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모든 것에 안부를 묻다 - 시인이 관찰한 대자연의 경이로운 일상
니나 버튼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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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모든 것에 안부를 묻다』​​

니나 버튼 (지음) |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아파트 화단에 고양이들이 돌아다닌다. 고양이들은 절대로 떼를 지어 몰려다니지 않는다. 하나둘씩 서로만의 영역에서 그 주변을 맴돌 뿐이다. 간혹 떼를 지어 있는 무리들은 가족일 경우가 많다. 얼마 전에 한마리의 길고양이가 아픈지 힘이 없이 쓰러져있었다. 영역싸움을 했는지 다리 한쪽 살갗이 심하게 패어있었다. 밥을 줘도 반응이 없었다. 간혹 찔끔거리는 눈꺼풀과 귀 주변의 실룩이는 털들만이 녀석이 아직도 숨 쉬고 있음을 말해줄 뿐이었다. 길고양이들를 평소에 아끼는 지인이 다음날 아침에 가봤더니 이내 사라졌다며 걱정스런 말을 전했다. 나 역시 걱정이 되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저 녀석의 앞날을 빌어주는 것밖에는.

살아있는 것들... 살아지는 것들... 그저 살아있는 것이 신기한 것들이 주변에 많다. 그저 산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어떻게 이런 세상에서 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시인의 입장에서 쓴 책 [살아 있는 모든 것에 안부를 묻다]는 삶에 대한 경이로 가득 차 있다. 그저 인간은 한순간 스쳐 지나갈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 동감한다. 그에 비해 자연이란 얼마나 위대한가? 온 자연, 온 인류가 사는 이 지구마저도 먼 우주에서 보면 아름답고도 경이로운 파란빛으로 존재할 뿐이다.

작은 존재라고 취급받는 개미마저 인간의 사회와 닮아있다. 그 잔인성마저 말이다. 여왕개미가 죽임을 당한 집단은 바로 강한 집단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개미는 자신의 몸집에 해당하는 크기 몇 배를 들어 올리며, 자신의 몸 자체마저 건축자재로 사용하는 집단이다. 개미의 역사는 인간보다 수백만 년 전부터 진화되어왔다. 아, 생명이란 것은 정말 무엇일까? 무엇이 존재케하고 살도록 하는 것일까? 유전자의 힘마저 경이롭게 생각된다.

얼마 전 석유에 대한 글을 읽었다. 평소에 나는 그저 석유란 지각 밑에 고대 생물이 썩혀서 열과 압력을 받은 산물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석유의 대부분은 식물성 플랑크톤이라고 한다. 이 플랑크톤이 어마어마하게 눈처럼 쌓였다고 한다. 열을 받고 거대한 압력 속에서 암석 구석구석 액체 상태로 머물다가 인간이 시추란 작업을 통해 뽑아 올리게 된 것이 바로 석유라고 한다. 반면 석탄은 대부분이 나무이고 말이다. 나무과 플랑크톤... 그 두 가지가 인간 에너지의 원동력이며 지금까지 인간을 존재케한 것이다. 그리고 석유는 앞으로 더 나올 곳이 많다고 한다.

자연에서 나온 것들이 인간의 손으로 이루어진 가공을 거쳐 자연을 망가뜨리고 교란 시킨다. 가공을 다시 재가공해서 자연으로 그대로 돌려보낸다면 다시 에너지가 소모된다. 아마 미래 인류는 이런 딜레마 속에 빠질 것 같다. 그래서 친환경 에너지로 관심을 돌리는 것이 바로 인간의 조기 소멸을 막는 길인가... 싶기도 하다.

인간의 영역에서 인간을 제외하면 왜 이렇게 평온해지는 것일까? 결국 생명이란 자연이고 인간 역시 자연일진대... 우리 모두가 결국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안다면 길가의 작은 풀 한 포기와도 교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인은 바로 그렇게 하고 있다. 자연이라는 위대함을 오히려 인간만이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시인의 언어로 자연을 본다면 삶이 얼마나 풍요로울까... 잠시 그런 생각에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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