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인간
알도 팔라체스키 지음, 박상진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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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인간』​​

알도 팔라체스키 (지음) | 박상진 (옮김) | 문예출판사 (펴냄)

인간의 존재방식은 무엇인가? 미래파 환상 문학인 알도 팔라 체스키의 글은 보다 인간 존재의 심오함의 끝을 사색하게 해준다. 얼마 전 아이들과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인 [벼랑 위의 포뇨]를 같이 보았다. (사실 둘째 아이가 무척 좋아하여 매번 즐겨 보는 애니메이션이다.) 그 속에서 포뇨의 엄마로 상징되는 바다를 관장하는 여신과 포뇨의 인간 아빠의 대화가 무척 인상 깊었다. 아빠는 포뇨가 너무 어려서 혹시 마법을 잃고 인간으로 살아가다가 혹시나 소스케의 사랑이 사라지면 포뇨가 물방울이 될까 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포뇨의 엄마는 원래 포뇨는 물방울었으니 괜찮다고 한다. 인간이 삶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신이 말하는 방식의 차이라고나 할까... 일례로 우리가 익히 아는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에서도 같은 대목이 나온다. 인어공주의 언니들이 왕자의 심장이 찌르라면서 칼을 동생에게 건네주지만 공주는 그 칼을 버리고 스스로 물거품을 되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물방울 요정이 되어서 하늘로 올라가서 자유로워지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들은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을 원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이다. 연기 인간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인간이 다른 존재로서 모습을 내놓고 살아갈 수 있다면 인간은 아마도 능히 그 존재를 탐할 것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궁정 하인 알로로의 선택 역시 그러하다. 그는 아마도 자신을 불태우면 연기 인간이 될 수 있으리라 여겼을 터이지만 페레라의 말처럼 그는 그저 스스로의 목숨을 끊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연기 인간의 존재 목적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다. 가볍게 존재하는 것... 그것밖에 없다. 하지만 인간은 그 존재에 무한의 의미를 부여한다. 왕이 연기 인간인 페렐라에게 법전을 맡기는 것 역시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애초에 연기였던 페렐라에게는 이름도 없었다. 그 이름은 그저 인간들이 세 노파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에 인간은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존재하는 것마저도 의미없이 그저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연기 인간을 가두려 했다는 발상 자체도 너무 인간스럽다. 어디에나 갈 수 있는 그저 연기로 존재하는 페렐라를 가두려 했다니.... 왜 인간은 그저 존재할 수 없는가? 이런저런 이유로 페렐라는 성인이었다가 한순간에 범죄자로 추락하고 만다. 페렐라는 그저 가볍게 존재한 이유밖에 없는데 말이다. 스스로 가볍다는 것을 정의했을 뿐 그 어떤 것도 스스로 한 것이 없는 연기일 뿐이었다. 인간의 변덕이 페렐라를 영원히 인간 밖으로 추방시키고 말았다.

연기로 존재할 뿐인 페렐라에게 지식적인 가르침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 선물이 되는 삶도 있기 마련이다. 굳이 뭘 바라지도 않고, 존재 이유에 대해 물을 필요도 없이 말이다. 왜 ... 인간은... 그저... 참아줄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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