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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의 사랑 ㅣ 문지 스펙트럼
뱅자맹 콩스탕 지음, 김석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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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의 사랑
뱅자맹 콩스탕 | 김석희 옮김 | 문학과 지성사
아... 이젠 이런 사랑은 너무 불편하다. 그리고 왜 이렇게 사랑만이 전부라고 이야기하는 사랑 공화국에 살아야 하는지... 물론 사랑은 중요하다. 이성애적 사랑도 무척 말이다. 아마 이성애적 사랑이라는 말초적 감정이 없다면 인류 부흥은 애초에 꿈도 못 꾸웠을 일이다. 하지만 가끔은 사랑 이야기, 사랑놀이 등등이 지겨워질 때가 있다. 널 사랑해서 그랬어, 사랑하는 줄 알았어, 등등의 그런 말들 속에 어린 폭력성은 가끔은 사랑으로 치장된 자기 기만, 혹은 억압된 의식의 분풀이 정도 같다.
얼마 전 마트에 갔다가 한 부부를 보게 되었다. 아내로 보이는 자가 이건 어떠냐고, 스스로 마음에 둔 장갑을 꺼내자 남편은 인상을 잔뜩 쓰면서 그건 너무 작잖아, 아니, 생각이 있는 사람이야? 하면서 면박 아닌 면박을 주었다. 고작 장갑 하나인데 그리고 사람이 많은 마트에서 그런 말투를 쓴다면 집에서는 어떠할지 왠지 안 봐도 비디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사랑해서 결혼해놓고, 사랑해서 아이까지 낳아놓고 어떤 부부는 서로를 무시하고, 경멸하고, 증오하게 될까?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성장하게 되는 자녀들은 나중에는 그런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살았기에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성인이 될 수밖에 없다.
아돌프는 사랑하기에는 부적절한 사람이었다. 아돌프는 사랑이라는 그 감정 자체를 몹시도 사랑했다. 그에게는 남편 옆에 있으면서도 한없이 자기를 사랑해 주는, 아니 자신에게 매달리고 아이로 인해 죄책감에 시달리는 엘레노르를 보는 그 자체의 모습을 사랑했다. 스스로를 비극적인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만들면서도 엘레노르를 놓지 않는 방법을 그는 원했다. 그는 그녀의 상황을 그녀 자체의 매력과 결부해서 사랑했던 것이지, 결코 상황이 없는, 그에게는 사건이 없는 평범한 여자를 사랑할 수는 없었다.
사랑에 용감한 것은 아돌프가 아닌 오히려 엘레노르였다. 그녀는 그를 위해 가정을 버리고, 돈까지 포기한다. 그리고 물론 아이까지도... 이것은 자신의 남편에 대한 (아이를 잘 키워줄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말이다. 그녀에게는 단 하나, 바로 아돌프의 변치 않는 사랑만이 있으면 됐다. 하지만 아돌프는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이미 매력이 없었다. 왜냐면 P 백작의 첩이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아이 엄마라는 이름표를 스스로 떼어버린 그녀에게 아돌프는 더 이상 매력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즉, 집착이 안된다. 어쩌면 아돌프야말로 가스라이팅의 선구자가 아닐까... 그는 엘레노르가 병상에 누워있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그저 그녀를 기만적으로 대했을 뿐이다. 후에 엘레노르가 남긴 편지를(그토록 없애달라고 부탁했음에도) 읽은 다음 그의 마음이 어떻게 변했을지는 모르지만.
사랑의 장막을 걷고 그 안의 진실됨을 보자. 아마 엘레노르의 불우한 가정사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P 백작의 첩이 될 리가 없었고, 아마 아돌프를 만날 일도 없었으리라..... . 보다 그녀를 더욱 위해주고 아껴주는 누군가를 만났으리라...... . 가끔 사랑이라는 감정의 분을 벗기고 그 민낯을 마주하고 싶다. 과연 그렇더라도, 그런 상황, 그런 외모, 그런 환경이더라도 당신은, 나는, 우리는, 그를, 그녀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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