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가 제철 트리플 14
안윤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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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가 제철

안윤 소설 | 트리플 시리즈

작은 판형의 시원한 표지의 이 책 안에는 세가지 이야기들이 농밀하게 숨어있다. [달밤], [방어가 제철], [만화경]...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입맛이 돌았다. 그만큼 음식에 대한 묘사가 많기 때문이리라... [달밤]에서 나오는 육개장, 시금치 무침, 애호박전, 두부 등 등... [방어가 제철]에서는 제목에서 보이듯 방어회 뿐만 아니라 주인공 어머니가 하는 반찬가게에 대한 묘사와 여러가지 해초, 전복회, 멍게회 등 등이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만화경]에서는 팽이버섯전, 고구마 깻잎전 등이 나오고 말이다. (왠지 저자가 음식에 관심이 많은가...하는 쓸데없이 호기심이 샘솟기도 한다.)

세가지 소설 중에서 나름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한 [방어가 제철]... 어떤 상실에 대한 이야기인가했다. 소설 속 주인공 안라의 시점에서 내용이 전개되는데 그녀 주위 사람들은 현 시점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미대를 반대하고,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홀로 노동을 전담한 어머니는 암으로 인해 고통 속에서 돌아가셨고, 그녀의 하나뿐인 오빠인 재영 역시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추락사하며 죽은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 상실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녀 곁에는 오직 정오라는 오빠의 친구 뿐이다.

오빠인 재영이 죽었을때 그녀는 정오를 찾았다. 하지만 연락도 닿지않고, 소식을 끊고 지낸 지 오래... 어느날 느닷없이 연락해 온 정오를 만나서 그녀는 대뜸 방어를 사달라고 한다. 겨울 초입에 먹는 기름진 생선...방어회... 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정오는 그녀의 말을 흔쾌히 수락하며 자신의 거래처 사람들을 대접하는 횟집 [창해]로 데려간다. 그들은 무엇을 소회하는 것일까? 그들 곁에는 이미 그들이 사랑했던 사람은 없는데...... .

하지만 이 소설은 상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재영의 빈자리를 정오가 대신 위로해주는 만남도 아니었고 말이다. 안라와 정오는 그저 짧고 반짝이는 시절을 조금 되살릴 수 있는 따뜻함을 느끼고 싶지 않았을까.... 정오가 사랑했던 재영... 안라는 그것을 한 순간에 알았다고 한다. 어느날 화선지 모서리에 정오가 자신의 이름보다 더 정성껏 재영의 한자이름을 써주었던 그 찰라의 순간에... 타이머가 끝난 선풍기의 회전이 멈추고, 고개를 들었을때 세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마주쳤을때... 아마 그때 셋 중 누구도 눈을 똑바로 뜨지는 못했으리라... 너무 환해서...너무 빛나서...그리고 너무 아름다워서...

살면서 간직하고 싶은 순간은 그런 찰나의 순간이다. 언제 왔었는지 모를, 언제 지나쳤는지도 모를 빛의 속도보다 더 빨랐을 그 순간.... 아마 안라와 정오는 방어의 맛을 몰랐으리라... 대신 독한 술의 맛은 알았을 지도 모르겠다. 독한 술 한모금을 중화시키기 위해 기름진 방어회가 필요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해본다.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는지 말이다. 단 한 순간 짧지만 빛나는 기억을 다시 되살리기 위해 만나고 싶은 사람... 아마 그때는 술보다 더 독한 것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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