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트레이 귀공자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5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이미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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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트레이 귀공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이미애 옮김 |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015

모든 것을 다 가지고도 단 한 가지를 더 얻기 위해 그가 가진 모든 것들을 다 내어놓는 사람... 어쩌면 어리석은 자일 수도 있고, 어쩌면 야망이 큰 자일 수도 있다. 아니면 역시 둘 다이겠지.. 야망이 크고 어리석은 사람,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을 과연 뭐라고 할까? 모든 것을 갖추고도 욕망에 이글거리는 눈을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이, 한순간의 재미를 위해서 모든 것을 날려버릴 용기? 가 있는 사람.. 그들이 유독 아끼는 것은 바로 하나, 스스로의 목숨이다. 죽음만을 두려워하는 벌벌 떠는 존재들... 인간으로 태어난 순간 죽음이 집행유예된 상태이지만 그들에게는 현재의 시간, 쾌락이 선사하는 바로 지금 순간만이 유일하고 또 영원하다.

책 [밸런트레이 귀공자]에서 집사 매켈러가 말하는 껍데기라는 부분... 아, 정말 공감한다. 그 자신이 리처드슨의 소설 [클러리사]를 낭독하는 귀공자의 재주에 감탄하지만 그가 모든 예술작품들은 한 번도 그 자신에 결합되어 생각하지 못하는 공감 능력이 결여됐다고 판단하는 부분은 경악스러웠다. 모든 사람들을 혹하게 하는 언변과 잘생긴 용모의 소유자, 순발력과 재치 등의 인간이 갖출 수 있는 모든 이점을 갖추고도 그에게 없는 것이 단 하나 있다면 남들에 대한 공감이었다. 그래서 매켈러는 귀공자가 판지를 붙여서 만든 인간 같다고 했을까? 가면의 얼굴을 한 번 치면 텅 빈 공간이 드러날 것 같은 순간이 있었다고 그가 말하는 데, 이 비어있는 부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간혹 이해 안 되는 일들이 있다. 그것 중 하나가 바로 전쟁이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총을 겨누고 자신이 가진 땅을 확장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희생을 강요하거나 요구한다. 책 뒷부분의 해설을 참고하자면 아마 저자가 말하는 빈 공간은 문명의 빛을 전달하여 원주민을 교화하겠다는 인도주의적 이념으로 무장한 채 아프리카에 간 식민주의자 커츠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텅 빈 인간은 소리도 요란하다. 그들은 항상 시끄러운 꽹과리를 두 손과 양 발에 걸치고 온갖 것들을 다 끌어모으고 말도 되지 않는 것들에 스스로 의미를 붙이면서 정쟁만을 일삼는다. 그것이 그들은 유일한 생존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밸런트레이는 동생 헨리에 대한 처절한 복수와 증오심이 있다. 하지만 이는 다름이 아닌 스스로 결정하고 그가 만든 것이다. 사실 그의 방황은 그 자신의 선택이었다. 듀리스디어 가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 명은 봉기에 가담해서 반역자의 편에 서고, 한 명은 조지왕에게 충성하는 길을 택해야 하는데 아무도 밸렌트레이에게 반역에 가담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장자라는 이유로 그가 남아있길 바랐다. 하지만 이 역시 그의 선택이 아닌가? 정치적 이유가 아닌 순전히 부를 축척하고픈 개인적인 욕심에 의해서 말이다.

스티븐슨이 창조한 사악한 천재 밸런트레이... 그리고 자신의 재능을 허무하고도 어리석은 일들에 낭비하는 사람들... 미워하는 일에 시간을 쏟는 일만큼 어리석고도 불행한 일이 어디 있을까? 그것만큼 생의 저주는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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