슌킨 이야기 에디터스 컬렉션 14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영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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슌킨 이야기

다니자키 준이치로 | 김영식 옮김 | 문예출판사

언제였던가? 다니자키 준이치로란 소설가를 처음 접한 건 영화와 책들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언변을 소유한 이다혜 작가님의 코멘트를 어딘에선가 읽게 되면서부터였다. 아마 내게 준이치로의 첫 책은 [치인의 사랑]이었던 것 같다. 한 노인의 은밀한 성적 판타지를 다룬 소설은 약간은 충격이었다. 특히 여성의 발목에 대한 그의 애정 어린 시선들... 그리고 그것들을 전혀 이상하게 보지 않고, 결국에는 인정하게 만드는 작가의 필력이랄까?

그리고 그다음 작품이 [슌킨 이야기]였는데 대중적인 [치인의 사랑]같은 류의 작품은 아니었다. 그저 지독한 맹인의 자기 사랑과 제자의 절대적인 어떤 의지가 엿보이는 작품이자 어떤 면에 있어서는 총체적으로 잘 짜인 완결작이랄까? 지금에 와서 다시 읽게 된 [슌킨 이야기]와 단편들... 역시 미사마 유키오가 왜 다니자키를 천재라고 칭했는지 알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유키오의 [금각사]라는 작품을 너무도 좋아하는데 그런 유키오가 칭찬했다면 인정이다. ㅎㅎ 아무래도 누구도 다루지 않은 소재를 대담한 형식으로 다루는 작가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의 다른 작품인 [세설]은 전혀 다른 맛으로 씌었다. 아무래도 다니자키는 정말 천재인가 보다. 이런 단편들도 내고 [세설]같은 장편도 쓰는 것을 보면 말이다.

[문신], [호칸], [소년], [비밀], [길 위에서], [갈대 베는 남자], [슌킨 이야기]까지 문예출판사의 에디터스 컬렉션에는 총 다니자키 준이치로 단편 일곱 편이 실려있다. 개인적으로 순서대로 읽어가는 것이 그의 작품 세계를 면밀히 관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문신에서 슌킨 이야기까지 이어지는 동안 왠지 그가 변했다고 느낀 것은 나만의 착각인 걸까?

다니자키는 개인의 성욕을 문학으로까지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데 나는 그것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개인의 성욕이란 게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인간의 보편적인 성욕 아니던가? 그것을 솔직하게 말했다고 해서 작가 자체를 너무 그쪽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좀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 물론 개인으로 다니자키는 문제적 인간이었다. 그의 삶은 사실 여타의 사람과 좀 다른 괴팍한 구석이 있었지만.... 생전에 했던 그의 인터뷰를 모두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는 과연 자신을 어떻게 평가해 주기를 바라는가? 성에 미친 괴짜 할아버지 작가 취급하지 마! 하면서 화를 낼 것인가? 아니면 그것이 솔직한 자신이라고 말할 것인가? 사실 노인의 성에 대해 그 누가 알고 싶어 하겠는가? 하지만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 노인을 예약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문학작품으로 끄집어낸 그는 어떤 부분에서는 선구자라고 할 수 있겠다.

[슌킨 이야기]를 읽으면 저절로 슌킨의 신들린 샤미센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맹인과 맹인이 사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일부러 자식을 눈을 멀게 한 지독한 한 맺힌 소리에 대한 영화 [서편제]가 떠오르기도 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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