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레터 - 좋은 이별을 위해 보내는 편지
이와이 슌지 지음, 권남희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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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레터

이와이 슌지 | 권남희 옮김 | 하빌리스

1999년 겨울...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난 그 시절 한창 대학 캠퍼스 라이프를 만끽하고 있었는데, 마음 맞는 친구와 극장을 찾았다. 바로 이 영화를 보러 말이다. [러브레터]... 왠지 그날 몹시 추웠고, 영화가 끝나고 나올 때 눈이 내렸던 것 같다. 해는 져서 어둑한 시간... 딱 영화와도 맞는 분위기와 그 설렘... 첫사랑을 기억하게 하는 영화라지만 나에게는 되돌아올 수 없는 청춘과 아름다운 오타루의 풍경만이 가슴속 가득한 순간들이었다. 유독 기억났던 학창 시절의 주인공 커플의 풋풋함... 자전거 페달을 돌려가면서 불빛에 비춰보던 엉망이었던 후지이 이츠기의 시험지, 그리고 좀 이상한 친구의 코믹한 모습들... 등등 말이다.

영화 [러브레터]를 보고 난 후 훨씬 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 오타루를 다시 찾게 되었다. 웬일인지 내가 찾던 때는 여름이었지만 시간이 다시 거꾸로 갔는지... 한겨울인 듯하다. 다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겨울인듯 기시 김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오타루는 생각보다는 달랐다. 거리는 아름다웠지만 내가 원한 청춘의 풍경은 없었다. 그저 쉴 새 없이 길가를 오가는 관광객의 물결들만 보일 뿐...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ㅎㅎ 거리 곳곳에서 왠지 후지이 이츠기가 나타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연히 들린 유리공방에서, 도서관에서, 카페에서.... 왠지 기침을 콜록콜록하면서 나타날 것 같았다. 연신 머플러를 다시 쓰면서 말이다.

다시 책으로 읽는 [러브레터]는 영화보다 훨씬 더 풍경들이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영화는 시각적으로 보여줘서 보다 더 현실감이 있는데, 왜 책이 더 실감이 나는지... 아마도 그건 내 머릿속에서 실시간으로 상상의 순간을 통해 영상이 보이기 때문이리라... 화면보다는 두뇌가 훨씬 더 나와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망상 같은 생각이 휩쓸고 지나간다. ㅎㅎ 하지만 책으로 읽어도 상상되는 주인공은 나카야마 미호이다. 미호의 아역을 연기한 친구는 오래 연기하기를 바랐지만 그 후로는 기억에 남는 작품을 찾을 수가 없다. 나카야마는 소설가 츠지 히토나리와 결혼, 그리고 이혼을 통해 세간에 알려진 배우이기도 하다. 츠지 히토나리의 책 역시 얼마 전에 잘 읽었는데....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지만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법이니까...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중 초속 5센티미터라는 작품이 있다. 그 속의 남자 주인공은 붙이지 못하는 편지를 간혹 쓴다. 수신인이 있지만 어디로 보낼지 모르는 편지들...... . 그건 바로 그리움일까... 여기 소설 속 히로코가 이츠기를 향해 편지를 쓰는 것처럼 말이다. 이츠기는 이미 떠난 사람이었지만 히로코는 그의 안부를 물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히로코는 충분히 이츠기를 애도하지 못했기에...... .

충분한 애도... 히로코의 애도가 끝이 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또 다른 이츠기 중 하나였던 여주인공의 답장 때문이었을 것이다. 간혹 내가 모르고 한 선의의 행동이 타인에게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 이츠기의 답장이 없었더라면 히로코의 애도는 아마 끝나지 않았으리라...... . 누군가의 애도를 끝내고 싶다면 그건 차고 넘쳐야 한다. 애도란 바로 그런 것이다. 충분히 넘치지 않고서는 애도는 아마 계속되리라...... . 그리고 그 애도 중 하나는 수신인이 불분명한 편지를 쓰는 일과도 같을 지도 모른다. 어디에 닿을지, 누구에게 닿아서 그 애도가 멈춰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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