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준비는 되어 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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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준비는 되어 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 김난주 옮김 | 소담출판사

나는 혼자 사는 여자처럼 자유롭고, 결혼한 여자처럼 고독하다.

108 페이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다시 읽었다. 전에 읽었는데...음...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가오리의 소설은 줄거리보다는 그 느낌과 감각, 문체에서 오는 어떤 위안... 등 등에서 읽히는 소설이라서 그런건가 싶다.

다시 읽은 가오리의 문체는 여전히 편안했고, 일상적이었고, 약간은 무색 무취의 눈물맛이 났다. 그렇다. 왠지 그녀의 소설 전반에 깔려있는 허무주의가 나에게 그런 것을 일깨워주는 것같다. 그저 일상의 맛, 일상의 색, 일상의 느낌... 사실은 아무 맛도 없지만 슬픈 무엇이 그 속에 있다.

에쿠니 가오리는 그녀의 이번 소설집은 여러 과자가 뒤섞인 종합 과자 세트가 아니라고 한다. 그냥 사탕 한 주머니라고... 색깔과 맛은 달라도 그 성분, 크기, 모양은 다 비슷비슷한 동글 동글한 사탕들... 그녀의 이야기 속 화자는 모두 상실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상실은 본래의 근원적 상실과는 거리가 먼 소유한 데서 오는 상실이다. 소유하지 않으면 상실도 없는 법이다. 그리고 화자들은 모두 안다. 자신이 무언가를 분명히 가졌었고, 그것이 지금은 손에 없다는 것을... 그래서 제목이 울 준비는 되어 있다..일까? 이미 가진 사람조차도 울 준비를 하는 것같다. 곧 빼앗길 것을 아니까... 곧 사라질 것을 아니까 말이다.

예전에는 결혼하면 모든 행복이 그 속에 다 있는 줄 알았다. 왜 있잖은가? 동화책 말미는 항상 왕자와 공주가 행복하게 오래도록 살았습니다로 끝이 난다.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듯이 결혼이 행복의 종착점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 그 이후는 지극히 개인적인 나름의 환상적 상상력에 의해 채워질 뿐이다. 하지만 이내 안다. 일상은 여전하다는 것... 오히려 더 신경쓸 것이 늘었을뿐이다. 더 가졌고 그만큼 잃을 것이 남았다는 것...

에쿠니 가오리는 처음 알았을때는 그녀의 일상적 문체가 낯설었으면서도 신선했다. 먹는 것 하나 하나, 숨 쉬는 것 하나 하나까지 다 글로 표현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화자들이 모두 행복해보이지 않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일부의 화자는 통통 튀는 것같지만 그것도 어찌보면 의도적으로 내면의 슬픔을 가리기 위한 연출처럼 보였다. 무색 무취의 사탕... 그리고 표정없는 얼굴... 더 나아가서는 이번에는 모두들 툭 건드리면 울 것만 같은 화자들이 나온다. 울 준비를 모두 마치고서 누군가가 자신을 울려주기를 기다리는 아이같은 느낌이다.

다시 읽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듯하다. 사랑 끝에 기다리는 것이 절망이라면... 그 사랑 끝내지 말아라... 그녀의 투명한 알사탕들이 내게 건네는 말... 그것은 어쩌면 위로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저 견뎌라... 혼자 사는 여자처럼 스스로를 자유롭게 생각하고, 결혼한 여자처럼 고독하게 여겨라...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주문... 이 봄, 다가올 여름과 가을, 겨울... 모두 다 자신만의 필살기 주문을 하나쯤 간직하고 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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