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진은 정부로부터 실어증 치료제를 만들어달라는 반강제적인 제안을 받는다. 한때 믿고 의지했던 남편마저 정부 정책에 동조하기 시작하자 그녀는 동료들과 함께 정부의 주요 인물을 암살하고 정권을 뒤엎을 위험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는데...




싸우고 싶지만 어떻게 싸워야 할지 모르겠다.

재키가 여기 있었다면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려줬을 텐데.

재키의 마지막 강의가 생각났다. 어느 4월 말 오후, 조지타운 아파트에서 바자회를 하며 이케아 양탄자와 주방용품, 주전자와 프라이팬 따위를 팔던 날이었을 것이다.

“작게 시작하면 돼, 지니.”

재키가 말했다.


-254페이지



<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의 작가 크리스티나 달처는 하루에 100개의 단어만 말할 수 있도록 통제된 세상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걸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가까운 미래의 암울한 사회를 그린 디스토피아는 영화나 소설의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일부 권력층이 모든 것을 장악해 버리고 지배하는 사회. 그 사회에서는 감시와 억압이 당연시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말과 행동에 자유로운가?



“진, 머릿속에 새겨야 해요. 당신 여자들은 믿을 수 없으니까요. 이제 세상은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아요(~ 277페이지 중에서)". 소설의 주인공이 당신이라면? 당신이 진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누군가의 입을 틀어막고 사는 걸 당연하게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살 것인가? 아니면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행동에 나설 것인가?



색다른 소재의 디스토피아를 기대하는 독자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다만 이 책의 도입부에서 중반부로 이어지는 이야기 속엔 뭔가 일어날 것 같은 긴장감으로 흐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의 끈이 다소 느슨해져 아쉽다.



* 출처 : https://blog.naver.com/twinkaka/221927916272


세상의 절반이 조용히 입 다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