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1
페터 한트케 지음, 윤시향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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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

페터 한트케 지음 | 윤시향 옮김 | 문학동네 펴냄

페터 한트케라는 이름은 201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그는 독일 문화권에서 이미 알아주는 작가였다고 하니 그의 노벨상 수상은 늦으면 늦었지 언젠가는 예견된 일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한트케를 연극 [관객모독]을 통해서 나름 색다른 방식의 소통을 원하는 깨어있는 작가로만 생각했지 여타의 다른 작품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이번 기회에 책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를 거의 처음으로 읽게 되었다. 다소 생소한 전개와 분위기는 쉽사리 책장을 넘기게 하지 못했는데 얇은 책인데 비해 그 속에 들어있는 철학은 무겁기만 했다.

탁스함이란 고립된 동네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는 외롭게 살아간다. 그는 소통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이웃과도 그러하고 심지어 가족하고도 마찬가지이다. 아들은 자신이 쫓아냈다고 여기고, 딸은 남자친구와 여행을 떠났으며 부인과도 별거 중으로 항상 그를 기다리는 것은 누구도 손 대지 않은 정리된 침대 보가 깔린 잠자리뿐이다. 그에게 유일한 즐거운 일이란 중세 서사시를 읽고 여러 가지 약제와 버섯에 대해 연구를 하는 것일 뿐... 사실 그것도 그가 좋아서 하는 일인지, 그것밖에 할 일?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하는 것인지 애매하기조차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숲속에서 머리를 세게 얻어맞게 되는 사고를 당하고, 이 일로 인해 실어증을 얻게 된다. 그는 이내 이 실어의 상태를 자유의 상태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누군가와 소통할 일이 없어지고 그저 남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말을 흘려들으면서 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실어의 상태가 그가 말한 것처럼 자유의 상태일까? 그는 어느새 승리자라는 여인을 찾으러 길을 떠난다. 왜 굳이 그 여인을 찾으려는 마음의 이유에는 답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저 그냥 가다 보면 길이 저절로 열리게 되는 경험을 하면서 어느새 산타페라는 도시까지 오게 된 그.... 그곳에서 자신이 떠나보낸 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사실 아들 스스로 집을 나온 것이라고 한다. 왜 그는 자신이 아들을 쫓아냈다고 여긴 걸까? 그리고 승리자와의 조우... 여인은 그에게서 실어의 상태란 자유의 상태가 아니라 현재를 포기하는 상태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동안 그 스스로 해왔던 체험마저 파괴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더 이상 그는 구경꾼의 삶을 살 수는 없었다. 그는 다시 돌아왔다. 적막한 집을 떠나온 것처럼 조용히 다시 그를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가 한 일은 미처 읽지 못하고 놓아둔 서사시를 다시 읽는 일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구경꾼으로 삶은 자유가 아님을 작가가 말하는 듯했다. 살아야 할 이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찾아야 할 무엇이었다. 주인공 약사가 그저 아웃사이더로 유령처럼 존재하는 순간에도 그 주변의 일들은 돌아갔다. 아들과 딸, 그리고 부인이 있었다. 약사는 스스로의 일과 생각에 고립된 나머지 소통을 잃어버렸다. 듣는 귀를 닫아버렸고, 사고로 인해 말까지 잃어버렸다. 그는 그것을 최종적인 자유로 생각했지만 그것은 삶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삶이 아니었다. 살아있다는 것은 소통하는 것이다. 서로 통하는 삶이다. 나의 의중이 정확히 상대방의 마음에 꽂히고, 상대방의 의도 또한 나의 마음에 정확하게 읽히는 일이다. 그래야 오해가 없다. 그렇게 해야 상처가 없다.

생각해 본다. 나 스스로 자유라고 생각하고 불통했던 시간들을 말이다. 어쩌면 그것은 잠시 살기를 멈춤 했던 것이리라... 그러나 오디오에 있어서 멈춤 기능은 있지만 삶에는 재생 기능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시작점을 알 수 없지만 끝나는 시점은 존재한다. 재생하기 힘들어도 재생하는 것... 아마 그것이 사는 것이리라... 어떤 음악이 흘러나오든 테이프는 여전히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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