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ssion 02. 살기 좋고 사기 좋은 부동산의 조건
Chapter 03. 남북관계와 부동산의 상관관계
- 현대 한국의 도시 구조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박정희 대통령이 행정수도를 건설하기로 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었습니다. 즉 안보가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고, 국토의 균형 발전을 꾀하는 것은 부차적이었습니다. 이 관점에서 오늘날의 서울, 대서울 그리고 한국을 보아야 기본적인 구조가 투명하게 한눈에 들어옵니다.
현대 한국의 도시 구조가 지금과 같이 결정된 데에는 몇 가지 중요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말기부터 식민지 시기에 걸쳐서는, 제국주의 일본이 침략의 교두보인 부산과 서울 사이를 직결시키기 위해 경부선과 이에 부속되는 철도들을 건설한 것이었습니다. 광복 이후에는 분단과 북한의 침략이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포항-울산-부산-창원-광양-여수로 이어지는 동남권에 공업도시가 발달한 이유도 이 두 가지 계기에 의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동남권이 박정희 전두환 두 대통령의 고향이었기 때문에 공업단지를 몰아주었다고 말하는 건, 역사의 흐름을 한두 사람의 존재로 설명하려는 영웅주의일 뿐입니다.
한국이 타이완의 중화민국과 국교를 단절하고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국교를 맺은 뒤로 인천항 평택항 등의 서해안 도시들은 다시 활력을 찾은 듯했습니다. 하지만 모두 아시다시피 시진핑 체제가 시작되면서 관계가 다시 악화되었지요. 앞으로 당분간은 서해안 시대가 찾아오지 않으리라고 저는 예상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에 서울시의 영동 개발이 시작된 것에도,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안보의 이유에서 한강 이북의 인구를 줄이려 한 박정희 정부의 구상이 있었습니다. 다만 이 개발사업이 너무나도 성공해서 서울시의 경제축이 강북에서 강남으로 옮겨질 줄은 박정희 대통령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대도시 주변에 그린벨트를 설정한 것 역시 안보상의 문제였습니다. ... 다만 이제는 북한으로부터의 안보 위협이 상당히 줄어들었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에 민감한 대기업들이 한반도 남부가 아닌 수도권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박정희 정권 때 구상된 행정수도의 규모가 크게 축소되어서 세종시라는 형태로 실현된 이유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안보 위협의 크고 작음이라는 관점에서 지방 균형발전과 수도권 집중 현상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 한강 남쪽보다 북쪽이 더 위험하다?
사람들이 한강 남쪽보다 북쪽을 더 위험하다고 느끼는 것이 실제로 안보 위협이 크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노태우 대통령이 일산신도시와 인천공항을 건설하고 북방외교를 펼친 시점에, 한국과 북한 사이에 재래식 무기 경쟁은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 뒤로 북한은 재래식 무기로 체제 경쟁하는 것을 포기하고 핵무기로 자위하는 방향을 선택했다고 판단합니다.
2000년부터 파주시에 교하지구와 운정신도시가 건설되고 있지요. GTX-A도 운정까지 운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안보 위협이 크다면 실행될 수 없는 국가 프로젝트 입니다. 그래서 저는 일부 시민이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껴서 파주 고양을 피해 한강 남쪽에 주거를 마련하는 것이 무주택자인 저에게는 기회가 되어준다고 생각합니다.
Chapter 05. 재개발과 교통망 호재의 실체
- 원도심은 개발될까, 유지될까?
원도심이 지금까지 존재하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겠지요. 역사가 오래된 구역은 소유권 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에 개발을 위한 합의가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서울 강북 청계천변의 공구상가들이나 종로5,6가의 시장에서 영업하는 분들이 그렇듯이, 괜히 도시 구조를 건드리는 것보다 지금 그대로 장사하는 게 더 수익이 좋다고 판단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모든 사람이 재개발 재건축을 좋아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원도심은 앞으로도 한동안 지금과 같은 모습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원도심의 상권이 쇠퇴하지 않는 이유는 고층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원도심이 지니고 있는 분위기에 호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인은 생활하기에 쾌적한 고층아파트 단지에 살지만, 관광하는 느낌으로 찾을 수 있는 원도심은 개발되지 않고 남아있기를 바라는 시민들이 적지 않습니다.
- 신도식 속 원도심이 기능할 수 있는 배려가 필요하다
원도심이 개발에서 비켜나면, 그곳은 먹자골목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원도심 인근의 직장인이나 아파트 입주민들이 자주 찾게 되지요. 모든 원도심이 택지개발에 휘말릴 경우에는 신도시 바깥의 원도심이 그 기능을 맡게 됩니다. ... 이런 사례들을 보면서 저는 신도시나 택지를 개발할 때 구역안의 모든 원도심을 일괄적으로 철거하지 말고, 신도시 속의 원도심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일부 남겨두는 정책적 배려가 좀 더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모든 원도심의 블록이나 건물을 남기자고 하는 건 아닙니다. 재건축 재개발 신도시 택지개발 한 뒤에도 훌륭히 기능할 수 있는 곳을 선제적으로 판단해서 살리자는 이야기입니다.
- 층고와 용적률 제한을 완화해야 한다
준공 후 20년이 지난 건물을 무조건 노후 불량 건물로 규정하는 것은 구 도시정비법 시행령의 문제이며, 이 기간에 당도했다고 무조건 철거하면 안 된다는 판결이 2012년 대법원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잘 아실 터입니다. 이 '주택재건축사업 정비구역지정 처분취소' 판결에서는 '준공된 후 20년 등의 기간이 경과하였다는 것이 노후 불량 건축물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 된다고 할 수 없다' 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준공 후 20년, 30년이 된 건물이라고 해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말하는 건, 엄밀히 말하면 불법적인 행위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 도시의 가능성을 저해하는 층고 규제
거듭 말하지만, 저는 서울시의 35층 원칙이 대단히 나쁜 규제였다고 생각합니다. 홍콩 싱가포르의 도시 구조를 왜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하는지 납득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사유재산인 토지에 고층빌딩을 짓겠다는 공급자가 있고, 또 그 고층빌딩에 살겠다는 수요자가 있는데 정부 지자체의 수장들이 자신의 세계관을 관철하기 위해 이 수요와 공급을 억누르는 것은 반 자본주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저는 이런 세계관을 서울 경기도 같은 대도시의 성장을 멈추어야 인간다움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는 어떤 세대의 정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강북 사대문과 강남 3구의 고도 제한 용적률 제한은 도시의 생명력을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리처드 플로리다가 자신의 책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 (매일경제신문사 2018)' 에서 지적하듯이, 이미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진입을 막는 '도시 러다이즘' 입니다. 층고와 용적률을 높이고, 그 대신 임대주택을 늘려야 도시의 혼종성이 유지되어 그 도시가 발전합니다.
숫자 장난만 할 것이 아니라, 고층아파트 단지 개발에 대해 최대한 민간의 자율을 보장해주면서, 그 반대급부로 중하층 시민들을 위한 임대아파트를 최대한 많이 받아내는 게 정부와 지자체가 할 일입니다. 아파트 단지를 심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는 한국에만 있는 주거 형태가 아닙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보편적인 주거 형태입니다. 아파트 단지는 현대 한국의 개발 과정에서 필연에 가깝게 선택된 주거 형태입니다. 아파트 공화국이니, 전체주의적 민족성이니 하는 식으로 쉽게 비판하면 안됩니다.
이 책을 읽으며 집의 입지와 거주 환경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또한 어떻게 신도시가 선정이 되고 경인지역의 발전, 동남부 지방의 중공업 도시의 발전이 되었는지 과거의 문헌을 통해 찾아 들어갈 때는 일관적인 도시 계획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느꼈다. 이제는 한물간(?) 과거 속 이데올로기일 수 있는 반공과 여전히 현실의 벽일 수 밖에 없는 남과 북의 안보태세로 인해 우연히도 진행된 연구단지와 행정도시의 이전이 몇 십년을 거쳐오며 지금까지도 진행중이라는 것은 부동산을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이었다.
집이라 했을 때 독자마다 떠오르는 생각은 각각 다를 것이다. 우리의 의식주 중에서도 늘 살을 부비대며 오랫동안 살아야 하는 공간이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큰 자산의 하나로서 존재하는 집이라는 개념은 앞으로도 희망과 고민을 모두 하게 만드는 소재가 될 것이다. 살아야 할 곳, 사야 할 곳의 소감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이 책을 통해 무탈하게 우리가족을 지켜주며 따뜻한 온기를 품을 수 있는 내 집에 대한 감사와 소중함을 다시한번 느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