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끄러지는 말들 - 사회언어학자가 펼쳐 보이는 낯선 한국어의 세계,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백승주 지음 / 타인의사유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끄러지는 말들

사회언어학자가 펼쳐 보이는 낯선 한국어의 세계

백승주 지음 | 타인의 사유

어릴 적 한때 나는 자유롭게 말하고 싶었다. 맘껏 내 생각을 말하고 싶었다. 그 어떤 재단도 하지않고, 남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고 말이다. 하지만 신중하게 말하든, 그러지 않든 간에 말에는 어떤 상처가 숨어있는 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말하기가 조심스러웠다. 내 생각은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내 말에 가시가 있고, 상처가 숨어있다고 하니, 누군가에게 그런 말들을 듣고 나면 말하기가 더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친한 친구들을 만나서 한동안 속 시원하게 수다를 떨고 집에 돌아와서도 침대에 누워 내가 한 말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점점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피곤해졌다. 과연 나의 말들은... 어떤 말들일까? 나는 어떤 말들을 그들에게 하고 싶었을까? 내 말은 왜 닿지 못하고 어쩔 때는 한없이 미끄러지는 걸까...

이 책은 말하기의 말하기... 말하는 법을 구체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언어의 구도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의 세상은 침묵을 하라고 말한다. 스스로의 견해를 드러내지 말고, 정치적 성향도 숨기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묻고 가라고 말한다. 이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유별나다고 공격한다. 과연 그 사람이 유별난 것인가? 아니면 숨 죽이고,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자기 식대로 재단하는 사람들이 유별난 것인가?

얼마전에 한 유튜버가 악플에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녀가 페미니스트라는 견해를 내비쳤다는 단지 그 이유만으로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이 그녀를 공격했다. 그 공격은 집요하게 이어졌으며 집단화 되어갔다. 어떤 이는 스스로 무엇을 공격하는지도 모르면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 결과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말이 이제는 무기가 되는 세상이다. 그 말들은 서로를 공격한다. 치명적인 독이 된다.

한국어라는 개념 안에는 언어와 영토, 국민 모두가 들어있는 성삼위일체에 버금가는 어떤 신앙적인 요소가 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정말 이상하다. 그냥 언어일뿐인데 그 안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언어학은 현대 자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언어는 노동자 중심의 말들을 연구하지 않는다. 언어가 대변하는 것은 오히려 자본, 즉 돈이다. 뉴딜, 뉴노멀.. 등의 말에서 무엇이 느껴지는가? 고상한 그 단어들에 착취, 은폐, 모르는 것은 무식한 것이라는 속뜻이 담겨있다. 비정규직이란 단어 앞에서는 오히려 그런 직이 당연히 존재해야하는 것... 그 차별의 정당성이 부여받는다. 플랫폼 노동이란 말은 또 어떠한가? 자발적으로 착취당하겠다는 뜻이 읽히지는 않는가?

요즘 아이들이 사용하는 말들은 줄임말이 많다. 물론 욕들도 일상이다. 줄임말이 사실은 얼토당토하지 않아서 찾아보면 어이가 없는 경우도 많다. ㅎㅎ 사실은 그렇게 줄여서 쓰지않아도 될 말을 줄여서 쓴다. 그리고 그것을 미디어가 응하면서 줄임말은 신세대의 특권이 된다. 좀 더 세월이 지나면 아이의 말, 어른의 말, 청소년의 말... 서로의 말들을 각자 공부해야 소통하는 시대가 올까... 말들이 미끄러지지않고 서로에게 닿기 위해서는 과연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아... 싸우자. 순수한 척, 그것이 정상인 척 하는 세상과 철저히 싸우자. 그냥 엉겨붙어서 말하는 수 밖에 없다. 그것이 행여 상처가 되더라도 그때 다시 해명하면서 차별과 혐오의 말에 대항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