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 신유희 옮김 | 소담출판사

갖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보고 싶은 사람도, 이곳엔 이제 하나도 없어

에쿠니 가오리하면 항상 청량함이나 가벼운 풍선같은 문체가 먼저 떠올려지지만 이번 소설을 그렇지만은 않았다. 물론 그녀의 문체가 변했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녀는 세월을 먹지않고 그대로 존재하는 듯 문장은 맑았고, 청초했다. 그러나 소설 속 전체의 스토리와 인물들의 감정묘사 등은 확실히 진득해지고 걸쭉해졌다. 그리고 소설에서 어떤 죽음 이야기를 계속 해나가는 것도 아마 그런 느낌을 더 가중시켰으리라...

소설 속에는 여러 인물들이 나온다.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온 모든 이들... 어느 날 여든 살이 넘은 세 명의 남녀가 엽총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생을 달리한다. 그들과 관계된 모든 이들의 이야기...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에 소설은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아들, 딸, 손녀, 동료들, 직원들, 제자 등 등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는 것... 서로가 고인들의 인생을 기억하는 방법, 어쩔 수 없는 슬픔과 원통함, 모든 온갖 감정들이 이 속에 녹아있다. 그럼에도 살아가야한다는 것...저마다의 인생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알고 미도리는 생각한다.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이다. 죽음이란 어쩌면 탄생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라는 것... 아무리 가깝고 절친한 사이라도 사람 내면의 깊이 존재하는 무엇은 결코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차피 일어난 일이고, 감당해야할 사건이다.

얼마전에 성인이 되어 보호시설에서 얼마 간의 자금을 받고 나간 대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학생의 유서같은 메모장에는 이런 글이 있다고 한다. 아직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은데...... . 막막해지는 문장이다. 청춘의 시대를 뒤로 하고 이 세상을 떠날 결심을 한 학생의 미련은 얼마나 큰 것일까? 아직 하고 싶은 것, 해야할 것, 먹고싶은 것, 가고 싶은 것 등 등이 많은 것...

소설에는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갖고 싶은 것도 없고, 가고 싶은 것도 없다고.... 아무 것도 없는 무... 어쩌면 생의 원동력이란 욕망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죽더라도 떡볶이가 먹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사소한 욕망과 욕구가 그를, 그녀를, 우리를 살게한다. 각자의 욕망을 다스리고 사는 삶은 얼마나 중요한가... 그 욕망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아예 욕망이 사그라지는 것도 경계해야한다. 사람이란 때론 단순한 어떤 것, 사소한 어떤 것 때문에 살고, 또 죽는다.

하루 하루 세월이 무척 빠르다. 어떤 날은 하루가 일년처럼 흘러가기도 하지만 어차피 그 시간도 다 지나니...지나는 시간을 반추하면 흐르는 시간 속에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내가 보인다. 흡사 빠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는 것같다. 손잡이를 잡아야하는데, 잡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대로 시간은 통과하고 통과한다. 결코 멈춤 버튼을 누를 수 없는 삶이다. 어차피 우리는 곧 새해를 맞을 것이고, 소설 속 한 대목처럼 '아직 얼마 동안은 이 세상을 살아가리라......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