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기행 2 -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개정증보판 삼국지 기행 2
허우범 지음 / 책문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을 알려면 삼국지를 읽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인들의 사고방식과 정서가 들어있는 문학작품이 바로 '삼국지 연의' 이다. 진수와 나관중을 거치면서 허구가 각색되고 사실적인 부분의 일부도 삭제, 추가되면서 더욱 극적을 변해가며 민중의 인기를 얻어갔고 이제는 중국을 대표하는 문화 컨텐츠로 자리잡게 되었다. 작가 허우범 교수는 전승되어 내려오는 삼국지의 조각들을 찾아 중국을 다니며 과거 영웅들의 일대기와 현실의 흔적들을 연결시켜주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작품 속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가 실제는 어디서 유래해왔는지? 황건적의 난을 일으켜 천하를 흔든 주모자들은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싶지 않은가. 작가가 풀어주는 삼국지의 재해석 속으로 들어가보자.

Prologue

삼국지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사서지만, '삼국지연의'는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적 사실과 무관한 이야기를 섞어 내었다. 실제 사실의 순서를 바꾸는 것은 아주 쉽다. 전혀 상관없는 인물과 사건을 일치시킨다거나 사건의 일부를 다른 사건으로 꾸미는 것도 수준급이다. 동시대에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끼워 맞추거나 필요하면 사실이 아닌 이야기도 아주 감동적인 사실처럼 만들어낸다. 그러니 있었던 사실을 과장, 확대 또는 재창조하는 것은 지극히 쉬운 작업이었다. 여기에는 위정자들도 한몫했다. 그들은 시대마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이데올로기를 창출하기 위해 날조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민중들은 그런 내용을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인식하게 되었다.

'삼국지연의'가 이처럼 역사적 사실보다 주관적 사실을 중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주관적 사실이란 '중화주의에 이로운 창조 작업' 을 의미한다. '삼국지연의'는 인간 군상의 백화난만한 삶을 그려내어 후세가 본받을 만한 삶의 경전이 되었다고 하지만, 이것은 겉모습일 뿐이다. 그 내면에는 중화주의로 표방되는 이민족 역사에 대한 자의적 예단과 폄훼, 그리고 중화민족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데 필요한 '중화공정' 이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Chapter 25. 천하의 동작대여! 영원하라

황하 유역의 4개 주를 차지한 조조는 원소의 잔존 세력을 제거하고 원소의 근거지인 업성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천하통일을 목표로 이곳을 북쪽의 도읍으로 삼았다. 조조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곳에 엄청난 경제력을 동원하여 성을 쌓았다. 동작대와 금호대 그리고 빙정대 3대를 짓고, 세 누각을 아치형 다리로 연결하는 그야말로 화려한 궁전을 만들었다. 조조는 이곳을 정치, 군사 및 문학 활동의 발판으로 삼았다.

Chapter 26. 유비와 손잡고 조조를 친다

Chapter 27. 손권, 수성의 군주로 우뚝 서다

손권의 통치는 기다림과 인내심의 미학이었다. 조조라는 강적을 대응하려면 소흘한 판단과 성급한 행동은 패망의 지름길이 될 수밖에 없다. 진중하게 참고 기다리며 정세의 변화를 읽는 힘이 필요한 것이다. 손권은 이를 이용하여 적절하게 밀고 당기는 정치술을 펼친 것이다. 그래서 조조와 적벽에서 전투를 벌이기도 하지만, 조조군이 수몰되어 낭패를 당하지 않도록 알려 주며 조조를 추켜세우고 자신을 낮추기도 한다.

유비와의 동맹 관계 유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형주를 빌려주며 가깝게 지내기도 하고, 형주를 빼앗으며 동맹을 깨기도 한다. 하지만 필요하면 또다시 동맹을 유지하는 외교력을 발휘한다. 이는 마치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두지 않고, 생각하지 못한 수를 두는 프로 기사의 바둑처럼 손권의 정치와 외교술은 변화무쌍한 것이었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인내심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손권이야말로 조조와 유비 사이에서 적당하게 거리를 두며 오나라의 이익을 챙긴 뛰어난 군주가 아닐 수 없다.



Chapter 28. 눈물 속에 숨긴 발톱을 드러내다

유장은 유비를 지성으로 맞이하였다. 매일같이 잔치를 열고 서로가 정답게 마음을 나눈다. 방통과 법정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유장을 처치하자고 권하지만 유비는 듣지 않는다. 위연이 칼춤을 추다가 적당한 기회에 유장을 처치하기로 하였으나, 유장의 부하인 장임이 눈치를 채고 칼춤 상대로 나섰다.

유비가 서로를 호통 치자 칼춤은 중단되었다. 유장은 유비를 더욱 확고하게 믿는다. 유비의 상황 판단 연기에 유장은 이미 서천을 내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유비는 고수다. 그것도 보통 고수가 아니라 조조가 인정하였을 정도로 정치 고수다. 그런 고수의 정치관 또한 조조와는 언제나 상대적이다.

유비는 어수룩하게 보이는 용인 것이다. 유비가 맘만 먹으면 유장을 제거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유비의 생각은 다른 곳에 있다. 바로 천하의 여론인 백성들의 신임이다. 특히 서천의 대표인 유장을 함부로 처단한 후 발생할 분란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빨리 차지하여 금방 잃는 것보다는, 시기를 늦추되 확실하게 주인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민심이 곧 천심' 이라는 말을 유비는 누구보다 확실하게 믿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유비가 조조보다 정치적으로 훨씬 앞섰다고 볼 수 있다.



Chapter 29. 난세에는신의보다 천하가 먼저다

마초는 마등의 아들이다. 마초의 용맹스러움은 천하에 소문이 자자해서 조조 또한 "마초가 죽지 않는다면 내게는 장사지낼 땅조차도 없겠구나!" 하고 걱정하였다. 그러나 마초의 삶은 용맹처럼 순탄하지 못하였다. 서기 211년, 마초는 한수와 함께 군사를 일으켜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조조에게 곧 제압 당하였고, 이로 인해 부친과 종족 200여 명이 한꺼번에 참변을 당하였다. 213년에도 궐기했지만 이번에는 처자식을 잃었다.

이러한 마초에게 나관중이 관심을 보인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것은 마초가 촉한의 오호대장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촉한 정통론을 주장하는 작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촉한을 이끈 오호대장의 영웅담은 이야기 전개에 필수적인 사항이다. 그런데 마초는 유비에게 귀순한 이후로 별다른 공을 세우지 못하였다. 자신의 실수로 가문과 가족을 몰살시킨 죄의식이 마음의 상처로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초의 지위는 나날이 높아졌다. 평서장군에서 표기장군을 거쳐 태향후까지 올랐다. 기록할만한 업적이 없는 마초를 유비는 어째서 최고의 대우를 한 것일까. 유비는 촉나라를 세우고 조조와 대항하기 위해서도 감숙성을 장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마초의 근거지나 다름없는 곳이다. 이에 유비는 마초를 오호대장에 임명하여 용맹스런 맹장의 위신을 세워주고, 이를 통해 힘 안들이고 서량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삼국지 기행 1권, 2권의 분량을 모두 합하면 거의 1,000 페이지에 육박하는 대단한 분량이다. 삼국지에 대한 평전, 인물평가, 삼국지의 큰 전투에 대한 분석까지 출판되어 나온 많은 책들이 있지만 이번은 기존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삼국지를 평가하는 중국인들의 시선과 생각을 최대한 많이 담으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중국의 '만만디' 로 통하는 시간이 걸리지만 조금씩 조금씩 다른 나라의 문화를 차지해 들어가는 중화 정신을 조심하라고 충고한다. 동북아 공정의 일부로 한국의 역사를 대하는 중국과 문화적 마찰이 일어나는 모습들을 간혹 보기도 하고, 외교적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국들에 우위를 점하려는 모습에서 과거 전통속 중국의 '대국' 문화가 지금도 남아 있음을 간간히 느꼈었다.

경제적으로는 협력을 하지만 속으로는 남의 좋은 것을 나의 것으로 흡수하고 세계의 중심은 중국으로 생각하는 그들. 우리는 어떻게 인식하고 바라봐야 할까? 분명한 것은 단기간적인 생각과 대응은 분명히 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용적인 모습을 보이며 명분을 충분히 모아, 대응에 대한 명확한 선을 가지고 외교적으로 협력을 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