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열린책들 세계문학 289
에밀리 브론테 지음, 전승희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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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지음) | 전승희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어릴 적에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제목으로 한 드라마를 본 적이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최진실과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는 김희애가 두 주인공인 작품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특히 최진실이 병실에서도 열심히 공부를 한 모습은 그 당시 나에게(학창 시절이었음) 어떤 열심히 한다는 것에 대한 하나의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폭풍의 언덕은 한국 드라마였지만 왠지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이 그 배경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다.

이 소설은 초기에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아마도 소설의 작가가 여자라는 이유에서 였을 것이다. 집안에서 교육을 받은, 즉 변변찮게 교육을 받은 여성이라는 생각에 평단은 그녀의 소설을 제대로 읽어보려 하지도 않았을 터이다. 에밀리의 소설은 그녀가 폐결핵으로 사망한 후 반세기가 지나서야 위대한 명작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것도 영문학의 3대 비극 중의 하나로 말이다. 비극이라는 것이 가슴 아프지만...

사실 이런 유의 소설 줄거리는 유독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집안의 내력, 집안의 비밀, 굴러들어 온 돌, 출생의 비밀 등등을 포장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아마도 그래서일까?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샬럿의 [제인 에어]를 필두로 많이 읽어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비극성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히스클리프가 너무나 못됐다는 생각이 들지만 참 안쓰럽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캐서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녀가 사랑한 히스클리프는 희생적인 온전히 그녀를 위해 봉사하는 모습이었다 치더라도 한 번이라도 왜 진심 어리게 그에 대해 생각해 주지 않았을까... 그러했다면 이런 비극이 나오지 않았을 텐데... 캐서린만이 아니라 집안의 그 누구 단 한 사람이라도 히스클리프에게 온전한 사랑을 주었더라면... 왜 그에게 그런 복수심밖에 남지 않았을까? 그리고 캐서린에 대한 무서운 집착도 말이다.

이 소설에서 단 하나의 희망이 있다면 바로 헤어턴 언쇼일 것이다. 불우한 가정환경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견지하는 것... 사실 이는 몹시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히스클리프가 그러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비극의 끝으로 치닫지 않는 것은 바로 헤어턴이 보여주는 인간성 때문일 것이다.

인생에는 누구나 폭풍의 언덕이 있다. 바로 자신만의 언덕이다. 그 언덕에서 서면 누구나 자신의 몫의 비바람을 견뎌야 한다. 어떤 이는 아주 약한 바람에도 크게 무너질 것이고, 어떤 이는 폭풍이 와도 견딜 것이다. 누구에게는 크고 누구에게는 작다. 그리고 그 몫은 타인과 비교될 수는 없다. 인간관계에서는 아주 가벼운 말들조차 누군가에게 종이칼이 될 수도 있다. 그 종이처럼 얇은 칼로도 맞는 사람도 생긴다. 얇지만 무엇보다 날카로울 테니까. 그리하여 그 생채기가 복수심을 유발한다면 그야말로 끔찍하다. 삶에서 경계라는 태도, 주변을 살피는 것, 그것을 게을리하지 말 것 등등 모두를 우리는 고전을 통해 배우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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