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버 - 어느 평범한 학생의 기막힌 이야기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지음, 한미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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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버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 한미희 옮김 | 문예출판사

우물가에 뱀 한 마리가 빠졌다. 우물 안쪽으로 거대한 동굴이 있었다. 그 뱀은 우물가 한구석에 있는 동굴 속에 똬리를 틀고 떨어지는 동물들을 먹이로 삼기만을 기다린다. 어떤 때는 통통한 쥐 한 마리가 떨어졌고, 어떤 때는 멍청한 멧돼지도 떨어졌다. 뱀은 곧 자만에 빠졌다. 여기가 스스로의 천국이라 여겼다. 그는 더 이상 먹이를 사냥할 필요가 없었다. 먹을 것은 이미 충분했다. 뱀은 그 우물 속 동굴의 왕이 되기로 했다. 운 좋게 살아남은 쥐나 여타의 동물들은 뱀에게 순종했다. 뱀은 이미 최대의 포식자였으므로 그를 대적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어디선가 아무도 모를 그 은밀한 곳에 존재하는 위대한 포식자 말이다.

책을 읽고 난 거대하고 사악한 뱀이 그려졌다. 그 뱀은 바로 [게르버] 속의 쿠퍼 교수이다. 스스로 우연하게 얻게 된 권력에 심취한 나머지 그것이 온전히 자신의 것인 양 남용하고, 결국 그 피해자는 어린 학생들이었다. 살면서 이런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운 좋게 시험에 합격해서 판사, 검사가 되고, 또 누구는 더 큰 권력을 얻게 되어 그 모든 것이 스스로가 잘난 탓이라고 생각한다. 너도 나처럼 열심히 노력해서 이렇게 군림하라... 하는 듯 뻔뻔한 사상을 진리라는 듯 들먹인다. 하지만 이상하다. 아무도 저항하지 않는다. 저항해 봤자 인생만 피곤하다고 여기는 듯, 잘못된 세상인데 어느 누구도 잘못이라는 말을 목소리 높여서 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몫인 콩고물이 묻은 손만을 열심히 털뿐이다.

[게르버] 속의 이야기는 결코 1920~30년대의 나치 독일 치하에서 일어난 교육 현실만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이는 불행하게도 아직도 진행형인 우리의 현실이다. 얼마 전 고등학교 소녀 두 명이 고층 빌딩 옥상에서 투신해서 죽은 사건이 있었다. 그 외에도 얼마 전에는 학원에서 학생이 스스로 뛰어내렸고, 이 외에도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에서는 어린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던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들이 단순히 약해서 일까? 공부할 머리가 안되는 데 옥죄는 부모, 학교, 사회 때문일까? 게르버의 선택 속에 가해자는 꼭 쿠퍼 교수 한 명이 아니다. 쿠퍼 교수의 만행을 참고 인내하고, 못 본척한 모든 이들이 바로 게르버에게는 가해자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순응하는 자가 무슨 잘못이냐고? 누군가가 묻는 소리가 들린다. 그저 시대에 따르고 대세에 따랐을 뿐인데 왜 쿠퍼 교수 이외의 자가 게르버에게 가해자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 즉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바로 희망의 부재, 내일의 부재이다. 그리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음으로 그들은 동조의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게르버에게 참 스승 한 명만 있었어도 그는 원하는 대로 꿈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게르버의 선택에는 희망의 부재, 내일의 부재가 있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바로 희망을 말하는 일이다. 아직도 세상은 살만하다고, 너는 가치 있는 존재라고 온몸으로 체험하는 일이다. 하지만 바로 그 가르침이 무기가 되어 오히려 희망을 꺾고 있다. 게르버는 결국 그 희망이 없음에 좌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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