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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타반
헨리 반 다이크 지음, 차영지 옮김 / 내로라 / 2022년 5월
평점 :
아르타반
헨리 반 다이크 | 내로라
책을 읽으면서 또 다른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 짜라투스트라가 조로아스터라는 사실... (조로아스터의 발음이 독일식으로 짜라투스트라 이다.) 니체는 자신의 이상적 분신으로 짜라투스트라를 언급한다. 과연 그가 말한 조로아스터교는 어떤 믿음의 공동체일까? 기회가 닿는대로 책을 찾아서 읽고싶어진다. 책으로 연결되는 하나의 책이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흥미롭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인 아르타반은 조로아스터교인이다. 난 처음에 조로아스터교는 불을 섬기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불이란 것은 고대의 것 중에서 훼손이 되지않은 태초의 상태 그대로라 여겨졌기 때문에 신성시한 것 이었고, 그들은 불꽃과 냄새로 신에 대한 경배를 표현했다고 한다. 아르타반의 여행길... 그의 목표는 하나였다. 그 옛날부터 별자리를 통해 알고 있던 구세주의 존재...그를 만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르타반의 여행길은 순탄치않다. 33년의 세월동안 그의 목표는 오직 단 하나였지만 그는 눈으로 보이는 목표대신 과정을 통한 진정한 목표를 이루었다. 그의 말대로 구세주를 찾아 가는 과정에서의 걸림돌 또한 그 목표를 이루게 해 준 또 다른 수단이었다.
많은 이들이 꿈은 크게 가져야한다고 말한다. 왜냐면 그 큰 꿈이 행여 좌절이 되었을때 그 차후의 꿈을 이룰 동력이라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르타반의 꿈이 과연 큰 꿈이었을까? 아르타반의 길은 어떤 길이었을까? 작은 길도 큰 길도 모두 꿈의 길이다. 꿈이 크던, 작던 이루고자하는 소망에는 변함이 없다면 꿈의 내용보다는 의지가 중요한 것이다.
어쩌면 세상에는 목표가 아니라 그 목표를 향해가는 여정이 중요한 것이고, 이미 여정에 정직했다면 그 목표는 이뤄진 것이라는 진리를 아르타반은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굳이 끝을 보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 목표가 이뤄졌는지, 이루지지않았는지는 그 사람의 마지막의 모습을 봐야지만 알 수가 있다. 조르아터교의 묘미는 여기에 닿아있다. 그것은 바로 본질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종교라는 사실이다.
아르타반의 여정은 실로 무모했다. 그는 가진 것을 모두 팔아서 여행길에 올랐고, 모두의 손가락질을 받아야했다. 하지만 아르타반은 포기하지않았다. 친구들의 비난을 모두 수용하면서 자신의 믿음을 의심했지만 바로 자신 속에 심어있는 신앙의 본질, 구원자의 본질을 찾아서 여정에 오른 것이다. 마지막에 가서도 구원자를 못만났지만 그는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구원자의 본질을 찾아헤맸던 그 시간에 그는 스스로의 본질과 대면한 것이리라...... . 때로는 삶, 그 자체를 묵묵히 살아가는 것 자체가 위대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