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자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4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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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자식

이반 투르게네프 | 연진희 옮김 | 민음사

신세대와 구세대의 갈등과 대결 양상은 언제나 흥미로운 주제이다. 세월이 갈수록 세대간의 격차는 더욱 더 커지고, 기술의 발달은 그것을 더 가속화시킨다. 지금은 어디에나 무인 키오스크가 상점마다 보인다. 그리고 능숙하게 그것을 작동하는 젊은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기술의 가속화는 그에 걸맞는 혜택 또한 양분화한다. 요즘은 아이들 역시 능숙하게 다루는 스마트 폰... 같은 상품도 가격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일명 호구가 되지 않기위해서 가격 비교는 일상화이다. 하지만 스마트 폰을 그렇게 다루지 못한 사람들, 직접 오프라인에서 구매를 해야만 안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분명 모든 혜택에서 제외되는 삼각형 지대가 존재한다.

요즘 세대들, 특히 90년대 혹은 2천년대를 대표하는 이들을 소위 MZ 이라고들 말한다. 이들은 합리성을 추구하며, 노력을 중요시하고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는 일명 개인적인 효율성을 추구한다고들 한다. 어린 시절부터 무한 경쟁에 노출되고 스마트폰을 쥐고 태어난 세대로서, 또 지금은 집값이 왠만한 월급을 모아서는 살 수 없을 정도로 뛴 상황에서 이들은 결혼 역시 보류하고, 비혼주의자가 많은 것도 현실이다. 시대와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

여기 그 시대와 상황에서 갈등이 극대화되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바로 투르게네프의 소설 [아버지와 자식]의 주인공들이 그러하다. 소설의 시대는 바야흐로 농노해방의 시기와 맞물려있다. 러시아의 일명 지배계급들이 거대한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농노의 손을 빌리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세대는 변했고, 혁명을 통해 사람들은 달라졌다. 아르카지의 말처럼 그의 삶이 어디서 시작했는지에 따라서 태생이 정해지는 것도 아니다.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하등 그 사람의 사람됨을 결정하는 데 중요하지 않다.

아르카지의 친구 바자로프는 또한 어떠한가? 난 예전에 바자로프를 통해 니힐리스트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 그 단어가 괜히 멋있어보였다. 일체의 권위도 부정하고 허무의 심연을 온전히 바라보고, 어떤 원칙이라도 신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 바자로프는 그의 이러한 성향과 어찌보면 약간은 비틀린 감성으로 아르카지의 큰 아버지인 파헬과 갈등관계를 빚는다.

후에 허무하게 결말을 맺게 되는 바자로프...어찌보면 바자로프의 삶 역시 그의 철학과 맞닿아있다고 생각이 된다. 허무주의자에 걸맞는 그 다운 죽음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의 친구인 아르카지... 그는 바자로프와의 관계를 통해 다시금 성숙한 자아를 갖는다. 이 소설은 아마 아르카지의 성장 소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의 발전은 실로 놀랍다. 후에 아버지의 새 아내로 어린 페트리카를 인정하는 그.... 그는 온전히 아버지의 삶을 이해했고, 자신이 거기에 관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린 아르카지였다면 아마 이처럼 하지는 못했으리라... 아버지는 아르카지를 통해, 또 아르카지는 친구 바자로프를 통해 다시 태어난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들만의 어떠한 케미가 있다고 한다. 딸과 엄마가 그러한 관계인 것처럼 남자끼리만 통하는 뭔가가 있을 것이다. 고전을 읽을수록 그 세계가 우리가 사는 지금과 동떨어져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그 시절의 고민이 지금도 이어진다. 사람의 삶이란 바로 이래서 매력적인가.... 고민하는 것...산다는 것이 이처럼 다 비슷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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