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삶의 음악
안드레이 마킨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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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삶의 음악

안드레이 마킨 지음 | 이창실 옮김 | 1984BOOKS

왠지 소설이 아닌 느낌이다. 에세이같은 소설..시같은 소설... 딱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저자를 따라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황량한 곳을 거쳐서 다시 모스크바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는 그런 느낌...여정소설...그리고 그 안에 또다른 이야기가 펼쳐져있다.

처음에는 음악소설인가 했다. 제목에서부터 음악이 등장하고, 화자가 만나는 대상이 어느 한 피아니스트였으니 말이다. 이제는 노인으로 변한 그 남자에게서 그의 삶을 듣고 무언가 변화되고 깨달음을 얻는 화자..아마 그 화자는 저자 안드레이 마킨이 아니라 독자이리라...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무언가 큰 일은 경험한 사람에게는 그만의 독특한 아우라가 있다. 그 아우라는 비교적 따뜻하다. 그리고 왠지 이 세상의 살아있는 것을 초월하는 느낌이다. 이상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독특함이 있다. 화자 역시 알렉세이 베르그를 만나서 무언가를 체험한 듯하니까 말이다.

여기 나오는 거부할 수 없는 한 단어가 있다. 바로 호모 소비에티쿠스... 일명 그것은 옛 소련 사람을 의미한다. 그들은 안락한 생활에 무관심하다. 그리고 부조리한 상황에서 직면해서는 끈질긴 인내심을 발휘한다. 그들은 전쟁과 고통과 희생을 아무 불평없이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는 치명적으로 자아를 상실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런 순종과 체념밖에 모르는 집단을 바라보는 화자는 그런 집단 안에서 자신을 분리해내고 애를 쓴다. 같은 한 몸뚱이로 엮이기 싫다는 듯...끊임없이 그것들과 거리를 둔다. 그것은 역사 안의 사람들을 묘사하는 것에서 나타난다. 한 매춘부를 바라보는 시선, 군인들의 시선, 아기 엄마를 보는 시선.... 유독 그를 그 속에서 떼어놓지 못하게하는 것은 어딘선가 들려오는 음악이었을 뿐이다. 사람은 그에게 아무런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소비에트는 그에게 떼어내고자는 실패한 체제의 잔상이었다.

한없는 기다림...열차가 연착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들은 분노하지 않는다. 6시간 연착이 6일이 될 수 도 있다. 다 감수하리라... 그들은 이미 그런 존재들이다. 화자는 그 속에서 한 노인을 본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은 서로 도시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미 어쩌면 완전한 호모 소비에티쿠스였던 알렉세이 베르그... 화자는 그에게서 연민을 느낀다. 아름다움을 느낀다. 한 시절 그 자신을 몽땅 잃어버렸고, 젊은 시절은 이미 혹독한 시련으로 점철되었지만 아직도 베르그에게 음악은 살아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아름다움, 삶의 아름다움이었다.

안드레이 마킨이 어떤 사람인지 그의 글을 통해 어느정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낮은 지대에 살지만 눈을 위로 두는 영혼들에 따뜻한 연민과 사랑을 보낸다. 그가 프랑스로 망명을 한 후 지금까지 프랑스어로만 글을 쓴다고 한다. 이미 소비에트, 러시아는 그의 마음에 그의 조국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 그 속의 사람들은 그의 프랑스어를 통해 다시 살아난다. 실패한 체제 속에서 박제되어있는 호모 소비에티쿠스.... 그들의 눈을 과연 누가 뜨게 해줄 것인가? 아직도 러시아에 사는 많은 선량한 사람들... 고통을 묵묵히 감수하는 것밖에 모르는 사람들... 그들은 언제 깨어날 것인가? 이상하다. 이 아름다운 소설 속에서 시린 고통이 느껴지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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