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 에디터스 컬렉션 13
다자이 오사무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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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다자이 오사무 |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사양이란 지는 해를 의미한다. 소설은 우울의 기운이 가득하지만 어쩐지 마지막은 희망적이다. 아니 애써 살 이유를 발견해야만 하는, 싸워야만 하는 씁쓸한 희망이라 해두자. 그래서 그런지 한편으로는 이 소설을 남기고 생을 달리했던 다자이 오사무를 생각하니 감정이입이 되고 말았다. 그는 살 희망을 애써서도 찾지 못하고 스스로 [사양] 속 주인공인 나오지처럼 천박해지기로 몹시도 결심했으니 말이다.

1945년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한다. 그 후 젊은 일본인들은 많은 상실감에 시달린다. 특히 귀족 집단이라고 불린 사람들은 말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가즈코도 마찬가지이다. 몰락한 귀족 가문의 딸인 가즈코는 병이 든 어머니와 시골마을 이즈에서 둘이 살고 있다. 남동생 나오지는 전쟁으로 징집되어 소식조차 들려오지 않는다. 가세는 기울어서 도쿄의 집을 삼촌의 주선으로 팔 수밖에 없었던 신세였던 가즈코다. 사실 그녀는 이미 야마키라는 남성과 혼인을 했지만 아이를 유산한 후 헤어지게 되어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친정에 사는 중이었다.

가즈코에게 일상이란 그저 버티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동생 나오지 걱정만을 했다. 나오지는 아편에 빠진 경력이 있는 문학가로 나오지만 그의 미래는 왠지 전망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 그의 소식을 삼촌이 전해준다. 살아있지만 또 아편에 빠져있다고 말이다.

가즈코는 어느 날 나오지의 수기를 발견한다. 그때 그의 스승이었던 우에하라를 떠올리게 된다. 그가 느닷없이 자신에게 입 맞춘 순간을 말이다. 가즈코는 그에게 편지를 보낸다. 자신의 애인이 되어달라고... 사실 그는 이미 유부남이었는데 말이다.

어머니가 결핵으로 사망한 후 가즈코는 장례를 치른다. 그리고 도쿄로 가서 우에하라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곧 이어진 동생 나오지의 자살... 동생은 유서에서 말한다. 자신은 살아야 할 이유를 도저히 찾지 못하겠다고, 그리고 자신의 천박함의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전쟁 후 그렇게라도 살아야 하는 처지, 술 없이는 민중의 벗이 될 수 없었다고 말한다. 더 일찍 죽어야 했지만 어머니 때문에 차마 그러지 못했다고... 그는 또 유서에서 말한다. 살고 싶은 사람만 살면 된다고....

연이어 동생의 장례까지 치르게 되는 가즈코...과연 그녀에게 누가 남았을까? 가족들은 모두 죽었고, 연인이라 칭할 남자는 이미 유부남으로 앞날을 기대할 수도 없다. 그리고 그에게 어떤 것도 바랄 수 없음을 가즈코는 이미 알고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남모를 작은 희생자가 존재한다. 그녀는 자신의 뱃속의 아이를 그렇게 부른다. 그리고 그 아이와 2회전, 3회전의 혁명을 치를 생각이다. 그 혁명이란 삶의 혁명이다. 살아남을 혁명이다. 일상과 도덕의 혁명이다. 그녀에게는 나오지는 갖지 못한 삶의 이유가 생겼다.

몰락한 귀족을 이 소설이 출간된 후 사양족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저물어가는 해를 뜻하는 사양... 저물어가는 한 세대, 그 희망 없는 세대....

하지만 살 사람은 희망을 찾아야 한다. 비록 그 희망이란 것이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말이다. 소설에서 행복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 있다. 어쩌면 행복이란 비애의 강물에서 반짝이는 희미한 사금 같다고 말이다. 여기서 드라마 해방일지의 5초의 행복이 떠올랐다. 그래, 그렇더라도 살아야지, 살아남아야지.... 어쩌면 살 이유보다 죽을 이유가 더 차고 넘치더라도 말이야... 가즈코가 우에하라에게 남긴 편지처럼 살아가는 동안 인간은 저마다의 투쟁을 계속 해나가는 것이리라. 그리고 자신의 해가 사양이든 뜨는 해든 그것은 사실 상관없다. 살아남기로 결심한 순간, 투쟁하기로 결심한 순간, 그것만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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