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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길주 옮김 / 아름다운날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우리에게 어떠한 길을 주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 있는가? 사랑 실천 그것만이 우리에게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러시아 대문호의 노력어린 이책의 모습은 인간의 삶에 대해서 살아가는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깊이 알려준다. 흔히들 말한다 개독개독 그러나 그 개독에서도 기독교인들이 살아가듯 올바른 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신앙인들에게 이책을 바치려는게 아닌지 생각해본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이 책은 신없는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네의 현실을 보여주는 책이 아닌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신없는 비참한 인간 본성으로의 삶은 자식에게 죽임을 당하는 아버지, 미쳐버린 무신론자, 법정에서의 심판, 자기 아버지를 죽이는 못난자식 이런 것들로 압축되어 표현한다. 단지, 사랑을 실천하는 수도자인 알료샤만이 평온한 삶을 살아간다. 이것이 실존이고 우리에게 진정하게 일어나는 사건인것이라고 도스토예프스키는 말한다. 신없는 삶에서 우리는 도덕적이고 좋은 삶을 살아갈수 있다고들 무신론자들은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럴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을 뿐이지 조시마 장로같은 예수님의 화신을 만나지 못한다면 우리는 전혀 도덕적이고 좋은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이다. 이책은 이런 실존적인 통찰을 가지고 우리에게 철학적인 선택과 우리의 삶에서의 좋은 변화를 가져다 주는 일을 한다. 이것이 전도라기보다는 신을 접함으로서 생기는 우리네의 삶의 변화로 인한 사랑의 실천으로 올바르게 살아갈수 있는 우리네의 가능성을 생각하기에 좋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본성이 악하다고 누가 말했는가? 성악설을 말한 사람이 했는가?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원죄론이 아주 중요한 자신의 인생에서 실존의 가장 중요한 말이었던것 같다. 이말은 유명한 신학자이자 천재인 존칼빈이 주장한 성경에서의 말일것이다. 그말에 공감했던 유명한 기독교 작가인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내용을 그대로 이책에서 쓰고 있다. 본성의 비참함 인간사의 모든것은 신없음에 비참함 본성에 타락해가는 우리네의 모습을 볼수가 있다. 신이 있어도 신이없는 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서의 신있는 삶의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네의 신실한 기독교인들의 행복한 삶을 그려주는 이 책의 모습은 우리에게 깊은 인생적인 통찰력을 주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심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는것 같았다. 특히 알료샤의 형의 마지막 심판에 대해서 무신론자의 심판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무런 죄가 없는 형의 모습에서도 그는 끝내 그를 심판하고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심판이 아닌 신의 심판인가? 싶기도 한 그런 상황이 만들어진다. 정확한 오심이기도 한 그런 심판을 당한 알료샤 형의 모습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심판으로서의 법은 과연 우리의 선택인가? 신의 선택이 아니라면 우리가 보기에 합당하지 않는 심판은 인간의 선택이지만 이런 선택으로 주어진 우리의 삶이 과연 윤택하기만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책은 처음 읽었을때 이게 왜 추천하는지 모르겟다고 생각할수 있는 책이지만 그렇지 않다. 이책은 읽고 나서의 모습이 달라지는 아주 좋은 책이다. 그 후가 좋은 책이다. 뒤끝이 좋은 책이라는 것이다. 먹은부터 느껴지는 에스프레소의 향기처럼 진하게 끝까지 우리의 삶의 여전한 통찰력으로 도와주는 아주 좋은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