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의 예언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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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예언』​​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 전미연 (옮김) | 열린 책들 (펴냄)

왜 역사는 반복되는가? 어리석은 역사, 어리석은 과거는 단 한 번으로 끝장낼 수는 없는 것일까? 올 2023년 여름은 이런 인재라는 사고가 없을 줄 알았다. 아니,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그래도 믿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 믿음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자연재해라는 참혹한 현상에 더 처참한 것은 인간의 행위로 피치 못할 결과가 가속화되었고, 결국 선량한 누군가의 죽음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이다. 자연재해는 그 자체로 위해를 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속에 감춰진 인간 본성의 악, 이기심을 드러나게 한다.

여기 르네가 있다. 자가 퇴행 최면요법을 통해 과거 전생과 미래를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쉽게 말해 구부러진 시간대를 갖고 있는 자이다. 그는 2053년의 미래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참상을 보게 된다. 인간이 인간을 살육하는 제3차 세계대전의 양상의 그 규모가 1,2차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현대에는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서 살육의 기술도 더욱더 뛰어나게 개발됐으니 말이다. 세계대전을 막아야 한다. 그리하여 꿀벌이 역사상 자취를 감추는 것을 막아야 한다. 르네는 과거를 바꿔야 미래가 바꿀 수는 있다는 신념으로 전생을 찾아다니면서 꿀벌의 예언이라는 실마리를 찾는다. 꿀벌의 예언이라고 이름 지어진 예언서를 마무리해야 한다. 실뱅 드 비엔의 예언서... 그리고 또 다른 예언서인 가스파르의 것... 과연 어떤 것을 미래의 예언으로 택할 것인가? 소설은 시종일관 흥미 있게 독자들을 교란 시키지만 단 한 가지 사명만은 명쾌하게 각인시킨다. 바로 미래는 이대로 무너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예언서를 지키려는 자와 그 예언서를 찾으려는 자들, 그리고 므네모스의 어차피 실현되는 예언에 대한 언급들은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우리는 모두 시종일관 어떠한 예언을 하면서 사는 자들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자신은 언제나 운이 좋다는 예언, 나에게는 그런 일은 안 생길 것이라는 예언, 이곳은 안전한 것이라는 예언 등등. 하지만 예언은 단 두 가지로 귀결된다. 맞거나 틀리거나. 예언이 들어맞는다면 거봐! 내 말이 맞잖아. 하면서 맞장구를 칠 수 있지만 그 반대로 틀리다면 아무 말도 못 한다. 예언은 그저 예언일 뿐이니까 말이다. 틀린 것에는 아무도 그만큼 주목을 하지 않는다. 맞을 수 있다는 것에 사람들은 더 많은 주목도를 보인다.

얼마 전에 갓파쿠의 여름방학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봤다. 그 속에 나온 갓파라는 동물은 일본 요괴 중 하나이다. 하지만 계발 등에 의해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그 갓파가 화석이 되어서 한 소년에게 나타난다. 물에 넣으니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갓파는 소년의 보살핌으로 성장하고 후에는 자신의 뿌리를 찾아 떠나게 됨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소설에서 나오는 여왕벌의 화석... 그것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많은 동식물이 사라져간다고 한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알 수도 없게 이미 사라진 무엇으로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은 못 하는 건가? 꼭 끝장을 봐야지만, 어둠 끝에 빠져야지만 빛을 향해 나올 수 있는 것일까? 더 늦기 전에... 모든 인류가 작은 생명은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리고 인류의 기술 집약체를 전쟁, 발전 등에 쓰는 것이 아니라 상생, 회복 등에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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