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
요코제키 다이 지음, 김은모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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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

요코제키 다이 장편소설 | 김은모 옮김 | 하빌리스

작은 공이 굴러서 위태롭게 서 있는 무언가를 쓰러뜨린다. 책 앞표지는 그런 느낌이다. 아마도 소설의 전체적인 인상을 암시하는 듯한 표지이다. 과연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왜 모든 일들은 우연을 가장한 척 일어나는 것일까? 정말 필연적인 일이 있는 것일까? 못 피하는 운명 같은 것 말이다. 끔찍한 운명이라면 피하고 싶지만 제 발 앞의 구멍도 못 본 채 빠져들고야 마는 것이 인간의 어리석은 운명이라면...... .

사건은 이렇게 시작한다. 시청 공무원인 유미는 어느 날 전화를 받는다. 얄궂은 협박으로 한 여성의 개인정보를 어느 남성에게 넘기게 되고, 그 일로 인해 지하 아이돌 멤버 중 한 명이었던 오기쿠보 히토미가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히토미는 스토커를 피해서 이사까지 왔건만 끔찍한 범죄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이 일은 곧 언론에 대서특필 되고 만다. 한 공무원의 미성숙한 일 처리로 인해 개인정보가 범인한테 넘어갔다고 말이다. 이렇게 해서 유미는 직장에서 퇴직하고 만다. 이 일은 이렇게 해서 일단락이 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3년 후 유미에게 누군가가 찾아온다. 바로 예전 살인사건에 대해 검증해 보자면서 말이다. 그리고 인상적인 말을 하는데... 바로 유미가 범인에 의해 의도적으로 선택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우연은 아니었다는 것... 과연 이게 무슨 일인가? 유미와 아이돌 살인사건, 그리고 범인과의 인과관계는 무엇인지... 또 그녀를 찾아와서 대뜸 사건 현장 검증을 요구한 이 사람은 누구인지... 소설은 한 호흡으로 읽힌다. 역시 히라시노 게이고의 판단이 옳았다. 현실을 묘사하고 감정의 흐름을 관찰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작가에 대한 칭찬...

요즘처럼 인간관계를 맺는 일이 쉽고도 어려운 시대는 없었던 것 같다. 싫다고 해도 걱정, 좋다고 해도 걱정인 세상이다. 얼마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스토킹 살인사건 전주환에 대한 사건 공판이 있었다. 나름 치밀한 준비를 하고 살인을 했지만 곧바로 덜미를 잡힌 끔찍한 살인사건으로 남아있다. 이것뿐이 아니라 길을 가다가 시비가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도망치는 피해자를 끝까지 쫓아가서 결국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세상엔 이렇듯 상상초월한 범죄들이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있는 것같다.

소설을 읽으면서 아이돌과 팬의 관계설정이라는 면에서 영화 [성덕]이 생각났다. 한 남성 아이돌에 대해 진심으로 팬이었던 한 여성이 그 남성 아이돌이 끔찍한 범죄 사건의 가해자로 연루되자 자신이 팬이었던 것에 대해서도 일말의 가책을 느끼고, 책임감을 느끼는 그런 류의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정말 팬에게 이런 상실감을 안겨주다 못해서 절망감까지 안겨주는 아이돌이라니 그 일생이 악연이란 생각이 든다.

소설 [악연]에서 새롭게 알게 된 존재는 지하 아이돌이라는 설정이었다. 일본에서는 아이돌 데뷔가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지하 아이돌은 소극장 콘서트 등을 개최하거나 길거리 노래 등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리고, 그 팬들은 성인 남성들이 많다고 한다. 아마 작은 소규모이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아이돌의 이미지라서 그런지 팬들하고도 돈독하게 관계를 유지했을 것 같다.

잘못된 연으로 인해 범죄자의 희생양이 된 유미, 그리고 세상에 존재할 수 없게 된 히토미... 세상에 이런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억울한 사람들... 자신들 잘못이 아닌데 자신의 탓이라고 끊임없이 자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말이다. 비극은 결코 한 사람의 대에서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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