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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가벼운 마음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 김도연 옮김 | 1984BOOKS
한 여름에 만나는 한 뼘의 바람... 그리고 그늘... 냉수 한 컵... 아~ 그런 것들은 얼마나 소중한가? 어린 날 외갓집에서 한동안 살아야한 적이 있었다. 엄마가 무척 그리울 나이였지만 현실은 냉혹하니 어린 내가 발버둥친다해도 들어줄 어른들은 아니었다. 그런 것들을 일찍 깨우치고 살았던 것같다. 싫다고 생각했던 생활이었지만, 그리움의 생활이었지만 나이든 지금에 오면 그때 생각들이 아른 거린다. 여름날 할머니가 타주신 설탕 한 숟갈 듬뿍 들어간 달달하면서도 시원한 미숫가루... 시골 우물가 옆에 있던 앵두나무에서 한 웅큼 앵두를 따서 먹던 일, 한 겨울은 또 어떤가? 눈이 바가지로 퍼붓는 듯 온 어느날 아침... 일찍 일어나 눈사람도 만들고, 커다란 양재기며 밥공기를 들고 와서 동글동글하게 눈덩이도 만든 일... 할아버지와 소를 데리고 들판으로 나가서 신선한 풀을 뜯기게 한 일 등 등.... 모든 지난 날... 가볍게 스친 아름다운 순간들이다.
보뱅의 소설... 항상 에세이만 읽다가 소설은 이번 기회에 처음 접했다. 그의 에세이 만큼이나 따뜻하고, 실날같은 희망... 그래도 아름답다는 안도감이 느껴지는 삶에 대한 반짝거림... 등 등이 느껴졌다. 아.. 어쩌면 소설의 첫부분...내 첫 사랑은 누런 이빨을 가지고 있다..라고 시작한 첫 문장부터 반짝거림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늑대에 대한 사랑... 마지막 그 늑대를 묻었을때... (몇년 전 떠난 나의 슈슈가 생각나서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그때부터 뭔가 범상치 않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는데...뤼시...
뤼시는 엄마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넌 왜 좀 사근사근하지 않느냐고...ㅎㅎ 뤼시는 말한다. 자신을 이렇게 키운 사람이 누구냐고 ㅎㅎ (할말은 다한다) 그리고 가출을 일상처럼 한다. 그녀는 가출은 인생 그 자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일...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뤼시가 말하는 가벼운 마음이다. 그녀는 늑대가 죽고나서 더 마음이 가벼워진 것같다. 글조차도 잉크를 사용해서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녀... 가벼운 마음으로 쓴다고 한다. 스치듯이 말이다. 늑대의 죽음 이후 사람을 대할 때도 그 사람이 죽음을 향해 간다고 느끼고 있으며, 가깝지만 사실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것은 진실이다. 아마 그녀의 수호천사가 말해줬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실이라고... 그녀의 수호천사란 바로 삶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지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직감을 말한다고 한다. 그녀는 철저히 자신의 직감을 신뢰한다. 직감을 믿는 자는 복되도다... 직감이 직감인줄 모르고, 그저 스치듯이 안녕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말이다. 뤼시는 누구보다 더 직감을 믿고 따르고 있다. 아마 그것이 그녀의 가벼운 마음의 원동력 이리라....
어릴 적 우연히 들어간 뚱보 아주머니 집에서 그녀의 음악 이야기를 들었던 뤼시... 어떤 사람은 고양이나 개를 반려동물로 키우지만 자신에게는 바그너, 라벨, 슈베르트가 있다고... 고양이처럼 가볍게 존재한다고... 아... 일상이란 이런 것이구나...어차피 세상은 온통 가벼움 투성이구나... 그것을 모르고 무겁게 살았구나... 인생이 선사한 이 가벼운 마음이야말로 삶의 축복이 아닌가...... . 이름 자체가 빛이란 단어에서 유래했다던 뤼시.. 그래서 자신의 대모를 따라서 이리저리 가볍게 다닌다고 했던가? 인생이란 무게에서 온통 알짜배기만을 가져가는 듯... ㅎㅎ 뤼시의 가벼운 마음이 부럽다. 그 마음이 더 멀리로 달아나기 전에 그 속에 나의 가벼운 마음을 더해본다. 오늘 하루는 부디... 가볍게, 훌훌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