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바쁘게 돌아간다. 회사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많은 업무와 끝임없는 경쟁속에서 우리는 여유와 즐거움을 찾기 위해 많은 활동들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들은 즐거움을 줌과 동시에 도파민 중독에 대한 위험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쇼핑 중독, 게임 중독, 포르노 중독, 인터넷 중독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의도치 않은 부작용들이며 이제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일상 속 하나가 되어버렸다. 도파민 중독의 위험속에서 어떻게 이를 헤쳐나가야 할지 애나 렘키 교수의 조언을 들어보자.
Prologue 탐닉의 시대에서 살아가기
- 쾌락과 고통의 관계가 왜 중요할까? 우리가 세상을 결핍의 공간에서 풍요가 넘치는 공간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중독성 물질, 음식, 뉴스, 도박, 쇼핑, 게임, 채팅, 음란 문자,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트위터... 오늘날 큰 보상을 약속하는 자극들은 양, 종류, 효능 모든 측면에서 과거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증가했다. 디지털 세상의 등장은 이런 자극들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스마트폰은 컴퓨터 세대에게 쉴 새 없이 디지털 도파민을 전달하는 현대판 피하주사침이 됐다.
과학자들은 중독 가능성을 측정하는 보편적인 척도로서 도파민을 활용한다. 뇌의 보상 경로에 도파민이 많을수록 경험의 중독성은 더 커진다. 도파민의 발견과 더불어 지난 한 세기 동안 신경과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획기적인 발견 중 하나는, 뇌가 쾌락과 고통을 같은 곳에서 처리한다는 사실이다.
약물이든, 쇼핑이든, 관음증이든 흡연이든, 소셜 미디어든, 우리 모두는 하지 않았으면 하거나 후회하는 행동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소비가 우리 삶의 동기가 된 세상에서 강박적 과용에 대처하는 과학적 처방을 제시하고 일상에서 쾌락과 고통을 관리하는 실천적 방법을 담으려 노력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 한마디는 강조하고 싶다. 균형 찾기는, 욕망의 과학을 발견의 지혜와 결합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Session 1. 쾌락과 고통의 이중주 The Pursuit of Pleasure
Chapter 01. 자위 기계를 만드는 남자
- 누구나 이중 생활을 한다
이중생활 double life 은 정신과 의사인 내게 익숙한 용어다. 이는 중독자가 타인의 시선을 피해서, 어떤 경우에는 자신까지 속이고 약물, 알코올 혹은 다른 강박 행동을 몰래 하는 것을 가리킨다. ... 넓게 봤을 때 중독 Addiction 은 어떤 물질이나 행동 (도박, 게임, 섹스)이 자신 그리고 혹은 타인에게 해를 끼침에도 그것을 지속적 강박적으로 소비 활용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우리의 삶이 윤택할 때도 점점 커지는 강박적 과용의 문제를 가리킨다.
- 탐닉, 도파민 그리고 자본주의
어떤 대상에 중독되는 데 가장 큰 위험 요소 중 하나는 그 대상에 대한 용이한 접근성이다. 중독을 일으키는 대상 (중독 대상)을 구하기 쉬울수록 시도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최근 미국에서 일어난 오피오이드 opioid (마약성 진통제) 의 급속한 확산은 이 사실에 대한 비극적이면서도 강력한 예시다. 1999년부터 2012년 까지 미국에서는 오피오이드 처방 (옥시콘틴, 바이코딘, 듀라제식 펜타닐) 이 4배로 증가했다. 미국 전역에 그러한 오피오이드가 널리 유통되면서 오피오이드 중독률과 이에 관한 사망률 역시 증가했다.
마찬가지로 중독 물질의 공급량이 감소하면 중독에 대한 노출, 위험, 관련 피해도 감소한다. 지난 세기에 이 가설을 시험하고 증명한 대규모 실험이 바로 미국의 금주법이다. 금주법은 1920년부터 1933년까지 미국에서 알코올 음료의 생산, 수입, 운송, 판매를 전국적으로 금지한 법을 가리킨다. 이 법으로 알코올에 중독된 미국인의 수가 급격히 줄었다. 공중 음주와 알코올 관련 간질환 비율도 절반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는 새로운 정책을 마련되지 않았다. 또한 범죄 조직이 운영하는 거대한 암시장처럼 심각한 부작용도 있었다.
하지만 금주법이 알코올 소비 및 관련 사망률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은 그 성과에 비해 상당히 과소평가되고 있다. 금주법이 음주에 미친 긍정적 효과는 1950년대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금주법이 폐지되고 이어진 30년 동안 술을 구하기가 다시 쉬워지면서 술 소비량은 꾸준히 증가했다.
접근성 증가만이 중독의 위험 요소는 아니다. 중독과 무관한 환경에서 성장했다고 해도 생물학적 부모나 조부모에게 중독 증상이 있다면 중독 위험도가 높아진다. 정신 질환도 위험 요소로 언급되지만 중독과의 연관성은 확실치 않다. 정신적 외상, 사회적 격변, 가난도 중독의 위험을 높인다. 약물이 대처 수단이 되고, 개인과 후손 모두의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미치면서 후성적 변화를 (유전 염기쌍 바깥에 있는 DNA가닥의 유전 가능한 변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 다양한 위험 요소들 중에서도 중독성 물질에 대한 높아진 접근성은 현대인들이 마주한 가장 위험한 요소가 되고 있다. 우리 모두 강박적 남용의 소용돌이 에 휘말리면서 공급이 수요를 낳고 있다.
오피오이드 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약물 역시 과거보다 지금이 더 구하기 쉽고 중독성이 더 강하다. 전자 담배는 -세련되고 남에게 피해가 덜 가며, 무취에 재충전까지 가능하다고 소개되는 니코틴 전달 시스템은- 기존의 담배와 비교했을 때 더 짧은 흡연 기간에 혈중 니코틴 수치를 높인다. 또한 다양한 맛으로 출시되어 10대들에게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 지금의 세상은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디지털 약물도 양껏 제공하고 있다. 만약 그 약물들이 전에도 있었던 것이라면 지금은 그 효능과 효력을 기하급수적으로 노여주는 디지털 플랫폼이 중독을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 속하는 예를 살짝 들자면 온라인 포르노물, 도박 등이 있다.
-인터넷 : 디지털 약물 주사기
인터넷은 중독 대상에 대한 높은 접근성을 보장할 뿐 아니라 우리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법한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강박적 과용을 부추긴다. 영상은 '입소문이 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밈 meme이 등장하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혹자들이 온라인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할 때, 그 행동은 다른 사람들도 하고 있기 때문에 '평범하게' 보인다. '트위터' 는 전문가들과 대표들이 똑같이 좋아하는 소셜 미디어 메시지의 송수신 플랫폼으로서 이름이 딱 맞는다. 우리는 새 떼들과 갖다. 우리 중 하나가 날갯짓을 하면, 전체가 하늘로 날아오른다.
중독률은 전 세계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질병 부담 중 알코올 중독과 불법 약물 중독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 세계에서 1.5퍼센트, 미국에선 5퍼센트를 넘는다. 이 자료에서 담배 소비는 빠져있다. 중독 대상은 국가에 따라 다양하다. 미국에서는 불법 약물이,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에서는 알코올 중독이 지배적이다. 1990년과 2017년 사이에 전 세계에서 중독으로 사망한 인구는 모든 연령 집단에서 증가했다. 그렇게 사망한 인구 중 절반 이상이 50세 미만이다.
강박적 과용의 문제를 겪기 쉬운 이들은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낮은 계층인데, 그중에서도 잘 사는 나라에서 사는 이들이 특히 그렇다. 그들은 보상 수준이 높고, 효능이 강하며, 새로운 약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동시에 의미 있는 일자리, 안전한 주거, 수준 있는 교육, 적절한 의료 서비스, 법 앞에서의 인종 및 계급적 평등에 소외되어 있다. 이는 중독 위험 요소의 위험한 연쇄 작용을 불러온다.
Chapter 02. 행복에 중독된 사람들
- 고통은 나쁜 것일까
어린이가 심리적으로 연약하다고 여기는 것은 철저히 현대적인 사고방식이다. 고대에 어린이는 태어날 때부터 완성된 축소형 성인으로 여겨졌다. 대부분의 서구 문명에서 어린이는 선천적으로 약하다고 간주되었다. 부모와 보호자가 할 일은 아이들이 사회화를 통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엄격하게 훈육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체벌과 공포심을 쓰는 전략은 전적으로 용인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늘날 내가 만난 많은 부모는 자식의 감정에 상처를 주는 무언가를 하거나 말하기를 무서워한다. 나중에 아이들이 감정적 고통이나 정신 질환을 겪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 쭉 타고 올라가다 보면 프로이트가 등장한다. 유아기의 경험이 오랫동안 잊히거나 의식적인 자각에서 벗어나 있다고 해도 평생 심리적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프로이트의 설명은 정신 분석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유아기의 트라우마가 성인의 정신병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프로이트의 통찰은, 모든 도전적인 경험이 우리를 심리치료용 소파로 데려갈 수 있다는 확신으로 변질되었다.
아이들을 부정적인 심리적 경험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노력은 가정 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잘 나타난다. 초등학교 단계에서 아이들은 '이주의 스타' 상 같은 걸 받는다. 특별히 뭘 잘해서가 아니라 이름순으로 받는다. 누군가를 괴롭하는 친구가 있으면 솔선수범해서 막는 대신 어른들에게 알리고 그런 친구들을 피하라고 가르친다.
양육과 교육 과정에서 발달 심리학과 공감이 강조되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다. 우리는 모든 사람의 가치를 성취도와 별개로 인정하고, 학교 운동장을 비롯한 모든 곳에서 신체적 정신적 야만 행위를 삼가며, 사고하고 배우며 논의할 수 있는 안전한 영역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완충재를 가득 채운 독방 같은 곳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유년기를 너무 질병처럼 대하고 과하게 관리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이러면 아이들은 상처받을 일이야 없겠지만 세상에 대처할 방법도 모르게 된다.
우리가 아이들을 역경으로부터 과보호한 탓에, 아이들이 역경을 그토록 두려워하게 된 건 아닐까? 우리가 아이들을 거짓으로 칭찬하고 현실을 감추는 방식으로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인 탓에, 아이들이 참을성이 떨어지고 권리만 더 내세우며 자신의 성격적 결함에 무지하게 된 건 아닐까? 우리가 아이들이 원하는 걸 다 들어준 탓에, 새로운 쾌락주의 시대를 조장하게 된 건 아닐까?
개인적으로 지난 30년 동안 데이비드와 케빈 같은 환자의 수는 갈수록 늘고 있다. 든든한 가족, 질 높은 교육, 재정적 안정성, 양호한 건강 등 인생의 모든 혜택을 누리면서도 과도한 불안감, 우울감, 신체적 고통을 스스로 키우는 듯한 이들 말이다. 그들은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아침에 침대에서도 겨우 빠져나온다.
- 고통이 사라지면 행복이 찾아올까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약물 중독 같은 극단적인 사례만 있지 않다. 현대인은 사소한 불편조차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순간의 고통, 현재의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저 놀기위해 계속 애쓰고 있다.
- 행복과 고통의 역설
난 오랫동안 여러 환자를 만나면서 피로와 주의력 결핍을 수면 부족과 과잉 자극이 아닌 정신 질환의 결과로 받아들이고 이 논리로 약물 복용을 정당화 하는 경우를 확인했다. 그들은 처방이나 다른 경로를 통해 구한 약으로 자기 관리가 부족했던 부분을 보충했고, 이를 정신 질환의 치료 과정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그들은 더 많은 약을 원하게 됐고 독은 그들에게 비타민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모두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어떤 사람은 약물을 복용하고, 어떤 사람은 방에 숨어서 넷플릭스를 몰아본다. ... 우리는 자신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해 거의 뭐든지 하려 든다. 하지만 자신을 고통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이 모든 회피 시도는 고통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 1990년과 2017년 사이에 전 세계에서 새로 나타난 우울증 사례 수는 50퍼센트 증가했다. 특히 사회인구학적 지수(수입)가 가장 높은 지역들에서 사례 수가 가장 많이 증가했는데, 북미 지역이 대표적이다.
신체적 고통 또한 늘어났다. 나는 경력을 쌓는 과정에서 건강한 젊은이를 포함한 점점 더 많은 환자가 질병이나 조직 손상이 없음에도 전신 통증을 호소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 섬유 균육통, 간질성 방광염, 근막 통증 증후군, 골반 통증 증후군 등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신체 통증 증후군은 수와 종류의 측면에서 모두 증가하고 있다.
Chapter 03. 뇌는 쾌락과 고통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지난 반세기 동안 생화학의 발전, 새로운 영상 기술 도입, 컴퓨터 생명 공학의 등장 등 신경과학의 발전은 근본적인 보상 과정 reward process을 밝히는데 큰 역할을 했다. 우리는 고통과 쾌락을 관장하는 메커니즘을 더 명확히 이해함으로써 과도한 쾌락이 고통으로 이어지는 이유와 과정에 관한 새로운 통찰력을 얻게 됐다.
- 도파민이 말씀하시되
도파민은 보상 과정에 관여하는 유일한 신경전달물질은 아니지만, 신경과학자들 대부분은 도파민이 가장 중요하다는데 동의한다. 도파민은 '보상 그 자체의 쾌락을 느끼는 과정' 보다 '보상을 얻기 위한 동기 부여과정' 에 더 큰 역할을 한다. 동기 부여와 쾌락 사이의 차이를 두고 논쟁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도파민은 특정 행동이나 약물의 중독 가능성을 측정하는 지표로 쓰인다. 예를 들어, 어떤 약물이 뇌의 보상 경로 (복측피개영역, 측좌핵, 전두엽피질을 연결하는 뇌의 회로)에서 도파민을 더 많이, 더 빠르게 분비할수록 그 약물의 중독성은 더 크다고 평가된다. 이는 그 약물이 말 그대로 도파민을 함유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뇌의 보상 경로에서 도파민 분비를 유도한다는 의미다.
- 쾌락과 고통은 쌍둥이다
신경과학자들은 도파민의 발견과 더불어, 쾌락과 고통이 뇌의 같은 영역에서 처리되며 대립의 메커니즘을 통해 기능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쉽게 말해 쾌락과 고통은 저울의 서로 맞은편에 놓인 추처럼 작동한다.
우리의 뇌에 저울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중간에 지렛대 받침이 있는 저울이다. 평소에는 저울 위에 아무것도 없으면 지면과 수평을 이룬다. 우리가 쾌락을 경험할 때, 도파민은 우리의 보상 경로에 분비되고 저울은 쾌락 쪽으로 기울어진다. 우리의 저울이 더 많이, 더 빨리 기울어질수록, 우리는 더 많은 쾌락을 느낀다. ... 하지만 저울은 평형 equilibrium 을 유지하려고 한다. 한쪽이나 다른 한쪽으로 오랫동안 기울어져 있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울이 쾌락 쪽으로 기울어질 때마다, 저울을 다시 수평 상태로 돌리려는 강력한 자기 조정 매커니즘 self-regulating mechanism 이 작동한다. 이러한 자기 조정 메커니즘은 의식적 사고나 별도의 의지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반사 작용처럼 균형을 잡으려 한다.
나는 이러한 자기 조절 시스템을 그렘린 gremlin 들이 쾌락 쪽의 무게를 상쇄하기 위해 저울의 고통 쪽에 올라타는 모습으로 상상하곤 한다. 그렘린들은 어떤 생물체가 생리적 평형을 유지하려는 경향, 다시 말해 항상성 homeostasis 을 대변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하나 있다. 쾌락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이 반작용으로 수평이 되고 나면 거기서 멈추지 않고 쾌락으로 얻은 만큼의 무게가 반대쪽으로 실려 저울이 고통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1970년대 사회과학자 리처드 솔로몬 Richard Slomon 과 존 코빗 John Corbit 은 이러한 쾌락과 고통의 상호 관계를 대립-과정 이론 opponent-process theory 이라고 칭했다. '쾌락적 혹은 정서적 중립으로부터 오랫동안 혹은 반복해서 벗어나면 ... 그만큼의 대가를 치른다' 그 대가란 자극과 반대되는 가치를 갖는 이후 반응 after reaction 이다. 그러니까 옛말처럼 올라가는 건 반드시 내려와야 한다는 의미다.
- 뇌과학이 밝혀낸 쾌락 : 고통 저울
어떤 쾌락 자극에 동일하게 혹은 비슷하게 반복해서 노출되면, 초기의 쾌락 편향은 갈수록 약해지고 짧아진다. 반면 이후 반응, 즉 고통 쪽으로 나타나는 반응은 갈수록 강하고 길어진다. 과학자들은 이 과정을 신경 적응 neuroadaptation 이라 부른다. 다시 말해, 쾌락을 추구할수록 우리의 그렘린은 점점 더 커지고 빨라지고 많아지며, 우리는 이와 동일한 효과를 얻기 위해 앞서 선택한 쾌락을 더 많이 필요로 하게 된다.
쾌락을 느끼기 위해 중독 대상을 더 필요로 하거나 같은 자극에도 쾌락을 덜 경험하게 되는 것을 내성 tolerance 이라고 한다. 내성은 중독의 발생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다.
오랫동안 과도하게 중독 대상에 기대면, 쾌락-고통 저울은 결국 고통 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우리의 쾌락 경험 능력이 떨어지고 고통에 대한 취약성이 높아지면 우리의 향락적 (쾌락) 설정값도 바뀐다. ... 중독 증상을 겪는 환자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중독 대상이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지점에 느꼈던 상실감을 고통스럽게 증언한다. 이 단계에 들어선 환자들은 쾌락의 대상을 탐닉해도 전혀 흥분을 맛보지 못한다. 오히려 비참한 기분에 빠진다. 이때 나타나는 보편적인 증상으로는 불안감, 과민 반응, 불면증, 불쾌감 등이 있다.
고통 쪽으로 기울어진 쾌락-고통 저울은 앞서 상당한 절제 기간을 거친 사람들도 다시 중독에 빠지게 만든다. 왜 그럴까? 우리의 저울이 고통 쪽으로 기울어 있으면, 그저 평범한 기분 (수평 상태)을 느끼려 해도 중독 대상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불쾌감에 따른 재발 dysphoria driven relapse' 이라고 표현한다. 중독 대상에 과거와 같이 다시 의존하게 되는 이유는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랜 금단에 따른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완화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물론 희망적인 소식은 있다. 우리가 오랫동안 충분히 기다리면, 우리의 뇌는 중독 대상이 없는 상황에 다시 적응하고 항상성의 기준치를 정상 수준으로 되돌린다. 저울이 수평을 이루는 셈이다. 뇌의 저울이 수평을 이루면, 우리는 산책하기, 해돋이 구경하기, 친구들과 식사 즐기기 등 일상의 단순한 보상에서 다시 쾌락을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