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읽기 독서법 - 기적을 부르는 완벽한 고전 독서 교육
임성훈 지음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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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아이들을 위한 고전 독서 교육에 대한 지침서라고나 할까. 하지만 나처럼 다 큰 아이가 있는 사람에겐 그냥 본인을 위해서 읽어도 아주 좋을 듯 싶다. 고전은 읽지는 않았지만 내용은 다 아는 그런 이야기가 많다. 또한 옛문체이기 때문에 선뜻 읽기가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기술적인 면에서 현대보다 뒤지기는 하지만 우리보다 지혜로움이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도 자녀들에게 고전을 읽는 교육과 더불어 부모들도 함께 읽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저자는 고전독서가 "당당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기초 체력을 쌓는것'이라고 생각한다(p.7)고 밝히고 있다. 고전 독서를 통해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 인간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면서 사람다운 사람으로 성장해 나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한다.


저자가 말하는 고전 독서의 장점은 첫째, 자기를 성찰하는 힘을 키울수 있으며, 둘째, 사람을 이해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셋째로는 나만의 중심을 잡을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교양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하지만 이런 좋은 독서를 아이에게만 숙제처럼 하고자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부모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절대로 아이들은 책을 가깝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나도 어렸을때, 엄마가 도서관에 데리고 다니셨고, 무슨책인가 참 재미나게 읽으시는걸 기억한다. 대학생이 되어서 그때, 엄마가 참 재밌게 보셨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으며 엄마와 이야기 했더랬다. 그렇다고 어렸을때부터 지금처럼 책을 많이 좋아한것 같지는 않다. 지금은 책이 재밌어서 읽지만 아마도 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의 세계가 아니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딸아이도 어찌어찌 책을 읽기는 했지만,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것 같다. 그래도 스스로 그 재미를 알아가지 않겠는가.


올해부터 고전 읽는 비율을 좀 높이긴 했지만, 아직 필사를 하면서 읽은적은 없다. 단순히 좋은 글귀만 적어놓는 형태였다. 이 책에서도 필사도 아주 좋은 방법이라 권한다.


눈으로만 본 사실은 뇌가 아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렇게 얻은 지식은 대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보고 난 이후에는 바로 망각의 늪으로 빠져 사라져 버립니다. 하지만 손으로 어딘가에 기록을 해두면 때때로 그 내용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진짜 지식이 됩니다.(p.66)


이 말은 고전 읽기뿐 아니라 학습에 있어서 나도 적극 권유하고 싶다. 요즘 아이들은 손으로 쓰면서 외우기 보다 눈으로만 외우는데, 참 탐탁지 않다. 나도 얇은 책을 한번 필사하면서 읽는 기회를 가져봐야겠다.


저자는 또 아이와 함께 읽는 핵심 고전으로 <소크라테스의 변론>, <논어>, <어린 왕자>, <갈매기의 꿈>, <오디세이아>, <변신이야기>, <이솝우화>, <격몽요결>의 8편을 소개한다. 아무래도 나부터 이 고전을 읽어나가야겠다. 딸아이를 교육시킴에 이 방법을 쓰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도 함께 읽으면 아주 할말이 많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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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맨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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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밀크맨이라는 사람의 스토킹... 그래서 이 책 추리소설인줄 알았다. 이렇게 심오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애나 번스는 이 <밀크맨>으로 2018년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장은 그녀의 소설을 가리켜 "독설적인 익살을 사용해 잔인함과 성적 학대 등을 표현했다"고 한다. 세계사에 좀... 아주 많이 몰라서 그런데, 검색을 해보니 이 소설은 북아일랜드에서 '분리운동(Troubles)'로 알려진 시기에 살았던 실제 인물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북아일랜드 역사상 '분리운동'시기란 1968년 10월 런던에서 시민권 운동이 시작된 이후 1998년 4월 '성금요일 협정(Good Friday Agreement)'이 체결된 순간까지 약 30년 동안 지속해온 혼란의 기간이다. 이 당시, 북아일랜드의두 이해 당사자, 북아일랜드 대다수인 신교도와 연방주의자들의 연맹과 가톨릭 교도와 공화주의자들의 연맹들은 아일랜드가 영국의 일부로 남아야 하는지 아니면 하나의 국가로 독립해야 하는지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30년동안, 게릴라들이 일으킨 폭력 사태가 북아일랜드 전반을 지배했고 폭격과 폭동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이 '분리운동'의 시기에 3,600명 이상이 살해당했으며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신체적 그리고 정신적으로 피해를 입었다.(출처, 하비엔 http://naver.me/FECg2ET2)


이런 상황을 잘 몰랐으니 처음부터 녹아들지 못했던 것은 당연했다. 18세의 소녀. 그저 여기서는 '가운데 언니'라고 불뤼는 '내'가 주인공이다. 그녀가 회상을 하는 이야기이다. 꽤 마을은 폐쇄적인 공동체이다. 그녀는 여느날처럼 책을 읽으며 길을 가는데 밀크맨이라고 불뤼우는 남자가 그녀에게 말을 건다. 그 후로 그녀는 어디에서든 그가 자신을 스토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첫째 형부가 만들어낸, 그녀가 밀크맨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루머가 쫙 퍼지게 된다. 그녀는 열여덟이고, 밀크맨은 마흔한살의 유부남인데다가 무장독립투쟁 조직의 주요 인사이기도 하다. 밀크맨이 그년에게 어떤 신체접촉을 시도하거나 음란한 말을 하지도 않았음에도 그녀는 매우 불안감을 느끼는데, 주변 사람들은 오히려 그녀에게 책을 읽으며 걸어다니는게 문제이고, 그녀의 행실에 문제가 있다고 비난한다.


세상 어느곳이든 어느때든 간에 아직도 여성의 지위는 너무나도 낮은것 같다. 많이 향상되긴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가야할길은 험난한것 같다. 만약에 밀크맨이 무장독립투쟁 조직의 주요 인사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그때도 그녀에게 비난을 던졌을까. 지금만큼의 강력한 비난은 아니었을 것이다. 20년이 더 흐른 지금에서야 여성들의 '미투'운동이 진행되었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피해를 말하는 여성들이 늘었다. 또한, 여성을 향해 '꽃뱀'이라는 것과 왜 피해자답지 않느냐는 비난과 조롱도 거침없다. 아직도 우리가 나아가야 할길은 꽤 먼것 같다. 그런 사회에 묵직하게 화두를 던져주는 이야기인것 같다. 특히나 이 책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없다. 주인공도 그저 '가운데 언니'이다. 저자가 맨부커상 측과의 인터뷰에서 등장인물에 이름을 붙이지 않은 이유는 생명력이 없어 보이려고 만든 의도였다고 밝혔다. 어쩌면 그런 이유에서 이 소설을 읽는내내 온통 묵직함을 유지한다. 그만큼,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가 아닐런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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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쌍곡선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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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생, 올해로 90세인 노작가 니시무라 교타로. 그는 일본의 '국민' 추리소설가라고 한다. 하지만 왜 나는 그의 작품을 처음 읽었을까. 아니면 작가이름을 유심히 본게 얼마 안되서 읽었어도 인식을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이야기는 클로즈드 서클, 쌍둥이, 미싱 링크, 알리바이 공작등 본격 요소를 골고루 담은 본격 미스터리의 고전이자 교과서라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교과서가 아무래도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아닐까. 요즘 들어서 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형식을 빌어 오는 추리소설이 등장하는 것을 볼때, 단연코 추리소설계에서 범접할수 없는건 그녀일것이다. 어렸을 때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읽고 요즘은 뜸했는데, 아무래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나, 이 소설을 시작하면서 재밌었던 부분은 저자가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마치 소설속 인물들이 초대장을 받은 것처럼 말이다. "이 추리소설의 메인 트릭은 쌍둥이를 활용한 것입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영국의 추리소설 작가 로널드 녹스가 제시한 '탐정 소설 십계'를 보면 그 열번째로 '쌍둥이를 활용한 역할 바꾸기 트릭은 사전에 독자에게 알려야 공정하다"라는 항목이 있습니다"라고는 하는데, 가르쳐줘도 못받아 먹는 사람이 여기 하나 있으니 말이다.


이 살인은 두가지 사건이 전혀 상반된 이야기처럼 진행이 된다. 하나는 저자가 초반에 밝힌 쌍둥이가 등장하는 강도사건이다. 흰색 장갑을 꼈으나 얼굴은 전혀 가리지 않았던 쌍둥이 형제. 그들은 대담하게 연말 호황을 누리는 가게들을 찾아서 돈을 갈취한다. 그들은 잡고 보니 너무 닮아서 피해자들도 형제중 누가 실제로 강도를 저질렀는지 지목하지 못한다. 범인을 알고도 잡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만다. 다른 하나는 숙박비와 여행비를 모두 부담하겠다며 호텔로 초대하는 초대장을 받고 '관설장'에 모여든 사람들이다. 폭설이 내려 외부로 나갈수 있는 수단이 모두 끊긴채 고립된 곳에서 초대받은 사람들은 한사람이 살해되기 시작한다.


서로 상관 없을 것 같은 두 사건이 하나로 만나게 된다. 그들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지만, 범인들에게는 이유가 있었다. 물론 그들의 이유가 정당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게 남에게 입히는 경우가 있다.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말이다. 뭐, 요즘 세상 남에게 피해를 입히고도 몰지각하게 구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소설 입장에서 본다면 매우 재밌고, 가독성이 빠른 이야기지만, 실제 상황으로 본다면 이렇게 무자비하게 굴어야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속 이야기이긴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 소설보다 더한것도 있으니 뭐 말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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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박물관
오가와 요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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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마을, 한 노파가 세운다는 박물관의 기사로 일하기 위해 '나'는 이곳을 찾았다. 괴팍한 노파의 반응으로 볼때 채용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다음날 떠날 계획이었지만, 채용이 되었다고 한다. 처음 만난 사람에 대한 어머니 특유의 수줍음 같은, 극히 일상적인 감정 표현이었다니... 나라면 솔직히 이런 고용주와는 일을 못할것 같다.


노파가 만들려는 박물관은 '침묵 박물관'이다. 떠난자들의 유품을 전시하는 그런 박물관이다.


"매일 다양한 유품을 접하면서 깨달았어. 유품은 그 사람이 살아 있었다는 증거가 되는 물건인데, 왠지 사후 세계에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그러니까, 과거를 가둬놓은 상자가 아니라 미래를 투영하는 거울 같다는 생각이 들어."(p.118,119)


글세.. 아직 가까운 사람의 유품이란 것을 만나본적이 없어서인지 유품에 대한 느낌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유품으로 그 사람과의 추억을 회상하기도 하고 간직하는 것은 꽤 좋은 느낌이다. 화자인 '나'도 어머니의 <안네의 일기>를 보면서 마음의 평안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의 신상에 일어나는 일 가운데 쓸모 없는건 하나도 없어. 세상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의미가 있고, 그리고 가치가 있어."(p.143)


그런데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것은 왜 이들은 유품을 모으기 위해 정당한 방법을 쓰지는 않는다. 박물관을 열었을 때 관련된 방문객들이 오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사람들은 여러 방법으로 생을 마감한다. 아주 오랫동안 살다 수명을 다해서 마감하기도 하고, 요절하기도 하며, 또한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이 마을에서도 50년만에 살인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이 곳에 유일한 외지인인 화자에게 무언가 있을까 생각도 했지만 여전한 헛다리는 어쩔수 없다.

오가와 요코라는 작가는 이번 작품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침묵박물관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잔잔하게 보여줄지 알았는데 급작스런 살인사건이 등장하게 된다. 사라진 영혼들의 유일한 안식처를 자처하는 침묵 박물관에선 더 수집할 수 있는 유품이 생기고 박물관이 확대되게 된다.


이 책을 다 읽고나서 문득 드는 생각은 내 가족들은 나의 유품으로 어떠한 것을 간직하며 어떻게 기억될 것일까 하는 것이다. 혹은 나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후에 남겨진 사람들이 기억하게 되는 모습은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린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를 좋게 생각하고 그리워 하든, 나를 비난하든 그것은 어쩌면 내가 삶을 어떻게 사느냐가 결정하는것 같다. 먼 훗날 내 유품을 보며 좋은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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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인자에게 무죄를 선고했을까? -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12가지 충격 실화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 지음, 이지윤 옮김 / 갤리온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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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0년전쯤인가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라는 책을 읽었다. 어째 제목이 비슷하다 했는데, 역시나 같은 저자의 책이다. 저자는 1994년부터 베를린에서 형법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는 할아버지 발두르 폰 쉬라크가 나치 정권에서 청년돌격대의 대장으로 활약한 전력이 있어, 과거의 죄과를 씻기 위해 법률가라는 직업을 선택했다고 한다. 특히나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자신의 할아버지가 진술한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12가지의 실제로 일어났던 이야기가 있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12가지 충격 실화'라고 부제를 밝히고 있는데, 정말로 실제로 있을수 있는 이야기인가하고 의구심이 들기도 하다. 그만큼 우리네 세상은 믿기 힘든일이 너무나도 많이 일어난다.


특히나 「변호인」이란 제목의 에피소드에서 변호사가 된 셰이마가 맡은 사건의 의뢰인은 심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한 여성이 증인으로 등장을 한다. 그녀는 루마니아의 작은 농촌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피고는 그녀에게 요양보호사로 일하게 해준다고 약속하고 베를린으로 데려와서는 그녀를 강간하고, 위협했으며, 윤락가에서 일하게 했다. 몸과 마음이 병든 그녀가 더이상 일하지 못하겠다고 하자, 엄청난 폭력 끝에 칼로 오른쪽 눈을 찔르고 병원 문앞에 던져 놓고 떠났다고 증언했다. 셰이마는 변호인을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거부당했고, 계속 재판을 진행해여 피고는 징역 14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고심끝에 그녀는 항소를 했다. 항소심에서 1심 판결에 대한 파기환송 결정을 했다. 이유는 당시 재판부에서 증인이 증언하는 동안 피고를 재판에서 배제했다는 사실이다. 피고는 형사소송의 주체이므로 자신의 재판에서 참여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데, 재판부의 이런 사소한 실수가 다시 공판이 진행되었고, 새로 시작된 재판에 증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첫 증언 이후에 살해되었다는 제보가 있었다. 결국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자 피고의 무죄방면이 선고되었다. 변호사 윤리장전 제19조에 따르면 변호사는 의뢰인이나 사건의 내용이 사회일반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수임을 거절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한다.


참 씁쓸한 이야기들이 많다. 증인도 얼마나 고심한 끝에 증언을 하게 된 것인데, 그것이 아주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사소한 실수 때문에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목숨을 잃었다. 참..이럴때 법이란 참 무심하다. 법은 약자의 편이 아니라 돈있고, 힘 있는 사람들의 세상을 살아가는 수단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의 시작전에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고 나와 있는데, 이 말이 무색하다. 정말 모든 사람이 법앞에 평등할까. 법 앞에 평등했다면 이 세상에 억울한 사람은 생겨나지 않았을꺼 같다. 그러나 억울한 사람이 많은걸 보면 절대로 법은 평등하지 않을꺼 같다. 참 씁쓸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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