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
헤르만 헤세 지음, 김지선 옮김 / 뜨인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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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

헤르만 헤세 지음 | 김지선 옮김 | 뜨인돌

학창시절 나는 긴 목록을 들고 다녔다. 그 목록은 바로 청소년이 읽어야할 세계문학 100 같은 류였다. 하나 하나 지우면서 왠지 모를, 지금식으로 말하자면 도장깨기에 재미를 들렸던 것같다. 그때 일화 중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는데, 일명 어려운 말 쓰기이다. 중학생때 난 니힐리스트라는 말을 알고 그것을 무척 써먹고 싶었다. 바로 허무주의자란 뜻... 학교에서 무슨 발표할 일이 있어서 그 단어를 써가면서 발표를 했는데, 사실 막상 하고나서 선생님의 지적을 듣고 정말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 책을 읽는 것은 지식을 자랑하기위함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성숙해지기 위해서라는 말... 자랑하는 책읽기는 허세라는 것...

찬란했던, 하지만 어느 정도는 암울했던 중학교 시절을 보내고 나의 책목록은 좀 달라졌다. 중고등학생이 읽어야할 책 목록을 벗어나서 이제는 죽기 전에 꼭 읽어야할 소설 100이나 꼭 봐야할 영화 100선 이런 것들에 몰두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소설이나 그런 영화가 꼭 있나 싶지만 왜 그때에는 꼭이란 단어에... 목숨을 걸었나 싶다.

좋아하고 즐겨듣는 팟캐스트에 손희정 평론가가 나와서 자신의 책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를 설명하면서 남성 위주의 영화들 속에 폭력적으로 당하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지 토로했다. 그때까지 난 한번도 그런 생각을 안하고 히히거리고 보았던 지라 어느 정도는 좀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손희정 평론가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얼마나 여성들을 보는 시선이 폭력적인지 대해서 이야기할때는 아... 내가 몰랐던,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알리는 사람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저 재미있고, 즐거운 것을 떠나서 내가 보고, 우리가 보는 모든 것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의식수준을 결정한다면...)

책또한 이와 마찬가지이다. 일례로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상당히 베스트셀러고 수많은 애독자층이 있는 고전이다. 하지만 그 소설에는 남근주의, 남성중심의 폭력적인 세계관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거칠고 당연한 듯이 인정되는 것들 속에 우리는 의심도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심지어 고전이라는 명목으로, 아니면 베스트셀러라는 명목, 혹은 유명인 누구의 인생의 책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헤세는 말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바로 삶을 단단히 부여잡는 일이라고 말이다. 책으로 향할때는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의 마음으로 다가가야한다고, 그 의지, 뜨거운 삶에의 의지로 책을 대해야한다고 말이다. 그러기에 책 목록, 무슨 무슨 꼭 읽어야할 책은 없는 것이다. 다독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독서의 질이라고 말하는 헤세... 그리고 우리는 독서에 무언가를 기대해야한다고 말한다. 그 기대함을 얻고자 힘을 다해 의식적으로 읽어야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힘을 기울여서 책을 읽으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삶에 몰두할 수 있는 힘을 책을 통해 얻는 것이다.

헤세의 말들을 통해서 스스로의 독서생활을 반성해본다. 그동안 읽었던 많은 책들이 과연 얼마나 내 속에 남았을지..아..모르겠다. 잊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가... 그동안 재독은 못했는데, 한번 재독할 책 목록을 뽑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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