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피아빛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6
이사벨 아옌데 지음, 조영실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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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빛 초상

아사벨 아옌데 | 조영실 옮김 | 민음사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가...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특히 어린 시절의 기억은 영원한 트라우마로 남는 법이다. 그것이 설령 기억나지 않더라도 영혼 깊숙히 잠재되어있어서 스스로를 괴롭히거나, 혹은 살아갈 힘을, 버텨낼 힘을 주는 것이다.

거대하고 육중한 침대에 대한 묘사로 시작하는 첫부분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그 삼엄한 전쟁의 기운이 물씬 드리워진 시절에 성공한 사업가의 표상이었던 파울리나... 그녀는 물건을 사는 것으로 남편에 대해 가지는 감정을 해소시켰다. 탁월한 사업감각을 가진 파울리나는 흡사 칠레 시대의 성장의 원동력을 보는 듯하다. 역시 특출난 사업가는 다르다. 아이템을 보는 안목과 그것을 실현시키는 배짱이 있어야하는 것이다. 손녀 아우로라는 그녀의 그런 기질을 신기해한다. 어디서 저런 힘과 열정이 솟아오르고 있을까?

이 이야기는 아우로라의 개인적인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악몽으로부터 끝없이 탈출하는 법을 글쓰기를 통해 단련시키고 있다. 독자는 거기에 가장 적합한 관객이고 말이다. 아우로라가 악몽을 가지게 된 것은 후에 밝혀지지만 외할아버지 타오 치엔과 관련되어 있었다. 어린시절 아우로라의 유일한 사랑...그녀의 모든 것을 돌봐주었던 힘이 사라지지 아우로라에게 기억할 것은 남아있지 않았다. 외할아버지의 죽음과 동시에 그녀의 기억이 모조리 사라진 것은 무리가 아니다. 할머니인 파울리아의 보살핌으로 악몽으로 벗어났지만 그녀의 악몽은 결혼과 동시에 다시 시작된다.

아우로라는 사진을 찍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악몽을 그 속에 가두려한다. 사진은 필연적으로 빛이 필요하고 그림자를 동반한다. 흡사 삶과 비슷하다. 삶 역시 행복의 밑바탕에는 고통이 수반되어야한다. 고통없는 행복이란 온전한 행복이 아니다. 명암과 흑과 백이 있어야지만 돋보이는 것이 있다. 고통과 그림자는 행복과 사진을 모두 돋보이게하는 필연적인 존재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우로라는 남편 디에고의 외도를 사진을 통해 알게된다. 그로 인해 고통스런 악몽이 시작됐음에도 곧 그로인해 그 악몽은 끝이 나게 된다.

진실을 알게 되는 일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것을 마주함으로 우리는 힘을 얻는다. 아옌데의 소설은 칠레 여성들의 억압받는 삶을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도와준다. 사랑과 믿음의 상실이 바로 악몽으로 표출되는 아우로라처럼 칠레 여성들의 억압받는 삶 역시 다른 방식과 표현으로 여기 저기서 분출되고 있는 것같다. 칠레 여성들의 기록으로 대표되는 아우로라의 기록들... 이 소설은 그녀 개인의 악몽 탈출기인 동시에 억압받는 모든 여성들을 대변한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고통은 흔적을 남기고 글쓰기는 영원하다. 흡사 아우로라의 사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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