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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사랑법 - 김동규 철학 산문
김동규 지음 / 사월의책 / 2022년 4월
평점 :
철학자의 사랑법
김동규 철학 산문 | 사월의 책
중학교 시절의 일이다. 어느 때와 다름없이 만원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왜 그때 버스에 사람들이 많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기억에 버스는 항상 사람들로 복작이는 만원 버스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때 버스에 탄 왁자지껄한 사람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누르고 또 포개고 그렇게 한 정류장, 한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이 꼭 압사의 길 같이 여겨졌다. 사람이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 그 당시에는 어느 정도 신앙심이 있다고 생각한 나로서는 예수님이 생각났었다. 왜 ... 이 사람들을 위해서 ... 그리고 나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면서 돌아가셔야했을까? 왜 이렇게 사랑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을 사랑하신 걸까? 이해할 수가 없다... 하는 생각들...
책에서 저자는 말하고 있다. 자기 사랑이 곧 타자 사랑이라는 말은 못난 내 모습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적용된다고 말이다.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는 멋진 모습은 사실 누구나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모습도 사랑해야 진정 사랑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인간이 원래 그렇다는 것... 그 품성 역시 동물과 다르지 않다는 것... 그것을 받아들여만 사랑의 결정에 도달한다.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과연 그것에 도달할 수 있을까? 예쁜 것만, 사랑스러운 것만 사랑하고 픈데... 내 못난 모습도 나이고, 어리석은 모습도 나이니... 이런 나를 누구에게 사랑해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알고보면 우리는 모두 다 같은 이런 저런 모습을 갖고 있을 것인데 말이다.
저자는 또 말한다. 사랑은 끊임없이 연습해야한다고 말이다. 시지프스처럼 다시 되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사랑은 무한히 올려져야한다. 우리가 죽기 전까지 사랑의 아픔은 계속되며 우리가 원수를 친구로 되돌려 놓는 연습의 최종 목표는 통증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아픔을 감내할 수 있는 정도로 잡아야한다고 말이다. 무통이 아니라 감내라니... 눈물이 찔끔 나오는 말이다. 그냥 그렇게 내버려두고 상관하지 않고 싶은데... 온갖 적들과 무한한 연습을 계속 해나가라니... 그것도 고통을 느끼면서... 고통을 감내할 수 있을 만큼말이다.
책에서는 한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한과 멜랑콜리 그 사이에 서 있는 우리에 관해서... 여기에서 고통의 시간을 견디는 애도에 대한 해석 역시 흥미로웠는데, 한국인이 오랫동안 한을 삭이면서 깨달음을 얻었다면 서양인은 과감한 단념의 길을 택했다는 점... 단념과 체념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전혀 다른 길임을 알 수 있었다. 단념이란 사랑의 주체 뜻대로 관계를 정리하는 능동적 행위인 반면 체념이란 달관을 의미한다. 자기를 내려놓은 체념의 길... 자기집착에서 벗어나야만 고통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그 방식은 동양과 서양이 이렇게 천지차이라니...
아... 다시 난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 하면 사랑만 생각하면 된다. 모두가 밟아도 그것은 또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그 외의 다른 것들은 모두 사소한 것일터... 그리고 때론 그 사소함이 위대한 사랑을 망칠 수 있다. 그러니 사랑이란 이 얼마나 연약하고도 강한 존재인가?