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카이 버드, 마틴 셔윈 (지음) | 최형섭 (옮김) | 사이언스북스 (펴냄)
표지만 보고 웬 영화배우인 줄 알았다.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라고는 생각이 안될 정도의 강력하고도 매력 넘치는 외모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것은 나 말고도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의 입가에 매달린 담배는 왠지 그의 말년의 풍경을 보여주는 듯도 하다. 1967년 세상을 떠난 오펜하이머...그의 사인은 바로 후두암이었던 것이다. 아마 그의 끊임없는 애연이 말년의 풍경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리고 영화로 회자되기 전까지)사실 원자폭탄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는 관심도 없었다. 그저 누군가, 물리학자들과 화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어쩌면 우연히 개발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여기에는 천재적인 물리학자 오펜하이머가 존재했다. 어쩌면 이 세상에 그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원자폭탄은 만들어지지도 않았을지 모르며, 행여나 만들어졌더라도 시일이 좀 오래 걸렸을 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원자폭탄이 동방의 작은 한 나라의 독립의 앞당겼으니 우리나라의 미래의 모습 역시 바뀌었을 것이다. 흡사 이 모든 것이 나비 효과와 같다. 오펜하이머의 일대기가 나의 미래와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한민국 태생이고 이 나라는 과거 일본으로부터 강제 침탈을 당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일본을 2차 세게 대전의 패배로 인정하게 만든 것은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때문이다.
전에 히로시마 원폭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한 일본인의 수기를 읽은 적이 있다. 참으로 끔찍했다. 원폭은 떨어지자마자 이상하리만큼 주변이 고요해진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굉음... 흡사 놀이공원 자이로드롭처럼 말이다. 공중에서 매달려있는 그 짧은 순간, 정말 내가 왜 여기 있나 하면서 후회하는 그 공포스런 순간처럼... 그다음에는 가차없다. 자이로드롭이 땅 밑으로 꼬꾸라지는 것과는 비교가 안되게 원자폭탄은 광풍을 밀고 오면서 말할 수 없이 뜨거운 열기로 주변의 모든 것을 초토화시킨다. 곳곳에 시체들은 다 녹아있고, 피부는 순식간에 벗겨진다.
아마 오펜하이머가 자신의 말년에 고민했던 것은 스스로에 대한 원망이었을까? 아니면 어쩌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괴로움과 한탄이었을까? 그 자신이 개발에 성공한 원폭이 한편으로는 전 세계 전쟁을 막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거대한 위력을 세상에 보임으로 너도 나도 그것을 원하도록 만들었다. 원자폭탄만 있다면 모든 것이 굴복할 터였다. 반면에 모든 것이 사라지고 멸망할 터였다.
세상에 인간만큼 어리석은 존재가 또 있을까? 스스로의 자멸을 재촉할 무기를 개발하는 자는 말이다. 하지만 그 개발을 돕거나 일조한 과학자가 과연 잘못일까? 어쩌면 이것은 그저 인간의 숙명이 아니었을까? 책 오펜하이머 평전에서는 인간 로버트 오펜하이머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게 한다. 그의 가족사에서 시작해서 물리학자가 되기까지의 여정, 소소하게 혼자서 노는 것을 좋아했던 내성적인 소년이 어떻게 해서 맨해튼 프로젝트를 거쳐서 트리니티 원자폭탄 실험에까지 참여하게 되었는지 말이다. 원자폭탄을 만들었지만 끝까지 수소폭탄 개발은 거부했던 오펜하이머... 어쩌면 그가 가지고 온 프로메테우스의 불은 스스로가 원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운명으로 밖에 설명될 수 없는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생.... 한 인간의 위대함을 여실히 느낀다.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지원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