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움직이는 것은 선장일까? 1등 항해사일까? 아니면 다수의 선원들일까? 거대한 배, 즉 이 한배에 탄 사람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거침없이 맡겨야할때는 그 리더를 보고 결정해야하지 않을까... 리더가 잘못되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결국 모두 죽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도 없다. 바로 스스로가 죽어버리면 그만이다.
최근 러시아에서 예비군 동원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그야말로 총체적인 난국 상황이다. 리더의 결정에 따라 모두 죽고 사는 것이 결정되는 때... 돈 있는 자들은 아마 벌써 다른 루트를 마련해서 그 나라를 떠났을 터이다. 아무런 목적없는 서로가 같은 말을 하는 동포를 스스로의 손으로 죽이고 죽는 고리를 무슨 명분으로 한단 말인가? 하지만 독재자는 그 길을 간다. 흡사 하나의 러시아를 향한 광기어린 집착이 엿보인다. 모든 국민들을 희생시켜서라도 스스로의 집착을 실현시키려고한다. 왜 그에게서 자꾸 에이헤브가 보일까? 거대한 러시아라는 피쿼드호가 이제 바다로 나가고 이제 그 희생양은 그 배에 탄 사람들 모두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지도자의 잘못된 언어선택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솔직히 정확한 뉴스가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이미 정권에 대한 신뢰도의 하락은 무심함으로 연결되어 정치권 뉴스는 스킵하는 신공이 발휘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귀를 닫고 눈을 막아도 들리고 보이는 게 있으니, 이게 참 문제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사건 사고들... 휴...하고 한숨만 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도 내 의지가 아니지만 이 배에 승선한 선원에 불과할 뿐이다. 이미 탄 순간 내릴 수는 없다. 그저 무사히 이 항해가 끝날 때까지 숨죽이고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아직 일년도 안 지난 상황이 답답할 뿐이지만 말이다.
예전에는 이 소설을 읽을 때 거대한 모비 딕이라는 향유고래와 싸우는 인간의 의지, 사투 같은 것이 느껴졌다면...아니, 그것을 느끼기를 모두가 강요한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인간의 어리석음만 느껴졌다. 흡사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와 같은 느낌이랄까... 전에 읽었던 느낌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모비 딕]은 이제 내게 새로운 견해를 주는 새로운 책인 것이다.
책에 나오는 이슈마엘은 철저히 관찰자의 시점으로 모든 것을 보고 있다. 그리고 지독할 정도로 많은 고래에 대한 정보들이 책 속에 녹아있다. 고래학에서부터 고래 해체, 고래의 종류와 포경선에 대해서, 고래를 잡는 작살, 그리고 고래잡이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들까지 말이다. 거대한 고래에 대한 백과사전과도 같은 책이었다. 허민 멜빌의 책이 그의 생전에 빛을 보지 못하고 사후에 빛을 본 것은 무척이나 아쉬운 일이다. 고래에 대한, 책 [모비 딕]에 대한 그의 끈질한 여정이 그의 사후가 아니라 생전에 인정을 받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 인간의 삶이란 참 무상한 것이다.
목표만을 보고 앞으로 나가는 인간의 삶은 얼마나 무섭고 의미가 없는가? 그리고 그 결과가 그 자신의 불행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지도자가 됐을때 그를 어쩔 수 없이 따랐던 많은 힘없는 사람들까지 그 불행의 구덩이로 몰아넣는 다는 점이 두려운 사실이다. 에이헤브에서 성경 속 인물 아합왕이 연상된다는 사실... 결국 그를 따랐던 모든 이들이 이슈메일을 제외하곤 모두 죽었다는 사실....
자연과 인간은 결코 극복되고 정복하는 대상이 아니다. 포용하고 인정해야하는 대상이다. 사실 인간이 인간을 정복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인간이 자연을 정복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비 한번 퍼붓거나 혹은 비를 안내리게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삶은 금방 무너지니 말이다. 자연의 손 끝 하나에 그 자연의 선두에 선 인간은 힘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저 이름 석자로 불리는 존재에 지나지 않을 사람들이다. 그 이름이 석판에 남아 빌런같은 존재로 향할 자...아니면 그 빌런을 증거할 관찰하는 자... 그 둘 중 하나이리라. 당신을 이슈마엘로 불러드릴까요? 이제 당신의 역사를 증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