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카즈무후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2
마샤두 지 아시스 지음, 임소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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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카즈무후

마샤두 지 아시스 지음 | 임소라 옮김 |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012

이 사람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동 카즈무후]는 예전에도 일어났고, 지금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 사실을 다룬다. 책을 읽으면서도 왠지 기시감이 드는 것은 최근의 한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직장동료가 자신의 아내의 성폭행 한 줄 오해하고 그다음 날로 찾아가서 흉기를 휘두른 사건이다. 후에 자신의 아내와 그 동료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는 이미 한 가장을 세상에서 사라지게 했으므로 말이다. 그런 의심의 싹은 과연 어디서 나는 것일까? 그리고 그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은 과연 언제인가?

책 [동 카즈무후]에서 주인공은 절대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의심의 눈동자를 외부로만 돌린다. 자신의 아내 카피투, 그리고 친구였던 에스코바르... 왜 그는 스스로의 의심 자체를 의심하지 않았을까? 책은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역시 의심하게 한다. 정말 카피투가? 정말 에스코바르가? 실로 교묘하게 써 놓은 마샤두의 걸작이 아닐 수가 없다.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 카피투가 친구였던 에스코바르의 장례식에서 흘렸던 눈물과 눈빛, 바로 그것이 의심의 시작이자 하나의 트리거로 작동했다. 그리고 그의 아들에서 느껴지는 친구 에스코바르의 무언가... 아마 이것은 그에게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을 듯하다. 하지만 이 책은 모두 벤치뉴의 시선에서 씌었다. 그의 아내 카피투의 말도, 그의 친구 에스코바르의 변명도 없다. 아내는 그토록 사랑했던 남편의 변심에 말문을 닫았으며 친구 에스코바르는 이미 세상을 떠났으므로... 오직 그에게 증거는 아들이었다. 아들 에제키에우의 모습만이 그에게는 불변의 진리다.

오늘날에는 정확한 유전자 검사가 있으니 이를 가릴 수가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검사가 없었으니 오직 생긴 대로 판명했을 따름이다. 사실 아무런 증거도 없는데 말이다. 우리나라 소설 중에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는 소설이 있다. 주인공 화자는 생식능력이 상실됐는데 이를 숨기고 결혼을 한다. 곧 이은 아내의 임신... 화자는 아내가 낳은 아기가 자신의 핏줄이 아님에도 발가락이 닮았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인가? 서양에서는 다른 점을 찾기 바쁘지만 동양에서는 비슷한 점을 억지스럽게 찾아낸다. [동 카즈무후]의 주인공 벤치뉴는 밀어냄을 택했다. 그의 의심은 아내를 밀어내고, 아들을 밀어냈다. 그는 그 덕에 후련하고 속 시원했을지 모르나 그 외의 사람들은 불행했다. 특히 타지로 쫓겨나 외롭게 죽은 아내 카피투를 생각하면 그의 행동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알 수 있다. 반면 김동인 소설 속 화자는 스스로에게 장막을 쳤다. 스스로 잘 못 안 거라고, 진실조차 외면하는 방법을 쓴다. 그 결과 스스로는 곪아버렸을지 모르나 외부로 그 상처가 삐져나오지는 않았다.

에제키에우란 선지자 에스겔의 포르투갈 식 이름이라고 한다. 에스겔서에는 이런 대이 있다고 한다. 부모의 죄는 아이들에게 대물림 될 수 없으며 스스로의 죄는 스스로 짊어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사춘기 시절의 벤치뉴, 변호사 시절의 벤투 산치아구, 그리고 마지막 의심과 분노의 시절인 동 카즈무후... 과연 어떤 것이 그의 진짜 모습이었을까? 그가 진정으로 살고자 한 시절의 모습은 과연 어떤 것과 가까웠을까? 삶의 모습은 결국 스스로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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