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신예찬 - 라틴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5
에라스무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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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신예찬

에라스무스 |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어리석음의 신이야말로 위대하다. 책의 제목을 본 순간 그 우신의 위대함을 이해할 것 같았다. 왜냐면 이 세상 도처에서 어찌 보면 반쯤 미쳐있지 않고서야 살기가 어려운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에라스무스는 어쩌면 시대를 앞서 간 사상가이자 풍자가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원래 어리석음의 바탕이 된 인간의 삶 자체를 그야말로 명쾌하고 날카롭게 통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말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결혼에 대한 부분이었다. 결혼에서 우신의 역할이란 서로를 사랑스럽게 보이는 역할을 한다. 결혼 전 서로의 일들은 모두 감춰둔 채로 말이다. 개차반으로 살았더라도 상대방에게서는 진실한 여자와 남자로 보이게 한다. 서로의 모든 것을 알고 합쳐질 사람들이 과연 누가 있을 것인가? 아마 기겁을 하면서 서로에게서 도망칠 것이다. 누구는 물론 결혼한 후에도 기꺼이 도망을 치지만 말이다.

이외에도 재앙 같은 인생일지라도 즐겁게 살아가는 것은 바로 우신 덕분이라는 말... 그야말로 공감한다.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시련의 연속이다. 우선 나도 알지 못하는 부모에게도 태어나야 한다. 그 부모가 자신의 할 일을 하는 이라면 그나마 다행인데 어떤 부모는 짐승보다 못한 이도 있으니 그야말로 복불복의 삶이다. 그리고 고된 학교 교육을 받아야 한다. 요즘 초등학생들의 귀가시간을 보면 가히 밤 10시는 기본인 것 같다. 무슨 학원을 그렇게 많이 다니는지 눈이 팽팽 돌 정도이다. 그렇게 가르쳐서 훌륭한 사람이 된다면 다행이겠지만 저만 아는 사람이 될 확률도 많은 것도 문제이다. 모두가 다 자기 잘나서 그런 줄 알고 있으니 나중에 부모는 찬밥이 된다. 그나마 찬밥이라면 모르겠지만 존재의 이유를 끝없이 갈망하며 하루 종일 오락과 소비로 이렇다 할 경제적 자립이 없는 어른으로 자라는 자식을 두는 것은 더욱더 큰 문제이다. 재산 축내면서 부모의 등에 찰싹 붙어서만 사는 사람들도 있으니 참으로 오호라 통재이리라...... . 아마 우신이 없었더라면 이런 삶 속에서 누가 일분일초라도 견딜 수 있을 것인가? 그나마 빨리 잃어버릴 수 있는 기억력을 가지고 있고, 어리석어서 이런 유한한 삶 속에서 간헐적 기쁨을 그나마 누리는 것 아니겠는가? 우신에 대해 찬양할 일이다.

선생에 대한 우신의 지혜 역시 놀랍다. 저자는 말한다. 학교란 생각을 팔아먹는 상점 또는 학생들을 짓찧어 가루를 만드는 방앗간이자 형장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선생은 우신 덕분에 최고의 인간이 된다. 형장에서도 우두머리 격인 사형집행인이지만 그들 스스로는 그 사실을 모른다. 아이들의 순진무구함을 갉아먹으면서도 교육이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체벌도 서슴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우신의 시대였다. 선생에게는 그들이 아무리 지루하고 썰렁한 시를 읊조려도 칭송하는 관객이 존재한다. 칭송하지 않더라도 그 자리를 지키는 누군가가 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자신이 무척 대단하다고 착각한다. 역시 우신이다. 우신이 없었더라면 선생이란 애초에 사라질 직업군이었다.

아... 우신의 시대여... 당신을 향한 예찬은 인간의 멸종까지 계속되리라...... .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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