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인의 사랑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장현주 옮김 / 새움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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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인의 사랑

다니자키 준이치로 | 장현주 옮김

이런 자신의 은밀한 내면의 이야기를 대담하게 말하는 작가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그것이 현대의 시대도 아닌 이미 100년 전에 말이다. 전에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을 읽었지만 그것과는 결이 다른...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농후하게 들어간 작품이라고 여겨졌다. 이런 판타지, 혹은 패티시를 다니자키는 글로 열심히 보여주지만 사실 그는 삶 자체로도 보여주었으니 대담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이 작품 <치인의 사랑>은 그가 처제인 세이코와의 묘한 동거생활을 시작하면서 얻어낸 결과로 나온 작품이다. 작가란 작품을 위해서는 얼마나 악마적인가? 아니면... 그 자신의 타락한 본능을 드러내고자 오히려 결혼 생활을 이용한건가... 싶기도 하다. 실제로 본인이 작가에겐 아내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고 하니... 여기에서 그 유명한 아내 양도 사건이 드러난다. 처제와의 생활이 파탄으로 끝나고 아내 역시 다른 남자에게 돌아서자 곧바로 이혼하지 않고 10년이나 끌다니... 이것은 정말 파렴치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곧 바로 다른 여성이 생기자마자 이혼을 한다.

이런 저자의 여성편력적인 삶은 둘째치더라도 이 작품 <치인의 사랑>은 생각해 볼 거리가 많은 작품이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판타지 어린 시각... 그가 사랑한 타락의 이미지, 요부의 이미지... 그는 왜 이런 이미지를 여성에게서 얻고 싶어했을까... 본능적인걸까...아니면 길러진 본성일까... 그것은 정말 궁금하다. 어쩌면 심리치료를 받아야할 지도 모르지만 그 덕에 우리는 그의 여러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으니 어쩌면 다행이랄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소설 속 가와이 조지는 다니자키의 분신인 존재이다. 그는 15살 나이의 나오미를 근대적 하이칼라 여성으로 아름다운 요부로 성장?시키고자한다. 이는 그의 처제 세이코가 13살 였을때 그녀에게서 본 대담한 요부적 성격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가와이에게 나오미는 그리 호락호락한 여성이 아니었다. 다니자키에게 세이코가 만만한 여성이 아니었듯이... 시도 때도없이 남자를 부르고 영어공부는 게을리하고, 파티에 열심히고, 먹고, 바르고, 입는 것에 진심인 여성... 그녀는 가와이 조지가 생각한 그 이상의 요부였던 것이다. 조지는 그런 나오미를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뻐한다. 그녀가 아름답게, 아찔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비명을 지른다. 그녀를 평생 자기 것으로 애지중지 하고픈데 말을 잘 듣지 않을때는 '나가라'는 한마디... 하지만 곧 이내 잡는 것도 그 자신이다. 모든 월급을 그녀 발밑에 바쳐서라도 말이다.

저자 다니자키는 세이코를 견제하기 위해 여배우들과 사귀지만 이것이 세이코를 떠나게 만든다. 결국 그녀는 (누군가가?) 염려하던대로 니혼바시에서 게이샤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니혼바시의 게이샤가 된 세이코를 보게 된 다니자키의 심경은 어떠할까? 아마... 안타까운 마음보다 더 한결 요염해지고 아찔해진 그녀에게 경탄 마저 느끼지 않았을까...

소설 결말은 나오미가 행여 게이샤가 될까봐 그녀를 못 떠나겠다는 가와이 조지의 마음이 보이지만 왠지 나오미의 결말은 예정되어 있는 것같다. 다만 그것을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 지는 가와이의 마음에 달렸겠지만 말이다.

다니자키는 이런 자신의 내밀한 고백으로 그만의 독자적 세계를 구축했고 그후 <세설>이란 작품의 성공으로 노후까지 윤택한 삶을 살았다. 100여년 전의 이런 대담한 고백... 지금으로 부터 100년 후라면 어떤 것이 나와야 대담하다고 칭송받을 지 너무 궁금해진다. 개중 이슬아 작가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쓰는 작가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다니자키처럼 삶과 글이 (대담성 측면에서?) 일맥상통하는 작가는 찾아보기 힘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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