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0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황가한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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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

압둘라자크 구르나 장편소설 | 황가한 옮김 | 문학동네

탄자니아란 과연 어떤 나라일까? 솔직히 아프리카의 문화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내게는 그저 탄자나아산 커피, 이슬람교를 비롯한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국가, 케냐 밑에 있는 나라 그 정도였다. 왜 그렇게 아프리카 문화는 소외되고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 아마 동양의 문화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서양의 것, 유럽의 것만 관심이 있고 최고로 생각하니까... 소외의 심경... 아마 스스로를 배반하고 소외시키는 것은 문화에서 그 출발이 있는 것 아닐까? 바로 관심이 없어지는 것,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가장 큰 배반이리라...... .

압둘라자크는 연신 작품에서 소외와 단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는 그의 개인적인 과거사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압둘라자크 그 자신이 혁명을 피해 스스로 영국으로 1968년에 망명을 했으며 그 후 시간을 계속 영국에서 보냈고, 고국으로 돌아간 것은 1984년 이후였으니 말이다. 아마 압둘라자크는 망명인의 삶, 고국을 버리고 영국으로 돌아간 자신에 대해 글을 쓰면서 끝없이 반추했으리라...... . 그가 진실로 원해서 고국을 등진 것은 아닐진대도 항상 빚진 마음으로 살아야 했을 것 같다.

소설 [배반]은 [낙원]과 더불어 그의 문학세계를 알기에 적합한 작품이다. 인도인 남편에게 버림받은 레하나를 통해 떠난 자와 남겨진 자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레하나를 떠난 자는 그녀의 첫 번째 남편이었던 아자드뿐만 아니라 후에 만나서 사랑을 나눴던 마틴 피어스라는 영국인마저 그녀를 떠남으로 그녀는 홀로 남게 된다.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 죽을 수는 없으니 배반을 당해도 살아야 한다. 이는 한 남성인 라시드에 의해 제3자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라시드 본인도 영국에 정착하기를 택한 자이다. 그도 역시 탄자니아의 잔지바르를 떠남을 택한 자이다. 과연 남겨질 자는 누구인가? 왜 모두들 떠나는 것일까? 기꺼이 이방인의 삶을 감수해야 할 정도로 조국의 식민 상황의 차별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을까?

떠남은 배반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떠난 자조 차도 영영 떠나지 못한다. 저자 압둘라자크가 끊임없이 글로서 자신의 조국을 소환하고 소환한 것처럼 말이다. 떠났으되 떠나지 못한 이들의 초상을 연민 어린 시선으로 복원해 냈다는 그의 소설에 대한 감상평들은 아마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만일 우리나라가 아직 일본의 식민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어떤 기분일까? 새삼 상상해 본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망명을 하거나 나라를 떠났을지 모른다. 그들 몇몇은 후에 돌아왔을 지도 모르고... 그리고 모국어는 아마 한글과 일본어 둘 다를 사용해야 했을 것이다. 순간의 선택... 아... 우리도 식민 상황이 있었지... 우리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지... 이제 좀 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아프리카 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겠다. 나에게 그 첫 시작이 압둘라자크임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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