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9. 난세에는신의보다 천하가 먼저다
마초는 마등의 아들이다. 마초의 용맹스러움은 천하에 소문이 자자해서 조조 또한 "마초가 죽지 않는다면 내게는 장사지낼 땅조차도 없겠구나!" 하고 걱정하였다. 그러나 마초의 삶은 용맹처럼 순탄하지 못하였다. 서기 211년, 마초는 한수와 함께 군사를 일으켜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조조에게 곧 제압 당하였고, 이로 인해 부친과 종족 200여 명이 한꺼번에 참변을 당하였다. 213년에도 궐기했지만 이번에는 처자식을 잃었다.
이러한 마초에게 나관중이 관심을 보인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것은 마초가 촉한의 오호대장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촉한 정통론을 주장하는 작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촉한을 이끈 오호대장의 영웅담은 이야기 전개에 필수적인 사항이다. 그런데 마초는 유비에게 귀순한 이후로 별다른 공을 세우지 못하였다. 자신의 실수로 가문과 가족을 몰살시킨 죄의식이 마음의 상처로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초의 지위는 나날이 높아졌다. 평서장군에서 표기장군을 거쳐 태향후까지 올랐다. 기록할만한 업적이 없는 마초를 유비는 어째서 최고의 대우를 한 것일까. 유비는 촉나라를 세우고 조조와 대항하기 위해서도 감숙성을 장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마초의 근거지나 다름없는 곳이다. 이에 유비는 마초를 오호대장에 임명하여 용맹스런 맹장의 위신을 세워주고, 이를 통해 힘 안들이고 서량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삼국지 기행 1권, 2권의 분량을 모두 합하면 거의 1,000 페이지에 육박하는 대단한 분량이다. 삼국지에 대한 평전, 인물평가, 삼국지의 큰 전투에 대한 분석까지 출판되어 나온 많은 책들이 있지만 이번은 기존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삼국지를 평가하는 중국인들의 시선과 생각을 최대한 많이 담으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중국의 '만만디' 로 통하는 시간이 걸리지만 조금씩 조금씩 다른 나라의 문화를 차지해 들어가는 중화 정신을 조심하라고 충고한다. 동북아 공정의 일부로 한국의 역사를 대하는 중국과 문화적 마찰이 일어나는 모습들을 간혹 보기도 하고, 외교적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국들에 우위를 점하려는 모습에서 과거 전통속 중국의 '대국' 문화가 지금도 남아 있음을 간간히 느꼈었다.
경제적으로는 협력을 하지만 속으로는 남의 좋은 것을 나의 것으로 흡수하고 세계의 중심은 중국으로 생각하는 그들. 우리는 어떻게 인식하고 바라봐야 할까? 분명한 것은 단기간적인 생각과 대응은 분명히 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용적인 모습을 보이며 명분을 충분히 모아, 대응에 대한 명확한 선을 가지고 외교적으로 협력을 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