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뛰는 대로 가면 돼 일단 떠나라 - 나 홀로 내 맘대로 세계여행
김별 지음 / 에이블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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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잘 알려면 함께 여행을 떠나라는 외국 속담이 있다. 그만큼 여행은 어렵고 힘든 일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는 뜻이리라. 이 책의 작가는 30년 간의 직장생활을 끝내고 자신의 삶을 둘러보기 위해 혼자 떠나는 세계 여행을 선택한다. 젊은 시절 호기롭게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고 원대한 꿈을 가지고 비행기에 오르는 열정의 여행과는 다른, 내가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남은 인생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여행이다. 5개월 반 동안 세계 여러 나라를 누비며 기록한 작가의 일상들을 들여다보자.

Prologue

- No plan is good plan!

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간을 호모 비아토르 Homo Viator, 즉 '여행하는 인간' 으로 정의했다. 여행 본능이 우리 안에 새겨져 있다는 말이다. 여행은 내 버킷 리스트에서 늘 일 번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고 '인생은 타이밍' 이라 보기에, 그때가 되어서 떠났다. 어떤 매력적인 목적지가 나를 끌어 당긴 게 아니라 떠날 때가 되었기에 떠나야 한다는 당위성이 나를 움직였다.

내 여행은 어슬렁거리며 여기저기 걷는 것이었다. 길 위의 모든 순간순간이 여행이었다. 하루 만 보 이상 걸으면서 풍경과 사람을 보고 주위를 살피며 나만의 사색과 사유를 즐겼다. 그렇게 몸소 겪은 시간들이 인생의 폭과 깊이를 더해줬다. 결과적으로 보면 여행을 의미하는 모든 단어를 두루 섞은 좀 긴 여정의 여행인 Journey 를 한 셈이다.

어디로 갈 건지 계획도 안 세우고 무작정 떠나 5개월 반 동안 북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18개국 48개 도시를 즐겁게 돌아다니다 무사히 잘 돌아왔다. 어디서 무얼 보든 놀멍쉬멍 할 시간이 차고 넘쳤기에 일상을 벗어난 쉼, 자유, 평화를 누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행은 나를 떠나기 전보다 더 가슴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떠남은 용기보다 간절함에 달려 있다. 간절함이 절박함이 되면 용기는 절로 생긴다.

가고 싶다면 일단 떠나라! 그 다음부터는 알아서 흘러간다!



Chapter 01. 보다 멀리 북아프리카로

- 빨리 빨리에서 슬로우 리듬으로

4월 첫 주인데 이집트는 이미 여름이다. 이곳은 우리나라보다 여름이 몇 달 빠르다. 바다 건너편에 사우디아라비아가 흐릿하게 보이는 게 신기했다. 지도에서만 보던 홍해 바다에 몸을 담그니 먼 곳에 와 있다는 실감이 났다. ... 햇빛은 강렬한데 습도 없는 바람이 불어 그늘과 실내는 시원했다. 게다가 생필품, 먹거리가 저렴해 마음이 푸근했다. 뜨겁지만 시원한 이 머나먼 이국의 여름을 사랑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더 큰 자아를 만나는 시간

여행은 시간, 돈, 체력 외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세상과 자신을 직면하기 위한 용기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일상의 안락함과 나에게 최적화된 환경을 두고 낯선 상황을 맞닥뜨릴 때 과연 있는 그대로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고민해보았다. 언제 어디서든 일어나는 일에 만족하고, 내가 선택한 것에 만족하고, 여행을 통해 배우는 것에 감사할 수 있다면 여행할 준비가 되었다 생각했다.

여행은 고착과 편견과 아집, 인습의 틀을 깨고 나의 가면인 페르소나를 벗고 더 큰 나를 만나는 한 발, 한 발의 경험이다. 이동하는 거리만큼 의식이 확장되고 지금 여기에서 나의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더 큰 자아를 만나는 시간이다.

- 시나이산에서 만난 사람들

여행은 다른 풍경, 다른 곳에서 나와 다르면서도 같은 사람을 만나 소통하고 나누며 함께 배우는 체험이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게 진짜로 아는 것이 아니었다. 괜찮다는 자기 변명과 합리화를 하며 살았었는데 정말 괜찮은 게 아니었다. 여행은 진실된 모습으로 나와 세상을 직면하게 해주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편이었다.

- 페트라, 시간 여행을 떠나다

페트라는 '바위' 란 뜻의 고대 유적 도시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다. 기원전 7세기부터 아랍계 유목민이 거주하다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6세기에 지진으로 묻혀버렸는데 19세기에 발견되었다. 아직 채 10퍼센트도 규명되지 않은 신비한 곳이다.

실크로드 교역지로 동서 문명의 교차점인 이곳은 붉은 사암이 둘러싼 천연 요새다. 거대한 바위 사이를 걸어들어가면 극장, 목욕탕, 상수도 시설이 있었던 숨겨진 도시가 나타난다. 바위를 깎아 그 속에 신전과 무덤, 동굴 거주지를 만든 나바테아인들. 그들의 붉은 도시 페트라의 장엄한 기운을 느끼며 거대한 바위 사이를 걸으니 마치 내가 시간 여행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Chapter 02. 매력적인 남동유럽

- 성경에도 기록된 조지아 와인

"물보다 와인에 빠져 죽는 사람들이 더 많다."

조지아 속담이다. 8천년 전에도 조지아에 와인이 있었다고 한다. 성경에도 술취한 노아에 대한 언급이 있고 수메르 점토판 기록으로도 남아 있다.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은 지역이 아라라트산 근처이고 아라라트산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로 알려지니 조지아의 지정학적 위치와 일치한다. 조지아란 이름도 포도덩쿨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조지아는 자체 포도나무 종뿐만 아니라, 점토 항아리 숙성 기술이라는 독창적인 와인 제조법을 갖고 있다. 조지아 남동쪽에 있는 내가 탐방한 와인의 본고장 카헤티에서 천 년 동안 내려온 전통 기술로 만든 와인은 맛과 향이 진하고 색깔이 고운 걸로 유명하다. 조지아가 이슬람 지배하에 있었을 때는 술이 금지되기도 했다.

- 절벽과 유황온천을 갖춘 천연 요새

트빌리시에서도 뷰가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또 다른 명소는 나리 칼라 요새다. 구시가지를 다 내려다볼 수 있고 쿠라강과 평화의 다리, 그리고 성 삼위일체 대 성당도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옆에는 조지아의 어머니상이 우뚝 서 있다. 요새 뒷면은 보타니컬 가든이지만 절벽이고, 요새 앞쪽 아래에 유황온천이 흐르니 그야말로 천연오새다.

조지아의 어머니상은 20미터 높이의 알루미늄상이다. 왼손에는 와인잔, 오른손에는 장검을 들고 있는데, 친구에게는 와인을 주고 적에게는 칼로 방어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칼을 높이 치켜든 것이 아니라 옆으로 들고 있는 모습으로 봐서 어머니의 수호 정신이 느껴진다.



Chapter 03. 추억의 프랑스, 이베리아 반도

- 푸른 아줄레주의 도시 포르투

포르투갈이라는 국가명은 '포르투 (항구 port)' 에서 비롯되었다. 이곳을 통해 대항해시대가 열렸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마스코다가마가 아프리카 연안 항로를 개척하면서 포르투갈은 대서양을 누비고 아프리카를 넘어 인도와 아메리카까지 바다의 제국을 이뤘다. 지금은 인구 천만에 불과하고 경제력도 유럽에서 하위권이지만 한때 엄청난 위상을 떨쳤던 나라다. 물가가 저렴하고 (프랑스 절반도 안 된다) 유럽인으로 안 보일 정도로 사람들이 순박해 보인다. 특히 포르투는 세계평화지수 상위권에 들 정도로 안전하면서도 살기 좋은 도시다.

- 바르셀로나는 1882년부터 공사 중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의 첫 건축물인 까사 비센스 Casa Vicens 를 제일 먼저 찾아보았다. 이곳은 1878년, 가우디가 26세 때 처음으로 참여한 건축 프로젝트로, 중산층이 많이 거주하던 지역에 지어진 저택이다. 타일 제조업자였던 주인의 의뢰를 받아 지은 집답게 초록색, 흰색, 노란색 등 형형색색의 타일을 활용한 기하학적이고 감각적인 외관이 특징이다. 가우디는 19세기 말 카탈루냐 고전주의 건축에서 벗어나 나무, 하늘, 식물, 곤충 등 자연을 건축에 접목했다. 그 결과 그의 건축물에는 곡선이 많이 사용되었다.

- 아직도 공사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사그라다' 는 '성스러운' 이라는 뜻이고 '파밀리아' 는 '가족' 을 뜻하므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우리말로 '성가족성당' 이다. 성 요셉, 마리아, 예수, 그리고 마리아의 부모, 사촌 엘리자베스와 성 세례자 요한 등 성가족들이 조각되어 있다. 가우디는 이곳을 만들며 건축과 장식의 조형미와 아름다움, 기능과 형태, 외부와 내부 사이의 완벽한 조화를 추구했다. 바르셀로나에 소재한 가우디의 여섯 개의 다른 건물과 함께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다.

1882년에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지금도 공사 중이다. 스페인 내전으로 한때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예수의 12사도를 상징으로 첨탑을 추가로 건설하는 등 프로젠트의 가장 큰 과제 중 일부가 남아 있다. 가우디 사망 100주년인 2026년에 완공할 계획이란다. 완공 후 다시 와봐도 좋을 듯 싶다.

혼자 떠나는 여행? 그것도 계획없이 떠나는 여행. 사전에 조사를 하고 동선을 파악하고, 미리 다녀온 사람들의 블로그나 정보를 종합해서 여행의 난이도와 과정들을 예상해서 움직이는 나와는 많이 다른 여행 방식이다. 모든 일에 임할때 방향성 없는 열정은 위험하다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지만, 여행의 산물은 경험이다보니 나의 지론과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다. 요즘은 어떨런지 모르겠지만 과거 한 때 해외 어학 연수가 인기를 끌기 시작할 무렵, 아르바이트로 꼬깃 꼬깃 번 돈을 모아 유럽 일주를 다니고 미주 배낭여행을 떠나는 것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외국으로 떠나는 것 자체가 낭만이라 여겨지던 그 대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우리는 살면서 어디론가 한번 쯤 훌쩍 떠나는 여행의 자유를 그려보지만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용기를 내는 건 쉽지 않다. 아마 일상 속 우리의 현실에 둘러 쌓여 스스로를 제한하고 있는지도 혹은 자유의 다른 이름인 혼자라는 외로움이 더 싫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20대 시절의 절반을 해외에서 보내기도 하고 프랑스에서 석박사 과정도 수료하면서 해외에서의 삶에 대한 경험이 비교적 풍부한 분이었기에 그러한 면에서 조금은 자유로움이 몸에 배여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여행지에서의 많은 사진과 감성, 그리고 보고 느낀 것들을 많이 전달해주고자 노력한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쉽지 않을 때 우리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여행기를 담은 수필집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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