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어의 마지막 한숨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2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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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의 마지막 한숨

살만 루슈디 |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글쓰기로 인해 스스로의 삶이 파괴된 자, 그로 인해 이슬람 세계에서 이단아, 사생아의 취급을 받고 세계를 떠돌아야 하는 자... 바로 그런 운명을 타고난다면 글 쓰는 삶이 지긋지긋해지지 않을까.... 그로 인해 생명의 위험까지 받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살만 루슈디는 그러하지 않았다. 오로지 글 쓰는 삶을 숙명으로 여겼던 것 같다. 그는 피트와 선고 후 6년간의 도피생활을 지속하던 중 소설 [무어의 마지막 한숨]을 집필했으니 말이다. 온갖 수많은 정체성의 모순들로 가득 찬 소설 속 인물들, 알고 보면 서로 서로 하나의 족속으로 묶여있으면서 다름을 이유로 차별하고 경멸하는 사람들, 어차피 누워서 침 뱉기에 불과한 것들...

[무어의 마지막 한숨]의 제목에는 겹겹이 쌓인 큰 의미가 있다고 한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1492년 스페인 마지막 무어인 왕 아부 압달라가 알람브라 성채의 열쇠를 가톨릭 정복자들인 페르난도와 이사벨라에게 양도 후 그의 어머니와 시종들과 함께 망명을 떠나는 장면에 대한 언급이다. 이때 무어 왕은 자신이 잃어버린 궁전과 평야와 안달루시아를 돌아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무어 왕 시대에 펼친 정치란 모든 문명, 종교의 통합이었다. 공존의 문명, 협치의 문명, 다양성의 문명의 철학이 이제는 시대를 달리해서 저버리는 아쉬움에 대한 회한의 눈물이었으리라... 흡사 작가인 살만 루슈디의 삶이 보인다. 작가의 펜으로 엮어낸 생각의 개방성, 공존과 그 다양성이 곧바로 그 자신에 대한 위협으로 느껴지는 삶을 살았으니 말이다.

소설 속 화자인 인도 출신의 모라이시를 그의 어머니인 아우로라는 무어로 칭한다. 부계 쪽으로 패배한 왕 보압딜과 유대인 후궁 사이에서 태어난 조상의 후손으로 전해지고, 모계 쪽으로는 포르투갈 출신의 탐험가 바스쿠 다 가마의 사생아를 조상으로 둔 집안으로 참으로 다양성이 조화로운 가계도이다. 모라이시의 어머니인 아우로라의 다 가마 집안은 향신료 무역으로 거대한 부를 이뤄냈으며 아우로라의 할아버지는 그 지역의 인사로 통했다. 아우로라의 아버지인 카몽시는 독립의지가 강한 고아 소녀 이사벨라와 결혼해 자신의 어머니 이피파니아와 대립한다. 그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진보적 사상을 수용하며 인도의 독립을 바라는 인물이다. 하지만 카몽시 형인 아이리시와 그 형수는 영국의 지배가 계속되길 바라고 있다.

아우로라의 어머니 이사벨라와 시어머니 이피파니와의 대립, 어머니의 죽음 후 아우로라는 그 어머니의 개방성을 따라서 성장한다. 자유롭게 호흡하는 행위, 아우로라의 호흡은 그림이었고, 무어에게는 글이었다. 이는 작가 살만 루슈디를 투영하게 한다. 그에게 역시 글을 쓴다는 것은 호흡하는 것이리라... 그리하여 그는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천상 작가였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우로라가 남긴 그림인 [무어의 마지막 한숨] 뒤에 숨겨진 그림의 비밀은 참으로 끔찍스러웠다. 그 그림 뒤에 살인자의 모습을 감춰놓은 아우로라... 과연 그 자는 누구일까? 또한 충직한 문지기였던 찬디왈라의 비밀은? 또한 모라이시에게 남겨진 출생의 비밀은?

마지막으로 모라이시가 언덕 위 공동묘지 묘석에 앉아 알람브라 궁전을 바라보면서 하는 혼잣말은 아마 작가가 진정으로 하고픈 말일 것이다. 궁전은 바로 가능성이다. 비록 폐허로 전락했지만 그 한때는 분명 뜨거웠음을, 위대한 사랑이 있었음을, 경계가 없었음을, 소통했음을, 수용했음을 그저 말없이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그 한 줌의 가능성으로 루슈디의 글은 다시 씌고 지워지기를 반복하는 것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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